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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 한국 SF영화가 도달한 신세계
<호프>,
한국 SF영화가 도달한 신세계
글 _ 허남웅(영화평론가)
2026-07-15
<호프>에서 외계인들과 맞서는 경찰로 분한 황정민, 정호연(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호프>에서 외계인들과 맞서는 경찰로 분한 황정민, 정호연
(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휴 세상에,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야!”
불사의 전투력을 과시하는 외계인 마베이요(마이클 패스벤더)의 추격을 따돌리고 겨우 숨을 돌리는가 했다. 그때, 구름을 뚫고 우주 함선이 나타나자, 동네 할아버지 낙연(이상희)이 망연자실하게 읊조리는 말이다.
스크린으로 <호프>를 본 한국 관객의 심정이란 것이 언급한 이 대사와 다르지 않다. 3시간에 달하는 상영 시간을 오로지 추격전에 할애한 전개,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봤던 외계인의 대거 출현과 우주선의 등장, 그것을 현대 한국의 메가시티가 아니라 1980년대 비무장지대의 촌구석에서 펼쳐내는 대담한 연출은 대형 트럭 하나 정도 아무렇지 않게 전복시키는 나홍진의 작품이라고 해도 혀를 내두르게 한다.
밤 장면 하나 없이 대낮을 배경으로, <진격의 거인>(2013년부터 2023년까지 방영된 일본 다크 판타지 애니메이션 시리즈)을 떠올리게 하는 외계인이 하나도 아니고 넷에, 아기 외계인까지 추가한 것으로 모자라, 하늘이 노하고 땅이 꺼지는 종말의 이미지로 끝을 보고야 마는 <호프>는 그동안 한국영화가 도달하려고 해도 삐끗하고 만 SF의 보폭을 넓힌 진화이자 본 적 없는 결과물이다.
<호프>에 등장하는 우주 함선
(제공=<호프> 인터내셔널 메인 예고편 캡처)
추격, 그 이상의 추격
올해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 경쟁 부문의 월드 프리미어 이후 4분 정도를 줄여 156분의 최종 버전을 확정하고 가진 국내 언론배급시사회에서 나온 <호프>에 관한 평가는 호평이 상당하다. 한국 SF영화의 발전을 공통된 평가로 전제하면서 세부적으로는 다양한 측면을 언급한 것이 흥미롭다.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는 “나홍진 감독이 원숙한 스토리텔러의 모습까지 보여줬다”며 이야기가 가진 힘을 성과의 첫손으로 꼽았다. 나원정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는 “칸영화제 공개에서 혹평받았던 CGI(컴퓨터 그래픽)가 개선되어 재밌게 관람했다”라고 SF 이미지에 관해 언급했다. 조재휘 영화평론가는 “프로덕션의 수준을 올려놨다”고 감탄하면서 “한국 영화미술의 기준점을 제시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와 별도로 액션 장면에 호감을 표한 미국의 영화 전문지 ‘버라이어티’의 평가도 흥미롭다. “어쩌면 <호프>가 최초의 아카데미 최우수 스턴트 디자인상 후보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런 반응들을 종합하면 <호프>는 이야기와 VFX와 미술과 액션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일정 정도 이상의 성과를 올린 한국영화의 성과다. 별 네 개 만점부터 보통 정도를 의미하는 두 개까지 중상위 수준의 평가를 받았던 칸영화제에서와는 다르게 한국 언론이 <호프>를 환대하는 건 <설국열차>(2013) 정도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한국 SF영화를 향한 불신이 한몫한다.
물론 그동안 쌓아온 시도가 현재 수준을 결정하는 것일 텐데, 그래서 아쉬웠던 사례와 비교하면 <호프>의 성과는 더 명확하다. 우선, 이야기와 이를 운용하는 장르의 측면에서 나원정 기자는 “추격전 양상에서 한눈팔지 않는 연출을 보여준다”라고, 라제기 기자는 “인간과 외계인이 싸우게 된 이유를 범죄·스릴러물 같은 현실적인 전개로 풀어가는 솜씨가 상당하다”고 운을 뗐다. 핵심은 ‘한눈팔지 않는 연출’과 ‘현실적인 전개’로, 과거의 한국 SF영화가 놓친 부분이기도 하다.




아기 외계인부터 인간 형태의 외계인, 괴물 같은 외계인 등 그 모습이 다양하다
(제공=<호프> 인터내셔널 메인 예고편 캡처)
2020년대 이후로 한정하여 한국 SF영화를 살펴보면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승리호>(2021)와 <더 문>(2023)처럼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로 접근한다든가, <정이>(2023)와 <원더랜드>(2024)처럼 가족과 연인 같은 가장 가까운 관계를 캐릭터 설정의 중심에 두고 감정을 자극하는 이야기로 흘러간다는 점이다. SF와 시대극을 무리하게 결합해 낭패를 본 <외계+인> 1·2부(2022·2024)는 현재의 기술력으로 한국영화가 못 만들 이미지는 없지만, 그에 상응하는 연출과 세계관 구성에 난맥을 드러내며 한국 SF영화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포괄한 사례가 됐다.
<호프>가 이들 영화로부터 앞서 나간 형태인 건 ‘한국형’이라는 수식을 방패 삼아 ‘할리우드 흉내 내기’에 그쳤던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영리한 방식으로 독창성을 획득하고, 현실 친화적인 시대적·공간적 배경을 앞세워 가상 세계의 선입견을 방지해 몰입도를 높인 까닭이다. 조재휘 평론가의 설명에 따르면, “가상의 마을 ‘호포항’을 있을 법한 공간으로 꾸며 역사적 배경과 공간의 리얼리티를 만들고 익숙한 생활상 등으로 거주하는 이들의 행동 룰을 정해 디지털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도 관객을 설득하는 결과를 얻었다.”
예컨대, 우주 쓰레기 청소선의 개념이 주목받았던 <승리호>와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서비스 업체 원더랜드가 배경인 <원더랜드> 등은 주요 공간을 대놓고(?) 세트로 운용해 SF를 공상과학으로 인식하는 한국 관객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그와 다르게 <호프>는 극 중 호포항을 설계하는 데 있어 해남 땅끝마을과 같은 실제 공간을 로케이션하고 그 안에 반공(反共) 표어와 같은 게시물을 적절하게 노출하여 1980년대 비무장지대 인근 마을이라는 사실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게끔 현실감을 더했다.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건 그것을 설득하려고 이야기를 복잡하게 가져가고, 전개가 늘어지는 걸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다. 고려시대와 미래를 오가는 <외계+인>이 그 긴 시간의 터널을 통과하려 2부작을 필요로 하고, 인간의 뇌를 복제한 AI 전투 용병을 내세운 <정이>는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인격도 등급을 매긴다는 게 가능한가 등 존엄에 관한 질문을 위해 상당 시간을 소모한다. 156분의 러닝타임을 오로지 추격전에 할애한 <호프>의 경우, 일직선의 전개로 영화적 쾌감을 극대화하면서 시대적 배경, 캐릭터의 행동 동기와 같은 부분을 따로 떼어 설명하지 않고 호포항 마을의 프로덕션과 외계인 디자인에 관련한 의미를 반영,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 채로 전력 질주한다. 그래서 <호프>의 미술과 VFX에 관심을 두는 건 나홍진 감독이 창조한 세계를 이해하는 표지판과 같다.
인간관계를 중심에 두고 보는 이들의 감정을 자극했던
SF영화 <정이>(위)와 <원더랜드>
(제공=넷플릭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프로덕션, 그 이상의 프로덕션
나홍진 감독은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잡지 ‘데드라인’과 만나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1975)를 연상하게 하는 작업 방식으로 <호프>에 임했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 “지금은 CGI로 100% 생명체를 구현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나는 그런 기술이 없던 시절의 제작 방식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와 관련해 조재휘 평론가는 <호프>의 초반 읍내의 추격 장면에서 외계인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존재감을 과시하는 장면을 예로 들어 아날로그 방식이 왜 지금에도 유효한지에 관해 설명했다. “실제 자동차를 굴리고 부수는 작업 덕분에 외계인이 내던지는 차에 사람이 깔리는 장면이 더욱 실감났다. 디지털 기술이었다면 너무 매끄러워 티가 나고 위화감이 들었을 텐데 아날로그 효과를 염두에 둔 연출로 CG 만능주의의 함정을 피해갔다.”
이는 한국영화의 특수효과가 기술뿐 아니라 미학적인 부분에서도 발전했다는 증거다. 배우의 연기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성인 외계인과 다르게 아기 외계인은 실제 같은 더미를 만들어 진짜 같다는 인상을 강화해 몰입도를 높인 것도 그 예다. 아날로그 방식부터 순차적으로 특수효과 기술을 발전시켜 온 할리우드와 다르게 CGI부터 도입한 기존 한국 SF영화의 사례를 돌아봤을 때 <호프>의 작업 방식은 획기적인 데가 있다.
<호프>의 프로덕션에 참여한 이후경 미술감독은 ‘웹진 한국영화’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영화의 작업 방식에 관해 “최대한 있는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이용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시나리오상 시대가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로 잡혀 있어 오픈 세트로 짓기보다 당시의 모습이 남아 있는 곳을 찾았다. 우주선과 같은 이질적인 요소가 현실적인 공간에 침투했을 때 보여주는 방식에 관해서는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할리우드를 능가할 수 없을 텐데 그렇다면 단순하게 가자”라고 결정해 호포항 인근 숲에 불시착한 외계인의 우주선은 은색 동그라미 형태가 됐다.
현실감과 이질감은 <호프>의 세계를 구성하는 두 개의 핵심 요소다. 인간과 외계인의 추격전이라는 콘셉트에 맞춰 한국 배우와 할리우드 배우가 편을 갈라(?) 대립하고, 로케이션을 통한 현실 공간에 컴퓨터와 특수효과로 작업한 디지털 이미지가 자리잡아 속칭 ‘산골 SF’, ‘시골 크리처물’로 불리는 <호프>의 세계가 성립한다. 관건은 현실감과 이질감이 한데 섞였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따로 노는 이미지의 봉제선을 최대한 제거하는 한국 VFX 기술의 능력치다.
<호프>의 VFX는 웨스트월드가 맡았다. 웨스트월드는 영화 <서복>(2021), 넷플릭스 시리즈 <고요의 바다>(2021), 애플 TV의 <닥터 브레인>(2021) 등에 참여했고, VFX로 크게 두각을 나타낸 작품은 넷플릭스의 크리처물 시리즈 <스위트홈>(2020~2024)이었다. <호프>는 칸영화제에서는 ‘Crazy movie(미친 영화)’라는 평가와 동시에 VFX 부분만 떼어 ‘Crude special effects(조잡한 특수효과)’라는 혹평을 들어 우려를 사기도 했다. 국내 언론배급시사회 이후에는 그 정도로 수준이 떨어지는 CGI는 아니라는 평가와 함께 9월 9일 북미 개봉을 앞두고 공개된 인터내셔널 예고편과 관련해 할리우드 SF 못지않은 영상이라는 해외 반응을 끌어내기도 했다.
<호프>의 VFX 팀에게는 억울할 법도 한 게 100%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버전으로 칸영화제에서 공개한 탓이었고, 상영이 이루어진 뤼미에르 대극장의 스크린 상태가 예술영화에 특화되어 <호프>가 의도했던 것보다 어두워 보인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 극 중 사건이 대낮에 이뤄지고, 1시간여에 달하는 초반 추격 장면이 단층 건물로 이뤄진 읍내의 구조상 시야가 뚫린 공간에서 벌어진다는 걸 고려하면 나홍진 감독과 VFX 팀이 원했던 바와 맞지 않은 상영 조건이었던 셈이다.


<호프>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마을 호포항과 산속.
현실 공간에 디지털 이미지가 들어가 ‘산골 SF’, ‘시골 크리처물’이 됐다
(제공=<호프> 리뷰 메이킹 캡처)
VFX, 그 이상의 VFX
낮시간에 한정하여 시야가 확보된 환경에서 SF 이미지를 풀어간다는 건 기존 한국형 SF와 가장 차별되는 지점이다. <설국열차>가 모든 것이 얼어붙은 지구의 빙하기를 전제하고 열차 내부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우주 배경의 <더 문>과 <승리호>가 CGI의 디테일한 약점을 어둠 속에 감추었던 것과 비교하면 <호프>의 시간과 공간의 배경 설정에는 자신감이 반영되어 있다. 그에 더해, 경찰 소장 범석(황정민)과 성애(정호연)의 공격에 타격을 입은 외계인 바미기르(카메론 브리튼)가 도망가는 상황, 말 타고 달리는 성기(조인성)를 잡으려 마베이요가 공중에서 내려오는 결정적인 순간, 이 두 장면을 의도적으로 느리게 가져가 관객이 VFX 이미지의 디테일을 하나하나 볼 수 있게 편집한 것도 <호프>의 과감함을 증명한다.
<곡성>(2016)에 이어 <호프>에서도 나홍진 감독과 합을 맞춘 홍경표 촬영감독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60) 벌판 장면처럼 인물을 풀숏의 중앙에 두고 외계인에 포위된 듯한 프레임으로 설정해 긴장감을 조성했다. 루마니아의 레테자트 국립공원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촬영지를 호포항의 깊은 산속으로 상정하여 세로로 높이 뻗은 나무들을 감옥의 창살처럼 활용해 주인공들이 갇힌 듯한 화면을 만들기도 했다. 이 장면에는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2023), <만달로리안과 그로구> 등에 참여했던 스테판 오가 특수촬영 스태프로 참여해, 불시에 나타난 마베이요가 인간을 낚아채 화면 밖으로 사라지는 장면을 촬영했다.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2017)에서 해저 괴물이 수중 밖의 선원을 공격하며 빠르게 사라지는 방식처럼 만들어 VFX의 수준을 높였다.
프랑스 칸과 국내에서 두 차례 <호프>를 관람한 나원정 기자는 바미기르가 쫓기는 장면에 주목했다. “눈물의 양이 칸 버전에 비해 많아졌다. 그 장면 덕에 외계인을 또 다른 생명체로 이입해 보게 됐다”라는 설명대로 읍내를 마구잡이로 파괴하던 바미기르가 눈물을 흘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실종된 자식을 찾으려다 더는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인데, 그래서 이 사연이 밝혀지는 중반부를 넘어서면 외계인들이 그저 정체불명의 가해자, 외부의 침입자로만 비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짧은 분량의 외계인 연기를 위해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테일러 러셀 같은 할리우드 배우들을 캐스팅했다고?”라는 의문을 표했지만, 그래야 했던 이유는 상당하다.

마베이요가 성기를 잡기 위해 큰 입을 벌리고 위에서 내려오는 장면
(제공=<호프> 인터내셔널 메인 예고편 캡처)
모션 캡처와 페이셜 캡처를 활용해 해외 배우의 연기를 그대로 담아 창조한 외계인 캐릭터는 단순한 크리처를 넘어선다. 한국 SF영화의 크리처가 대부분 괴물에 한정하였고, 그래서 정교한 표정 연기가 필요하지 않았고, 로봇 캐릭터가 등장하더라도 기성 배우의 목소리를 더빙하는 수준이었다. <호프>에서의 외계인 연기는 존재하는 것을 넘어 감정이 중요하게 작동해서 이런 방식의 연기 경험이 있는 할리우드 배우의 캐스팅은 필요조건이었고, 그로 인해 한국 SF영화는 새로운 볼거리와 캐스팅 풀을 얻게 됐다.
외계인으로 통칭하는 이들은 ‘황후’ 조르(알리시아 비칸데르), ‘시녀’ 아이도보르(테일러 러셀), ‘군인’ 마베이요, ‘하층민’ 바미기르로 설정되어 있어 계급에 맞춰 외양도 가지각색이다. 확실히 <호프>가 특별한 이유는 크리처 하나의 작업도 상당 시간이 소요되는데 다양성까지 더해 관객이 원하고 기대하는 그 이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다만, 외계인 디자인과 신체 구조를 면밀하게 따지지 않은 액션 설계의 비합리성에 관한 지적도 있다. 조재휘 평론가는 “한국형 크리처는 항상 뭔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형태다. 그런 신체 구조에서 마베이요가 사족 보행으로 변신하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다. 가상 캐릭터이니 가능하다는 식은 곤란하다”는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경상남도 합천 성기대교 로케이션의 추격전은 읍내 배경의 쫓고 쫓기는 초반 액션 장면과는 또 다른 쾌감을 선사하면서도 많은 과제를 노출한다. 마베이요가 압도적인 신체 능력에 빠른 달리기 속도를 가졌음에도 범석 일행을 쉽게 따라잡지 못한다든가, 천천히 움직일 때는 자연스러웠던 마베이요의 보행이 네발로 달리는 순간 도로의 착지면과 마찰하는 속도감의 VFX 이미지가 어색해진다든가, 바미기르의 눈물 묘사는 그 자체로 수준급이어도 액체에 빛이 굴절했을 때 외계인 몸에 발생하는 그림자 형태를 크게 신경 쓰지 않은 디테일 등이 완성도를 저해하는 요소로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런 지적들이 치명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국내외 언론과 전문가들의 호불호 의견과 상관없이 <호프>를 향한 관객의 기대감은 고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600~700억 원의 제작비, 아직 할리우드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인 디지털 기술력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지금 가진 것 안에서 최대치를 뽑았다는 평가가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테일러 러셀, 카메론 브리튼 등 할리우드 배우들이
직접 외계인 모션 및 페이셜 캡처 연기를 수행했다(제공=<호프> 메이킹 예고편 캡처)
흥행, 그 이상의 흥행
나홍진 감독은 처음부터 해외시장까지 염두에 두고 <호프>를 작업했다. “내수시장만 바라보고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해외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면 어려워지겠다는 생각 끝에 축을 장르영화 쪽으로 옮겼다”라고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해외시장 중 규모가 가장 큰 미국과 캐나다의 배급권을 가져간 회사는 ‘네온(NEON)’이다. <기생충>(2019)으로 북미에서 2019년 개봉한 외국어 영화 중 최고 수익을 올렸던 네온은 최근 급성장한 미국의 준(準) 메이저급 배급사다. 특히 미국 밖의 영화를 가져와 스크린 수를 늘려가는 방식으로 흥행을 이끄는 데 정평이 나 있다.
<호프>는 이미 국내 개봉도 전에 200여 개국의 선판매로 제작비 절반에 해당하는 해외 판매 수익을 올렸다. 판매 단가가 높을 뿐 아니라 미니멈 개런티만 200억 원에 이를 정도라는 소문도 들린다. 이는 한국 극장가에서 400만 관객을 달성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액수로 북미시장을 비롯하여 <호프>가 해외에서 벌어들일 수익이 얼마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수준이다. 이를 두고 라제기 기자는 “기존 한국영화들이 제작 단가를 낮추는 방식으로 내수시장의 불황을 타개하려 했다면 <호프>는 해외 판매와 해외시장의 흥행으로 수익을 높이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호프>는 토종 SF라는 기획부터 수준급으로 완성된 결과물과 역대급 규모의 해외시장 배급까지, 이전의 한국 영화산업이 상상하지 못했던 한국 SF영화의 신세계를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