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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니핑,
하츄핑으로 꿈꾸는 미래

한창완(세종대학교 창의소프트학부 만화애니메이션텍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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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에이엠지 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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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다시 극장으로 돌아온 국내 관객은 지난 2023년 한 해 동안 애니메이션 작품에 더 관심을 갖는 경향을 보였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N차 관람으로 500만 명에 육박하는 기록을 보이더니, 미야자키 하야오를 능가하는 일본 2D 애니메이션의 신성 신카이 마코토는 <스즈메의 문단속>으로 코로나19 이전 개봉했던 전작 <너의 이름은>의 400만 흥행을 넘는 560만 명을 기록했다. 한국계 피터 손 감독이 연출한 픽사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은 누적 관객 수 720만 명을 넘어섰다. 팬데믹 기간 동안 구축된 애니메이션 라인업은 틈새 흥행에 성공했다. 2024년에도 픽사의 <인사이드아웃 2>가 880만 명을 기록했다. 실사영화가 아직 코로나19 이전 상태로 회복하지 못한 관객 동원력을 애니메이션이 선도한 셈이다.

극장에서 소외되었던 한국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이유는 대개 실재하지 않지만 더 리얼한, 슈퍼 리얼리티(Super-reality), 혹은 하이퍼 리얼리티(Hyper-reality) 가득한 판타지의 다차원적 불확실성을 향한 높은 기대감에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는 영화 후반부, 마지막 슛을 던지는 순간, 영화 속 모든 사운드가 점멸되며 극장 안 관객들의 숨소리조차 함부로 내지 못하도록 침묵시키는 강제적 퍼포먼스가 10여 초를 넘어선다. 관객들은 그 숨 막힌 긴장감을 통해 극장이 아니면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희한한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집 안 거실에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어떤 스펙터클한 영화를 본다고 한들 이러한 집단적 긴장을 공유할 수 있을까. 실재하지도 않는 농구 애니메이션 경기에서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합의된 하이퍼 리얼리티를 공유한 경험이 애니메이션에 대한 상대적 기대감을 확장시킨다.

애니메이션은 이미 영유아만의 점유물이 아니다. 모든 세대를 관통하는 힐링 콘텐츠로서의 기능을 본격적으로 실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애니메이션의 흥행 성과는 한국애니메이션으로는 연계되지 못했다. 일본 2D 애니메이션과 할리우드 3D 애니메이션 위주의 흥행은 K-컬처 열풍을 감안한다면 안타까운 부분이다. 웹툰과 드라마, 영화의 글로벌화에 이은 화장품, 한복, 한식, 한글의 새로운 한류가 전 세계 젊은이들을 서울로, 한국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그 생태계에서 퍼즐 하나가 빠져 있는데 그 부분이 바로 한국애니메이션이다.

OTT 시스템의 몰아보기에서도 일본 2D 애니메이션의 강세가 여전하고, 할리우드 장편 애니메이션의 극장 점유율은 언제나 반복된다. 한국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은 없는가? 애니메이션업계와 학계, 정부에서조차 그 대안을 고민하며 힘들어하는 이 시기에 그래도 한국애니메이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 등장했다.

<캐치! 티니핑>이 슈퍼 IP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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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치! 티니핑> 포스터 | 공식 인스타그램

‘제2의 뽀로로’, ‘제2의 포켓몬’, ‘여자아이들의 대통령’ 등으로 불리는 캐릭터, 관련 제품의 구매 때문에 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이 계속 커지고 있다는 비유로 ‘파산핑’, ‘거덜핑’으로 소문난 TV 시리즈 애니메이션 <캐치! 티니핑>의 약진이 이제는 극장판인 <사랑의 하츄핑>의 흥행을 타고 중국과 일본으로 진격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으로 진출한 <캐치! 티니핑>
중국과 일본으로 진출한 <캐치! 티니핑>

<캐치! 티니핑>은 지난 2020년 3월부터 2021년 4월까지 KBS에서 방영되었던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이모션 왕국의 로미 공주가 친구들과 함께 일상 속에서 다양한 사건을 해결하고,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타인과의 소통, 원만한 관계 형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아 가도록 도와주는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을 기획 제작한 회사는 ‘에스에이엠지 엔터테인먼트(이하 SAMG엔터, 전 삼지애니메이션)’로, 코스닥에 상장된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 선두 기업이다. 상장 이후 본격적인 배급과 마케팅에 집중해 기업공개(IPO) 이후 확대된 거대 양성 자본의 투자를 받아 시장에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기업공개에 성공한 몇 안 되는 국내 애니메이션 전문 제작사 중 하나인 SAMG엔터는 이미 2000년부터 <미니특공대><슈퍼다이노><룰루팝>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론칭해 온 국내 애니메이션 1세대 기업이기도 하다.

SAMG엔터의 기존 작품들은 관객들의 호평과 차별화된 품질에도 불구하고 투자 시장의 열악함과 배급의 한계 속에서 지속적인 시리즈로 확대되지 못했다. 이는 결국 창작 애니메이션의 지식재산권(IP) 가치를 배가시키지 못한 자본의 한계였다. 그러나 기업공개 이후, 부문별 전문 인력 추가로 중장기적인 기획이 가능해지면서 새롭게 기획했던 <캐치! 티니핑>의 지속적인 캐릭터 확대와 IP 라이선싱 사업이 본격화되었다.

일본애니메이션은 1970년대부터 국내 지상파에 수입되어, 영유아와 어린이 관객들에게 친숙해진 반면, 한국애니메이션 시리즈가 일본 TV에 방영된 사례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SAMG엔터는 <캐치! 티니핑> 시리즈로 지난 2022년 11월 소니픽처스 네트워크인 ‘키즈스테이션’과 배급 계약을 체결하고, 일본어 더빙판을 2022년 12월부터 일본 플랫폼에서 방영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국산 캐릭터가 라이선싱 상품과 함께 일본 TV 시장에 동시에 진출한 최초의 성과다. <캐치! 티니핑>의 일본 내 팬덤은 이후에도 지속적인 라이선싱 확대와 구매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애니메이션 기획제작사의 수익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는 시기는 IP 관련 상품의 자체 제작과 배급을 수직계열화하고, 그로부터 직접 그 상품들의 매출을 국내외로 확장시키는 마케팅까지 진행될 때 가능해진다. SAMG엔터는 애니메이션 제작에서 출발해 캐릭터와 스토리 IP에 관련된 장난감, 의류, 화장품, 교육, 게임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이모션 캐슬’이라는 종합 브랜드를 통해 완구, 패션, 식음료, 공연 분야 등 연계된 영역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뮤지컬, 영어키즈카페 등을 전개하는 공간사업 전문 자회사 ‘이캐슬’도 설립하고, 테마파크 ‘이모션 캐슬 어드벤처’ 설립까지 진행하고 있으며, 해외 법인으로 일본 법인 ㈜니코니코 엔터테인먼트와 중국 광저우 법인 광저우산시상무유한책임공사를 보유하고 있다. SAMG엔터의 <캐치! 피니핑>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머천다이징 및 라이선싱 사례는 슈퍼 IP를 통해 연계된 전 산업 분야의 선순환적 생태계와 지속적인 투자 및 전문 인력의 확보를 연동시킨 성과다. 또한 지난한 시행착오의 노하우를 끈기 있는 양성자본의 투자로 연계시킨 설득의 결과다.

기획, 개발, 제작, 배급, IP 확산, 라이선싱과 머천다이징으로 이어지는 애니메이션 창작 기업의 성숙 과정은 매 단계마다 많은 실패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한국은 국내 애니메이션 수요 시장이 영유아동 영역에 한정적이고, 시장 규모도 협소한 데다가 최근 출생율의 감소로 수요 시장 규모는 더 축소되는 타격을 받게 되어 있다. 게다가, 해외 시장으로의 수출은 규모에 비해 제작 비용이 과다하게 지출되는 구조를 갖는다. 영유아용 애니메이션은 각 국가의 지역 플랫폼 기업들 모두 편성 및 방영에 적극적이지 않고, 자막 처리보다는 더빙으로 방송해야만 하는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북미와 유럽 지역의 높은 방송심의 기준도 불확실성을 확대시킨다. 영유아 콘텐츠의 민감한 감성과 교육적 기준이 국가마다 차별적이며 다양한 심의기준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알파세대 가족 맞춤형 극장판 <사랑의 하츄핑>
<사랑의 하츄핑>
<사랑의 하츄핑>

이러한 시장의 한계를 극복한 <캐치! 티니핑>의 전략은 매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캐릭터의 확장과 성장, 그리고 캐릭터를 수집하는 수요 타깃의 정서를 정교하게 파악하고 있는 서사에서 찾을 수 있다. 어린이와 성인이 함께 보고 세대 간에 정서를 상호 공유할 수 있는 캐릭터들의 배치가 친근한 팬덤으로 형성된다. 또한 ‘MZ(밀레니얼+Z) 세대가 키우는 알파세대’의 차별적 시장을 스토리와 캐릭터로 설계해 세대 맞춤형 소통이 결국 부모와 아이들 모두에게 인지되는 VOD 구매로 연동될 수 있게 하고 있다. 추후 영유아동 연령층이 10대를 거쳐 성인으로 성장한 후에도 키덜트로서의 고착화된 팬덤을 유지 확대할 수 있도록 차별화된 친숙함으로 스토리의 개연성과 확장성 차원에서 이야기와 캐릭터의 기억을 체화시킨다.

올해 공개된 <캐치! 티니핑>의 세계관 연계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사랑의 하츄핑>의 기획은 세대 간의 간극을 대화와 공감으로 전환시키는 장치로 작용한다. 2024년 8월 극장 개봉한 <사랑의 하츄핑>은 누적 관객 수 120만 명을 넘어서며 한국애니메이션의 극장 흥행을 재점화했다. 이는 한국 극장용 애니메이션 흥행 1위인 <마당을 나온 암탉>의 220만 명 성적을 잇는 새로운 국산 창작 애니메이션의 흥행 성과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애니메이션이 넘어서지 못했던 100만 명 흥행 한계를 돌파하며 극장용 창작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이 국내에 여전히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가 되었다.

<사랑의 하츄핑>은 TV 시리즈 <캐치! 티니핑>의 프리퀄이자 첫 번째 극장용 장편 프로젝트다. 주인공 로미와 하츄핑의 운명적인 소울메이트 찾기가 주된 스토리로, 둘의 첫 만남 에피소드를 보여주며 시리즈의 가능성도 열어 놓고 있다. 일본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에서 포캣몬들의 성장 사례처럼 최초 티니핑으로 등장한 캐릭터의 개수가 스토리의 확대에 따라 성장하며 점차 증가한다. <사랑의 하츄핑>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많은 유튜버들 사이에 ‘티니핑 캐릭터 이름 맞히기’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등 관객이 직접 콘텐츠를 제작해서 마케팅에 도움을 주는 ‘인터넷 밈(Meme)의 효과’가 본격화되고 있다. 걸그룹 에스파의 윈터가 OST를 불러서 또 다른 아이돌 팬덤과도 연동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실사영화처럼 극장 상영마다 하츄핑 캐릭터가 무대인사를 하는 등 관련 이벤트의 집중기획도 흥행에 한 몫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아이들과 함께 장편 애니메이션을 보러 가는 부모 세대들에게도 공감대가 확대되는 이유는 스토리의 개연성과 문제 해결 과정, 그리고 캐릭터와의 유대감에서 성인들도 공유할 수 있는 서정적인 감성 기재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플롯이 진행되면서 각 세대별 캐릭터가 등장하는 시퀀스마다 세대별 관객이 대리만족을 경험하도록 한 서사 구성도 돋보이는데, 앞으로 다른 작품들이 참고할 만한 부분이다.

티니핑과 하츄핑의 글로벌 확장성

지난 9월 15일 중국에서도 개봉한 <사랑의 하츄핑>은 중추절 연휴를 거치면서 매출액 약 1000만 위안을 넘어서고 있다. 이미 TV 시리즈 <캐치! 티니핑>이 중국에 <반짝반짝 캐치! 티니핑>으로 소개되어 중국 OTT 플랫폼 유쿠와 아이치이의 실시간 인기 순위에서 정상을 차지하기도 했기 때문에 연계된 중국 내 팬덤이 극장 개봉에서도 그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에서는 국내와 다른 2D, 3D 개념이 존재한다. 중국의 2D는 소설,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 실재하지 않는 캐릭터의 재현을 의미하며, 3D는 영화, 예능, 다큐, 연극 등 실재하는 퍼포먼스의 재현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츄핑과 같은 캐릭터가 무대 인사 등으로 실제 극장 상영 공간에 나타나면, 2.5D의 개념으로 이해해 더욱 강화된 판타지로 해석한다. 한국 캐릭터와 게임의 중국 진출이 그동안 어려웠던 상황임을 고려할 때 하츄핑의 흥행 성과는 다른 작품들의 중국 진입을 견인하는 효과로도 기대할 만하다. 이어서 일본 극장 개봉도 진행된다고 하니, 글로벌로 확장되는 티니핑과 하츄핑의 성장이 제작사의 지속적인 기획과 연동되기를 희망한다.

국내외에서 이렇게 차별화된 성과가 거듭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제작사 SAMG엔터의 매출 대비 수익 환원은 효과적이지 않다는 평가다. 이는 그만큼 애니메이션 배급과 캐릭터 라이선싱의 수익 구조가 복잡하다는 반증이며, 예측되는 수요 가능 시장의 규모와 비용이 실사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하고, 선순환 주기의 장기화가 예상 외로 지난함을 나타낸다. 롱테일 전략으로 제작사의 중장기적 성장이 거듭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원천 IP가 계속 등장해야 하며, 그러한 IP 간의 세계관 공유 및 라이선싱 연계 전략이 고도화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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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학 전 남자아이들이 대상이지만 성인 층에도 호평 받은 <메탈카드봇>

이러한 사업 환경을 극복해내기 위해, SAMG엔터는 취학 전 남자아이를 대상으로 한 액션 로봇물 <메탈카드봇>을 시작으로, 초등학생들이 주목할 신규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여러 편 계획 중이다. 젠더와 연령대를 특성화시키고 융합하는 IP 전략은 일본 시장을 비롯, 동남아시아와 중국 시장까지도 진출, 성공적인 라이선싱 사업들을 확장시키고 있으며 북미 시장으로의 진출까지 모색하고 있다. 특히 국내외 틈새 OTT 플랫폼인 크런치롤과 라프텔 등 전문화된 배급 네트워크를 통해 정확한 타깃이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만날 수 있는 경로를 특화시키고, 그 시청 경험이 연계 상품 구매와 테마파크의 경험으로 연동되도록 IP의 현실적 체험을 다양화시키고 있다.

<캐치! 티니핑> TV 시리즈와 극장용 장편 <사랑의 하츄핑>은 앞으로의 한국애니메이션 프로젝트가 가져야 할 방향을 실험적이고 도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성과가 부모와 아이 세대에 대한 탐구, 탈국적 및 탈인종으로서의 라이프스타일 공략, 부모 세대와 아이 세대의 더블타깃 전략, 키덜트로의 확장 전략, 연계 머천다이징의 프리미엄급 고급화 전략, 어그리게이터의 융합편집 전략 등의 새로운 모형을 선도적으로 개척해 국내 애니메이션 기업들에 더 나은 벤치마킹의 사례를 보여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