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2
“트렌드를 비켜가도 우리의 판단을 믿었다”
<장손> 오정민 감독, 정조은·장지원 프로듀서
- 글
- 이화정(영화 저널리스트)
- 사진
- 김기남(한국경제매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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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 오정민 감독, 정조은·장지원 프로듀서
2024년 한국 독립영화계에서 <장손>은 기념비적인 성과를 올린 작품이다. 한국영화 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하반기에 개봉, 3만 3000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화제의 영화로 자리한
<장손>의 시도와 성과는 한국 독립영화의 현재에 있어서 눈여겨보고 기록해야 할 사례다. 두부공장을 하는 3대 대가족의 삶을 통해 한국적 가족의 의미, 전통 가치관의 변화와 붕괴 등의 질문을 던지는 <장손>은 잘 짜인 시나리오와 미장센으로 작가적, 연출적 역량을 입증한 작품이자, 배우들의 조화로운 앙상블 연기 연출도 돋보였다. 프로덕션 운용 면에 있어서도 6억 원의 작은 제작비로 세 계절을 한 영화에 담아내는 챌린지를 완수한 성공 사례이자, 축소된 상영관이 호평과 입소문으로 오히려 늘어날 만큼 이례적인 상영관 확보로 한국영화 극장 배급의 문제를 환기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이 같은 성과를 입증한 <장손>의 성공 전략을 영화 제작진과의 만남을 통해 돌아보고자 한다. 차기작 시나리오 집필 중이라 요즘 두문불출한다는 오정민 감독과 이미 새 프로젝트로 바쁜 <장손>의 정조은, 장지원 공동 프로듀서를 한 자리에서 만났다.
기대보다 우려가 컸던 출발정식 상영 일정이 종료된 후에도 <장손>의 파워는 해를 넘어 연초까지 이어진 참이었다. 각종 매체, 평론가들이 연말 결산 자리에서 ‘올해의 한국 독립영화’로 <장손>을 선정하면서, 연말에 <장손> 소식이 매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부쩍 이어졌다. 지난해 9월 11일 개봉해 3만 관객을 넘어선 이 영화는, 기세에 힘입어 올해 1월 29일부터 2월 4일까지 약 일주일간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등 총 9개의 상영관에서 설 연휴 특별상영을 가졌다.
오정민 감독은 “올해의 감독, 올해의 영화로 많이 언급되면서 축하도 많이 받았다. 감사한 마음이 큰데, 막상 실감은 잘 나지 않는다(웃음)”고 한다. 정조은 프로듀서의 말에 따르면 “특별상영회를 찾은 관객의 절반 정도는 이번 상영으로 <장손>을 극장에서 처음 만나는 관객”이었다며 스코어에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니지만 제작진에게는 애써 만든 영화가 다시 조명되는 감흥이 더 컸다고 말한다. “개봉 때 사정이 안 되어서 못 보신 분들도 이번 상영 때 본다는 연락이 많이 왔다”는 장지원 프로듀서의 말도 영화가 여전히 유효하게 관객에게 가 닿고 있는 지금의 분위기를 대변한다. 상영은 종료되었지만 이들에게 <장손>은 여전히 관객에게 가 닿기를 바라는 현재 진행형의 영화다. 이들에게 <장손>의 기초 기획 단계부터 촬영 프로덕션, 그리고 개봉 후 관객과의 만남에 이르기까지, 그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은 “<장손>은 기대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큰 작품이었다”는 점이다. 여성서사, 소수자 등 독립영화에도 트렌드가 되는 소재가 있는데 그 지점에서 이 영화가 한참 떨어져 있다는 게 걸림돌로 여겨지기도 했다. 오정민 감독은 “제작 지원 피칭에서 요즘 주목하는 이슈가 아닌, 왜 사라져 가는 과거 이야기를 다시 꺼내냐”는 코멘트를 받았다며 당시 이 프로젝트를 향한 온도를 설명했다. 독립영화를 즐겨보는 주 관객층에게 이해를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초점이 명확한 한두 명의 캐릭터가 아닌, 가족을 모두 주인공으로 내세운 앙상블 캐스팅도 약점으로 다가왔다. 계절의 변화를 구현하는 큰 그림도 투자 단계에서 지적 받았던 요소 중 하나였다. 기획 단계에서 맞닥뜨린 이 같은 장벽에 대한 오정민 감독의 말은 <장손>이 기존 독립영화의 문법에서 적잖이 벗어나 있음을 알려준다. “바꾸어 보면 저희가 강점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만들기 전까지는 입증이 되지 않았던”(정조은) 만큼 믿고 갈 수 있는 건 오정민 감독을 중심으로 한 두 프로듀서들의 의지, 만들고자 하는 의견 일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돌아보지 않는 것이라 더 독특한 이야기일 수 있고, 다양한 캐릭터의 수만큼 관객의 입장을 대변하고 투영할 캐릭터가 많아질 수 있다는 생각에 함께 의견을 모았다. 총 6억 원의 순제작비 중 3억 원을 지원받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제작 지원 선정은 “이제 또 떨어지면 끝이다”(오정민)는 마음으로 매달린 결과, 여섯 번째 지원 후 얻은 결과였다.
이 과정에서 세 사람의 지향점은 그들이 정의하는 독립영화가 어떤 것인지 알려준다. 장지원 프로듀서는 제작비 조달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게 ‘설득’이었다고 말한다. “다행히 영진위 지원으로 우리 작품에 대한 믿음을 얻었지만, 이후에도 투자가 완성되기는 쉽지 않았다. 독립영화는 작품만의 고유한 색, 정체성이 있는데 그 파장성을 봐주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다른 이야기로 시장의 흐름, 사회가 원하는 이야기를 충족시키는 게 힘들었다”고 말한다. 정조은 프로듀서 역시 “독립영화 역시 작품 고유의 가치로 평가받기에 트렌드나 캐스팅 같은 요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제작 지원에 많이 기대고 있지만, 지금은 지원 사업 예산도 축소되고 있는 추세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쪽으로 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오정민 감독은 “트렌드를 따라가면 늦다고 본다. 극복할 수 없는 대세는 따르되, 유행은 따라가서는 안 된다. 가령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로 인한 환경 변화 같은 데 유연해질 필요는 있지만, 소재의 트렌드를 따라가거나 장르에 국한되는 건 독립영화 고유의 가치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이 크다”고 말한다. 첫 장편 <장손>을 만들면서 그는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로 나누어 규정하는 대신 “관객에게 다가가는 영화, 그래서 그게 대중적이라면 그렇게 어필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애정 깃든 프로듀싱, 믿음의 앙상블이 같은 작품을 향한 가치, 태도를 입증해준 건 프로덕션의 운용과 규모가 보이는 만듦새였다. <장손>은 적은 제작비에도 탄탄한 프로덕션으로 관객에게는 독립•상업영화를 떠나 ‘완성도가 갖춰진 영화’로 인식되며 어필할 수 있었다. 제작 형태부터 상업영화와 같은 프로덕션 형태를 갖추려 했다. 52시간 최저임금을 맞추는 건 기본, 스태프 구성을 비롯해 로케이션, 섭외 등 모든 걸 상업영화 제작 방식으로 맞추었다. 합리적인 시스템을 적용해보자는 의도였다.
더불어 역할을 세분화한 프로듀서 2인 체제도 작품의 완성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독립영화 한 편에 두 명의 프로듀서는 흔치 않은 형태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스태프 구성이다. 프리 프로덕션과 프로덕션 운용 부분을 장지원 프로듀서가, 촬영 과정의 운용을 정조은 프로듀서가 주로 전담했다. 정조은 프로듀서는 <파도를 걷는 소년>으로 프로듀서 입봉을 한 후 김태용 감독의 <컴백 홈> 제작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 정우성 감독의 <보호자> 등에서 제작회계, 재무회계 역할을 담당하며 독립영화, 상업영화의 시스템을 모두 경험해 왔다. 장지원 프로듀서 역시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프로듀서에 앞서 <국제시장>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엑시트> 등의 제작팀으로 상업영화 현장 경험이 축적되어 있었다. 특히 두 프로듀서 모두 오정민 감독과 한국영화아카데미 동기로, 함께 쌓아 온 신뢰가 팀을 구성하는 데 일조했다. 오정민 감독은 “동기이기도 한 두 프로듀서와 어떤 라포가 형성되어 있었다. 제가 원하는 것을 바꾸고 타협하려고 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현실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지 애정 있게 봐주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두 명의 프로듀서가 현장 경험에서 얻은 노하우와 시행착오를 적용하면서 <장손>은 최대한 감독이 구현하고자 하는 바에 가까운 현장을 만들 수 있었다.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계절을 다루는 작품이고 쉽지 않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정조은 프로듀서에게 같이 하자고 제안을 했다.”(장지원) “같은 위치에서 고민을 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게 실제 일을 하는 데 든든하다는 걸 이 작품을 하면서 크게 느꼈다.”(정조은) 각각의 롤을 정하고 난 후, 그 부분만큼은 서로 의견을 존중하고 믿어준 결과, 일의 진행이 수월할 수 있었다. 변화하는 세 계절을 담는 6개월의 촬영 기간 동안, 키 스태프들이 이탈하거나 바뀌지 않게 하고, 배우 일정을 모두 맞춰야 하는 앙상블 캐스팅의 일정 조율까지 틈이 나지 않게 운영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물론 <장손>은 프로듀서가 둘이어도 모자랄 만큼 풀어야 할 과제, 수행해야 하는 요소가 많은 프로젝트였다. “감독님도 제작 마인드가 굉장히 컸다는 게 장점이었다. 이미 계획을 하고 저희에게 이야기를 하니 반대할 수가 없는 거다. 그래도 실행의 우선순위를 정하자, 선택과 집중을 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장지원) 10명에 달하는 대가족의 캐스팅은 <장손>이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였다. 코로나19 기간인 데다가 OTT 시리즈물의 증가로 배우 섭외가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이었다. “신인 감독이고 제작사도 없다 보니 시나리오 전달이 잘 안 되더라.”(오정민) 이렇게 하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는 마음에 개념을 달리했다. “알려진 배우를 고집하는 대신,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우리와 같이 뜻을 같이 해줄 사람, 연기에 대한 니즈가 가장 먼저인, 함께 해줄 배우들을 만났다.” (오정민) 홍보 수단이 많지 않은 독립영화의 경우, 이후의 흥행을 생각하면 독립영화 신에서 알려진 배우를 캐스팅하는 게 일종의 원칙이다. 이와 달리 <장손>은 우상전, 손숙, 차미경, 오만석, 안민영, 정재은 등 주로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을 토대로 연기력과 조화를 우선시 하며 가족 역할을 할 배우들을 조합해 나갔다. 연극무대에서는 알려졌지만 독립영화는 첫 도전이라 다소 우려 섞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강승호 배우를 메인 캐릭터인 ‘성진’으로 캐스팅한 것도 모험적인 시도였다. 그렇게 작품에 맞춘 캐스팅의 결과는 효과적이었다. 정조은 프로듀서는 “우리 작품의 모든 배우들이 한 마음이었다. 작은 영화라고 소홀히 하는 대신 어떻게든 맞춰야 한다는 의지를 보여주셨다. 덕분에 10명의 주연과 조연, 단역까지 무리 없이 스케줄을 맞출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오정민 감독의 앙상블 연기 디렉팅도 돋보였다. “감독님 특징이 배우들과의 교류를 스스럼없이 잘한다는 것이다. 그 분위기가 작품에 결과적으로 잘 이입이 되었다.”(장지원) 본 촬영 전에도 배우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스스럼없이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는 점, 촬영 기간인 6개월을 촬영지인 경남 합천에서 합숙하며 지내는 동안 형성된 믿음도 ‘가족 같은 분위기’의 좋은 앙상블 연기를 만들어냈다.
사계절과 마을 전체를 담은, 미적 언어의 구현막상 <장손> 프로젝트의 가장 큰 난관은 따로 있었다. 여름, 가을,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겨울까지, 세 계절을 한 작품에 담아내는 건 규모와 환경을 고려해볼 때 프로덕션상 가장 큰 시도로 보인다. 전반부 촬영을 한 후, 휴지기를 가지고 다시 촬영을 해야 하니 제작비가 무려 400% 증가. 작품을 두 편 찍는 거나 마찬가지의 체감이었다. 장지원 프로듀서는 “1년에 한 번씩 감독님께, 꼭 세 계절을 다 찍어야 하냐고 물어본 것 같다”(웃음)면서 “감독님께서 계절에 대한 엄청난 확신이 있었다. 어느 순간 이 프로덕션에 있어서 계절의 구현이 우리들의 가장 높은 우선순위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오정민 감독에게 계절의 구현은 “가족의 변화를 담아내는 방법이자, 영화의 주제와도 맞닿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1순위 요소였다. 철저하게 계획된 플랜으로 <장손> 팀은 계절의 변화를 담아내는 데 주력하고 그것을 가능성으로 이끌었다. 총 6개월의 촬영 기간 중 겨울 촬영에 앞서 2개월의 휴지기가 주어졌다. 전반 촬영 기간에 후반기 촬영을 최대한 준비하고 휴지기에도 프리 프로덕션을 철저히 해서 실제 촬영 기간을 최대한 줄여 나감으로써 중간에 주어진 시간의 손실을 막았다. 정조은 프로듀서는 “휴지기에 감독님이 그간 찍어 둔 부분을 충분히 검토했고, 저희도 편집본을 검토하면서 불필요한 에너지를 줄여 나갈 수 있었다”며 난제였던 계절을 담아내는 프로덕션을 무리 없이 완수해 나갔다고 말한다.
<장손>의 또 다른 주인공인 가족들의 집을 다시 렌트하는 것도 관건이었다. “계속 집주인에게 안부 전화를 드리고 친밀도를 형성해 나가다 보니, 그 분들께서도 흔쾌히 촬영을 허락해주시더라.” (정조은) 친화력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는 것은, 이 부분이야말로 <장손>의 유려한 미장센을 완성할 수 있었던 프로덕션상의 노력이자 비결이었기 때문이다. <장손>에서 70%를 점유하는 인물들의 배경이자 공간인 집을 필두로 두부공장을 제외한 모든 곳은 실제 경남 합천의 마을에서 로케이션을 했다. 마을 전체가 영화의 배경이자, 그 전경을 담는 것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언어이자 미적 구현이었다. 최근 독립영화가 미장센에 대한 고민을 줄이고 점점 배우들의 마스크로 다가가는 클로즈업에 의존하는 경향에서 벗어나, <장손>은 확장된 시선과 카메라 워크로 가족이 위치한 지금, 여기를 관객들이 조망하게 해준다. 미장센의 방법론으로 볼 때는 오히려 지금은 사라진 클래식한 영화들을 연상하게 해주는 시도다.
온 마을 전체를 세트장처럼 활용하는 방식, 몰입과 축소 대신 확장하는 화면의 구현에 대해 오정민 감독은 “효율이나 경제성의 원칙에 따라 버려왔던, 어쩌면 비효율적인 것을 기꺼이 가져와서라도 영화적인 것에 대한 감흥을 어떻게 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한다. 화재로 집이 불타는 장면, 엔딩 신의 전경 등에서 보인 스펙터클한 장면의 감흥은 물론 실행 단계의 프로듀서들이 감당해야 할 과제이기도 했다. 장지원 프로듀서는 가족사진을 찍고 이동하는 장면 역시 <장손>의 촬영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 장면으로 손꼽는다. “노인 인구가 많은 마을이다 보니 빈집이 많았다. 조명팀이 하나하나 조명을 설치하고, 미술팀이 소품도 다 꾸며야 했다. 무엇보다 출연해주신 합천영화제 분들과 협조해주신 주민들의 도움이 컸다.” 정조은 프로듀서는 “상여 장면은 거의 전쟁처럼 찍었다. 하루에 장소를 3~4번 바꾸면서 그 많은 배우들과 스태프가 모두 이동했고, 해가 떨어지니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되었다. 그런데 한마음으로 하니 불가능했던 게 또 척척 되더라. 전쟁 같았지만, 그만큼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한다. 가족사진 장면은 하루에 모인 스태프와 보조출연을 포함한 배우가 92명에 달했던 촬영이었다. 오정민 감독의 아버지, 어머니까지 모두 동원되어 다같이 만들어낸 장면이었다.
<장손>은 개봉 전인 2023년 시드니영화제 초청, 부산국제영화제 3관왕(KBS 독립영화상, CGK 촬영상, 오로라미디어상) 수상으로 국내외 영화제에서 먼저 소개된 후 2024년 9월 11일 개봉했다. 그러나 배급 상황이 기대만큼 따르지는 못했다. 영화제로 얻은 화제성은 미비했고 60개의 상영관은 <장손>을 알리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장손>은 센세이셔널한 티저 포스터, 감독의 적극적인 GV, 방송 참여를 비롯해 동시기에 개봉한 독립영화가 함께 관람, 배급을 촉구한 캠페인 ‘8주간의 약속’ 등을 통해 주어진 한계에서도 최대한 홍보를 해 나가며 영화를 알렸다. 20회 차가 넘는 GV도 관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방법이었다. “GV가 유일한 홍보 수단이니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여성학자 GV, 아빠랑 아들 기획전 등을 만들어 영화를 보고 여러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정조은) “영화제에서 화제성이나 호평보다 더 주요한 건 결국 관객들이 서서히 영화를 알아봐주시면서 찾아주시는 거였다.” (오정민) 처음엔 우려 지점으로 꼽힌 부분들이 관객에게 오히려 신선하게 어필했고 호평의 요소로 다가왔다. 이런 노력은 서서히 가속화되며 수치로 입증되었다. 스크린 수 60개로 출발한 영화는 개봉 1주 차에 시장 배급 상황으로 27개로 줄었으나, 개봉 2주 차에 다시 40여 개로 늘어나 이례적인 확대 상영을 했다. 2주차 주말 이틀 좌석 판매율이 21.7%에서 28.1%로 각각 오를 정도로 <장손>은 작지만 힘이 센 영화가 됐다.
첫 장편의 호평 이후 오정민 감독은 지금 OTT 작품을 준비 중이다. <장손> 이전부터 생각해 둔 작품이고 아직은 글을 쓰는 단계다. “제안이 들어오는 작품은 많은데 따져보면 아카데미 졸업 때가 제안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시장 상황이 안 좋다는 걸 체감한다”고 한다. “요즘은 어딜 가나 차기작 질문이 많은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속이 바짝바짝 탄다. 빨리 해야 할 것 같다.”(웃음) 오정민 감독은 작품을 쓰는 동안도 독립•상업영화에 제한을 두지 않고 들어오는 제안은 열어 두고 검토하고 자신과 맞는 작품을 시도해보려고 한다. 정조은 프로듀서는 지금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하는 홍성은 감독의 두 번째 작품 <차가운 것이 좋아!>에 참여했다. 올해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장지원 프로듀서는 차기작으로 드라마를 준비 중이다. 마치 ‘벚꽃연금’이 보장된 히트곡처럼 앞으로도 명절 시즌 특별상영을 노려볼 만하다는 말에, 이들은 “<장손> 추석 특별상영으로 또 한 번 관객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다. <장손>이 거둔 성과와 제작 노하우가 한국영화의 또 다른 발판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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