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Quick Menu

PEOPLE ❶

“적극적인 해석이 작동되면 좋겠다”

<어쩔수가없다> 박찬욱 감독

글 _ 김혜선(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사진 제공_ CJ ENM

2025-10-01

반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어쩔수가없다>는 16년 전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The Ax)>를 읽고 판권도 구입하기 전에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을 만큼 박찬욱 감독의 마음을 지배했던 이야기다. <박쥐>(2009), <스토커>(2013), <아가씨>(2016), <헤어질 결심>(2022)까지 다른 작품들을 만들어 가는 와중에도 지속적으로 영화화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을 만큼. 그 이야기는 오랜 투자 난항의 시기를 거치고, 다양한 의지를 모아, 한국적 배경을 입고 각색되었다. 주인공은 제지 회사에서 특수종이를 담당해 온 25년 경력자 유만수(이병헌)다. 열심히 일해서 마련한 교외의 주택, 아름다운 아내 미리(손예진), 아들 시원(김우승), 딸 리원(최소율), 반려견 두 마리 시트, 리트와 함께 만족스러운 삶을 살던 만수는 하루아침에 해고되면서 재취업을 위해 자신의 경쟁자들을 살해하게 된다.

만수가 죽이기로 마음먹은 이들은 제지 업계의 베테랑이었다가 해고된 구범모(이성민)와 고시조(차승원), 그리고 유일하게 현직에 있는 최선출(박희순)이다. 마치 자기 자신을 보는 듯한, 그리고 자신이 되고 싶은 위치에 있는 이들을 향한 살인 행각.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는데, 만수는 1년 넘게 실업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자 ‘어쩔 수가 없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그의 해고와 재취업을 향한 과정은 시대를 막론하고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감당하게 되는 직업의 해체와 인공지능(AI) 시대에 다가올 미래의 공포를 끌어안고 있다. 우리 대다수가 그런 것처럼.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토론토국제영화제 국제관객상 수상, 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선정으로 <어쩔수가없다>의 화제성은 최고조에 올라 있었다. 그리고 개봉 직후 강렬한 논의를 낳으면서 개봉 첫 주말 관객 수 100만을 넘어섰다. 이미 개봉 전에도 쉴 틈이 없었던 박찬욱 감독은 개봉 직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조금이라도 더 많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다. 가장 먼저 꺼낸 개봉 소감은 무엇보다도 ‘극장으로의 회귀’였다. “<어쩔수가없다>가 극장에 사람들이 돌아오는 데 기여를 하면 좋겠고, 그래서 다른 한국영화를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좋겠고, 심지어는 한국영화가 아니어도 좋으니까 ‘극장에서 영화 보는 경험이 해볼 만했지, 잊고 있었던 이 감각이 다시 살아나네’라고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베니스·토론토·부산국제영화제 등을 거치고 국내 개봉 후 첫 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관객들에게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어쩔수가없다>



코미디야말로 비극의 핵심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2악장 아다지오’가 오프닝에서 흘러나올 때, 이미 이 곡의 선율은 깊은 슬픔의 장조를 띠고 관객을 만수와 미리의 가족 앞으로 데려다 놓는다. 풍성하고 청명한 계절 가을에 이 가족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이병헌이 맡은 만수는 회사에서 장어세트를 선물 받았다는 사실이 격려인 줄 알았지, 해고 대상자를 위한 위로인 줄 모른다. 찰리 채플린 같은 콧수염을 단 채 열심히 일하던 그는 마침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거듭되는 실패의 길로 들어선다. “처음 원작을 읽었을 때 거기에 담겨 있는, 은근히 풍겨 나오는 유머들이 좋았어요. 그게 뭔가 자극이 되었던 것 같아요. 이걸 코미디 영화로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만드는 과정에서는 아무래도 시스템 속 노동자의 이야기이다 보니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가 생각이 안 날 수 없었죠. 그 생각이 한 번 드니까 자꾸 더 코믹한 쪽으로 가게 되고, 배우들이 막 어우러져서 연기할 걸 상상하니까 점점 더 웃기게 되는 쪽으로 갔어요. 웃길수록 인물에 대한 연민이 커지고, 비극성이 더 드러난다고 생각했죠.”

박찬욱 감독이 생각하는 코미디야말로 비극의 핵심이다. 처음엔 난처하고 당황스러우며 어쩔 줄을 모르다가 경쟁자들에게 몰입해 유연해지고 계획적이 되는 만수의 여정은 그래서 보는 이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웃어야 하는가, 울어야 하는가. 응원해야 하는가, 비난해야 하는가. “<어쩔수가없다>가 보여주는 코미디의 많은 부분이 만수의 어리석음, 그의 미숙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에서 비롯됩니다. 자기 직업 세계에서는 노련한 프로페셔널인데, 살인이라는 새로운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완전 초보로서 허둥지둥하는 사람이니까. 그때 생기는 코미디라는 것은 굉장히 슬픈 것이죠.”

박찬욱 감독은 행복할 것만 같던 만수 가족의 앞날에
코미디를 통한 비극을 선사했다



공포에 잠식되는 사람들 미국이 배경인 원작을 ‘한국화’하는 과정에서 박찬욱 감독이 각본가 중 한 명인 이자혜 작가(각본크레디트에 박찬욱, 이경미, 돈 맥켈로, 이자혜 총 4명의 이름이 올라 있다)와 주로 많이 고려했던 점은 인물들의 가부장적인 면과 한국인의 부동산으로서의 집에 대한 애착이다. “만수부터 선출까지 포함해서 드러나는 어떤 남성성,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거 있잖아요. 만수는 거기에 ‘아빠는 이래야 한다’는 것까지 더해져서 처절하고 불쌍하면서도, 또 우스꽝스럽기도 한 면을 더 많이 강조했어요. 그리고 현재로 시대가 변하는 관계로 AI 용어 자체가 새로 등장하면서 결말 부분이 많이 바뀌게 되었죠.”

‘대한민국의 가부장’ 만수는 마당과 온실이 있는 번듯한 주택에서 살면서, 아이가 비싼 첼로 레슨도 받을 수 있게 하고, 부부도 각자 취미생활을 하며, 반려동물도 넉넉히 거둘 수 있을 정도로 번다. 그러나 모두가 영원히 그럴 수 없다. 만수 역시 마찬가지다. 해고와 재취업이 지닌 잔혹한 속성과 그로 인한 공포는 현대 사회 대부분의 직업에 적용되는 것이기도 하다. 고꾸라질 위기를 넘고 성공했다고 해서 그 공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박찬욱 감독 역시 스스로에게도 비슷한 공포가 있다고 말한다. “제가 <공동경비구역 JSA>(2000) 전에는 너무나 어려운 시절을 겪었죠. 이제 잘되는 듯해서 계약서도 썼는데 무산되기도 했어요. 그 당시 감독들이 조금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 중에 감독의 명함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있었어요. 작품의 제목과 감독의 이름이 들어간 명함을 영화사가 만들어주면 영화가 정말 만들어지나 보다 하고 마음을 놓는데, 그렇게 되고도 휴지 조각이 되어 버린 명함이 여러 개 있어요. 그렇게 보낸 시간이 7~8년인데, 그때의 공포는 제 안에 아주 깊이, 아주 크게 자리 잡고 있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만든 영화가 수익을 내지 못하면 당장 한두 편은 어떻게 버틸지 몰라도 서너 편이 되면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겠죠. 그런 날이 당연히 오리라고 생각해요. 원작 소설에 제가 반했던 것은 이런 이유도 작용을 했겠죠.”

<어쩔수가없다>의 인물들은 재취업이 힘들 것이라는 공포에 서서히 잠식되어 가는 만수를 중심으로 구범모, 고시조, 최선출을 비롯해 그의 아내들로 구성된다. 특히 만수-미리 커플과 범모-아라(염혜란) 커플은 대비와 연결성이 더욱 강조되는 커플들이다. “만수와 범모는 비슷한 사람인데 그 부인들은 좀 더 균형 감각, 현실 감각이 있고 폭넓게 볼 줄 아는 사람이죠. 한편으로는 부인들끼리의 연결성도 중요합니다. 이름도 이미리, 이아라라고 비슷하게 받침 없는 음절로 지었어요. 상반된 캐릭터들 같지만 은근히 비슷하죠. 댄스를 좋아하는 미리, 연극 배우인 아라. 하는 말들도 비슷해요. ‘꼭 제지업이어야 하느냐, 다른 데 눈을 돌려봐라.’ 범모 부부의 피크닉을 훔쳐보는 만수가 그들의 대화에 자꾸 빨려 들어가는 이유는 범모가 자기와, 또 아라가 미리와 비슷하기 때문이에요. 거울을 보고 자신을 생각하는 것처럼 또는 정말 베스트 프렌드인 것처럼 범모에게 마음이 가는 거죠.”

만수-미리(왼쪽)와 범모-아라 커플은 닮으면서도 다른 캐릭터로 연결성을 가진다



집, 중산층 욕망의 내부 만수가 유독 집착을 보이는 집은 말 그대로 만수의 욕망의 공간이다. “미술감독님과 제가 고민을 참 많이 했어요. 집이 일단 규모가 있는데, 만약 세종시 인근에 있는 변두리에 새로 조성된 타운하우스가 있고 그 옆의 산 쪽에 이런 집이 있다, 50년 된 집이다, 하면 그렇게 비싸지가 않아요. 진짜로. 제가 파주에 살아서 잘 아는데요.(웃음) 일단 집값은 제로이고, 땅값만 있을 뿐이에요. 부동산에 관심 많은 우리 한국인은 만수의 집이 재산 가치로서는 크지 않다는 걸 알 거라고 생각했죠.”(웃음)

오래된 주택을 살기 편하게 꾸민 내부는 ‘많은 부분 만수가 손수 일을 했을 것이다, 은행 빚도 졌을 것이다’라는 가정하에 만들어졌다. 그렇게 설정한 이유는 분명하다. 만수는 스스로 블루칼라라고 생각하는 노동자 출신 중산층이고, 그가 살아온 과정을 생각할 때 “관객이 ‘저런 이력을 가진 사람이 저 정도 이뤘다면 놓치기가 얼마나 싫겠는가’라고 생각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토록 중요한 집을 찾기 위해 프리 프로덕션을 시작하기 전부터 로케이션 헌팅을 시작했고, 정원 조경도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집 안과 밖은 물론, 만수의 욕망이 가장 깊숙이 도사리고 있는 온실에도 신경을 썼다. 너무 화려하고 멋있지는 않되, 충분히 아늑한 곳이 되도록. 그 안에서 만수는 식물을 키우고 분재를 한다.

“분재는 류성희 미술감독의 제안이었는데요. 분재의 세계를 접할수록 아주 아주 독특한 매력이 있었어요. 자연환경 속에 방치했다면 어떻게 죽었을지 모르는 나무를 가져와서 애지중지 돌보고 물 주고 영양분을 제공하고 아끼면서 키우는. 극단적인 돌봄의 작업이죠. 그런 한편 자기가 원하는 모양으로 꾸미기 위해서 구부리고 잘라내고 굉장히 인위적인 모양을 만들잖아요. 폭력적이기도 하죠. 극 중에 만수가 나무를 막 구부리다가 결국 부러뜨리는 장면도 나오는데요. 만수의 내면 깊은 곳에 폭력적인 뭔가 있다, 아내 말에 의하면 만수가 술 먹고 아들을 때렸다는 얘기도 하니까, 그런 면도 보일 수 있고. 결국에는 시체를 처리하는 방법이 되고, 여러 가지 면으로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말처럼 애정과 폭력이 교차하는 곳, 그곳은 만수의 온실 내부일 뿐만 아니라 양면성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인간의 내면이기도 하다.

박찬욱 감독은 만수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욕망을 드러내는 장소인 집과 온실에 많은 신경을 썼다



주저하지 않고 표현하는 <어쩔수가없다>는 잠시도 멈추려고 하지 않는 영화다. 모든 순간 이미지와 사운드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초반 30분간 이어지는 컷의 독특한 리듬감, 도발적으로 지르는 대사들과 오리지널 스코어, 압도적인 삽입곡들이 그 사이사이를 오가며 빈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니 마음껏 내지른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그것이 관객의 마음을 꿰뚫고 채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전작 <헤어질 결심>과는 확연히 다른 스타일이다. “<헤어질 결심>은 여백이 많은 영화이고 정적이고 느리죠. 그런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다음 작품은 저도 모르게 달라진 것 같아요. 저는 늘 영화 만들 때 그래 왔더라고요. 반복되는 작업을 하면 스스로 지루하고 일하는 재미가 없어서 그런 것 같은데요. <올드보이>(2003) 때나 특히 <친절한 금자씨>(2005) 때처럼 절제 없는, 그래서 이 장면에 필요한 무엇인가 있다면 그것을 주저하지 않고 다 표현하겠다는 마음으로 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이런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난 장면을 꼽으라면 역시 만수가 첫 번째 살인을 감행하기 위해 구범모, 그의 아내 아라와 셋이 몸싸움을 벌이는 일명 ‘고추잠자리 신’이다. 조용필의 명곡 ‘고추잠자리’의 가사인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슬퍼지지.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울고 싶지”가 만수와 범모의 마음을 대변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게 영화의 중간 지점이거든요. 취직하기 위해서 사람을 죽인다는 이야기인데, 대체 언제 죽이는 거냐 하는 불만도 생길 때 즈음이죠.(웃음) 첫 살인이 이렇게 오래 걸리면 나머지들은 어떻게 되는 거냐 하더라도 저는 어쩔 수가 없었어요.(웃음) 아주 평범한 사람이 이렇게 변화되는 과정을 자세히 묘사하면서 따라가지 않으면 이 영화가 무슨 소용이 있나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첫 살인이 얼마나 힘들까 싶고. 그래서 불가피하게 조금 길게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오랜 기다림 끝에(웃음), 관객이 만족스럽게 느낄 수 있는 장면이어야 할 것 같고, 영화에서 좀처럼 보지 못했던 독특한 신을 만들고 싶었죠.”

부부 싸움이면서 침입자 만수와 맞서는 싸움이자 카페를 차리라는 합리적인 제안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범모를 꾸짖는 만수와 아라가 같은 편이 되기도 하는 희한한 순간. 엄청나게 울리는 음악 소리에 고함 치듯이 대화를 해야 하는 이 신은 “보고 나면 관객도 좀 지칠 정도로 힘이 빠지게 만들고 싶었던” 장면이다.

만수가 첫 번째 살인을 시도하는 일명 ‘고추잠자리 신’



매번 음향을 창조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고민한다는 박찬욱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과감하게, 표현주의적으로, 아주 노골적으로 많이 사용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해고되기 전 만수에게 공장장이 “너 혹시 장어 선물 받았냐? 아니지?” 할 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만수의 멍한 얼굴에서 바로 다음 컷으로 집 앞에서 아이들 등교시키는 만수 모습이 연결될 때가 좋은 예다. 그때의 만수에게도 아무 소리가 안 들리다가 뒤늦게 아내가 “여보!” 하니까 갑자기 이제 매미 소리와 바람 소리들이 확 들어오는 식이다.

영화 엔딩에서도 그런 사운드 효과가 입혀진다. “문 제지에 첫 출근을 하려는 만수의 모습 위에 리원이의 첼로 연주가 계속 들리고, 만수가 공장에 들어오고 나서도 음악이 더 크게 들리죠. 공장 소음은 거의 안 들리고. 그것은 비현실적인 거죠. 반대로 공장에 들어가서 이어 플러그를 끼면 오히려 공장 소음이 크게 들려요. 만수가 편안하고 ‘여기가 이제 내 일터구나’라고 받아들이는 마음 같은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언뜻 보면 뭔가 반대되는 것 같고 이상하겠지만 관객이 금방 다 적응하고 이해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음향을 통해 <어쩔수가없다> 캐릭터의 감정과 상황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려고 했던 박찬욱 감독



각자의 역사를 종합한 시선으로 <어쩔수가없다>를 보는 내내 관객은 만수와 그의 가족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정말 어쩔 수가 없었을까. 혹은 어쩔 수는 없겠지만 저러면 안 되는데. 그 외에 전혀 다른 생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죄는 응당한 대가를 치를 것인가. 이 가족은 유지될 것인가. 죄와 벌에 관한 질문을 던지며 온전함과 붕괴 사이를 거니는 ‘박찬욱의 세계’, 돌이켜보니 뜻밖에도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 <아가씨> <헤어질 결심>에 이르기까지 공통되게 이룩된 세계다.

“<올드보이>만 해도 오대수(최민식)가 기억을 지우는 데 성공을 했느냐 아니냐가 불분명한 채로 끝났죠. 오대수가 처벌을 받아서 기억을 완전히 지우는 데 성공한다면 자신의 죄를 그냥 모르고 살아가는 거니까 큰 벌을 받았다는 것도 모를 수 있잖아요. 그에 따라서 정말 아주 근본적으로 바뀌는 셈인데요. 이 영화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만수가 가족들에게, 특히 아내와 아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지는지 아닌지. 새로 간 직장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아내와 아들의 마음에 생긴 상처는 결코 쉽게 아물지 않을 것이고, 아물어도 굉장히 힘들게 아물 것이고, 또는 영영 그렇게 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어떻게 3명을 죽인 연쇄 살인범과 살 수 있겠습니까? 관객이 자기의 인생관에 맞춰서, 자기 가정이 어떤 상태인지, 자기 부모의 사이가 어땠는지, 자신의 역사들을 다 종합해서 각자 선택해서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해요.”

<어쩔수가없다>는 인물들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만수의 마음도, 그의 아내와 아들딸의 마음도.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다 동원해서 종합적인 인상을 만들어주는 것이 감독이 할 일이죠. 관객이 저 사람의 마음에 지금 어떤 감정이 들어 있는지, 지금 뭘 느끼고 있는지를 계속 주시하면서 궁금해하게 하는 것이 맞다고 봤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신이 저지른 일이 완전 범죄가 되어 가나 싶어서 만수의 마음이 복잡하죠. 관객이 만수의 마음이 무엇일지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적극적인 해석, 그런 게 작동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양산업인 제지업 안에서 인간이 사라지고 대체되어 가는 풍경. 우리 삶의 많은 곳에서도 벌어지는 <어쩔수가없다>와 같은 풍경에 미처 대처할 자세를 갖추지도 못한 채, 우리는 매일매일을 맞는다. 그 와중에 영화의 숨은 알레고리를 찾으려는 관객에게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거리감을 느끼기는 관객에게도, <어쩔수가없다>의 면면은 수많은 생각들을 가능케 한다. 무엇이건 좋다. 많이 얘기해봐야 한다.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으로 해석해볼 수 있는 이야기가 우리에게 당도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어쩔수가없다 박찬욱감독 한국영화 이병헌 손예진 이성민 염혜란 박희순 차승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