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Quick Menu

(제공=모티브픽쳐스)

(제공=모티브픽쳐스)

GLOBAL

베트남 사람들의 ‘진짜’ 삶을 고민했다

한-베 합작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의 성공 전략

글 _ 곽명동(마이데일리 기자)

2025-10-01

한국-베트남 합작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가 베트남을 뒤흔들었다. 지난 8월 1일 개봉 후 단 3일 만에 84만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돌파했고, 오랜 기간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최종 210만 관객을 불러 모았다. 이는 올해 베트남 로컬영화 가운데 7위의 기록인데, 한국과 베트남이 50대50으로 참여한 첫 합작영화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한국영화 산업의 위기 탈출용 해법으로 글로벌 공동 제작의 활성화가 자주 거론되고 있는 요즘,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의 흥행이 한국영화계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살펴봤다.

베트남 정서를 이해한 시나리오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는 베트남의 가난한 거리 이발사 환(뚜안 쩐)이 치매에 걸린 어머니 레 티 한(홍 다오)를 돌보다 건강이 악화되자, 한국에 사는 형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CJ ENM 김현우 해외제작 책임 프로듀서는 흥행 비결에 대해 “실제 있을 법한 배경 위에 구축한 인물 관계, 오랜 세월 쌓인 모자간의 애틋한 감성, 베트남 특유의 따뜻한 가족애와 우정을 모홍진 감독이 섬세하게 연출해 현지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평가했다.

이전에 흥행한 한국-베트남 합작영화들과 비교해서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는 제작 과정에서 차별화된 부분이 있었다. 김현우 프로듀서는 “<냐바누>(2023), <마이>(2024)는 현지 관객에게 가장 소구력 있다고 판단되는 아이템, 스토리, 장르를 현지 유명 감독 쩐탄과 기획, 개발해 제작사와 기획, 투자, 마케팅, 배급 등 전 기능을 당사의 베트남 법인 CJ HK 엔터테인먼트가 소화한 케이스다. 반면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는 모홍진 감독이 기획한 스토리로, 제작사, 투자사, 스태프, 배우들까지 다양한 분야의 한국·베트남 분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힘을 합쳐 로컬라이제이션(현지화)을 한 영화”라고 설명했다. 이어 “영화를 만들어 가는 방식 면에서 <마이> <냐바누>와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의 차이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철저히 현지 관객과 정서를 타깃으로 하고 기획, 제작, 마케팅, 배급, 프로모션 등을 펼친 점에서는 같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제작사 모티브픽쳐스의 김대근 대표는 흥행 요소로 ‘소재’를 꼽았다. 그는 “문화가 다른 나라의 배우, 스태프와 협업하려면 무엇보다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소재가 중요하다”며 “이를 담아내는 시나리오의 완성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연출을 맡은 모홍진 감독은 오랫동안 베트남에 머물며 현지 정서를 이해하고 시나리오에 녹여내기 위해 노력했다. 김대근 대표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시나리오 초안은 한국말로 되어 있어서 번역 작업을 거쳐야 했다. 이를 담당해줄 베트남인 번역가를 섭외해 한국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베트남에서는 맞지 않는 표현들을 찾아냈다. 이후 번역 초고를 가지고, 베트남 영화인들에게 모니터링을 통한 2차 검증을 진행해 시나리오에 반영했다”고 덧붙였다.


베트남 관객 210만을 모은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제공=모티브픽쳐스)



언어 장벽 넘는 실생활 캐릭터의 힘 <널 기다리며>(2016), <이공삼칠>(2022)을 연출한 모홍진 감독은 “영화는 캐릭터의 힘”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캐릭터는 거짓되어 보여서는 안 되며, 정서와 감성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선배들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글을 쓴다고 밝힌 바 있다. 김 대표는 모홍진 감독의 그런 노력을 옆에서 지켜봤다. “모홍진 감독은 숙소를 장기 렌트해 현지 생활을 하면서 베트남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습관, 정서 등을 관찰했다. 그들의 생활 패턴을 알아야 정서도 알 수 있어서 인근 공원, 카페, 극장 등에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실생활을 체득했다.” 모홍진 감독은 이러한 과정들을 거쳐 한국이 아닌 베트남 사정에 맞게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모티브픽쳐스 또한 모홍진 감독이 베트남에서 현지화 작업을 할 때 뒷받침을 해줬다. 김 대표는 현지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어떤 현지인에게 정보를 얻을 것인가였다”고 말했다.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는 베트남 서민의 이야기다. 그래서 모홍진 감독이 베트남 서민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들을 답할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섭외했다. 무엇보다 모홍진 감독이 그들과 소통하며 직접 느낀 것이 연출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모홍진 감독은 현지화 연구를 하는 내내 캐릭터에 맞는 배우를 섭외하기 위해 약 6개월간 한국과 베트남을 오갔다. 다양한 베트남 영화들을 관람하며 베트남 배우들의 연기 톤과 특징들을 분석하고, 주연배우를 누구로 할지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배우들의 힘도 물론 컸다. 주인공 환을 연기한 뚜안 쩐은 현재 베트남 톱스타지만, 캐스팅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김 대표는 “캐릭터에 꼭 맞는 배우가 진정성 있게 연기해준 결과가 흥행으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뚜안 쩐과 홍 다오는 베트남 역대 흥행 1위작 <마이>에서도 모자로 출연한 바 있어, 이번에도 실감 나는 호흡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모홍진 감독은 “촬영 전 배우들에게 ‘세상에는 통역이 필요 없는 언어가 있다. 그게 마음이다. 캐릭터를 이해하고 마음으로 표현하면 정서는 다 똑같다’고 말했다. 한국어와 베트남어의 차이는 잠시의 불편일 뿐이다. 동물 세계에서도 부모와 자식의 표현은 비슷하지 않나. 배우들이 제 생각을 잘 읽어주어 너무 고마웠다”는 소감을 밝혔다. 배우들에겐 언어 장벽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모 감독은 “사실 베트남 배우들이 한국 배우들과 다른 점은 언어 말고는 없었다”며 “모두 창작자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줬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베트남 배우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한국 배우가 등장한다. 바로 홍 다오의 전남편 정민 역으로 특별출연한 정일우다. 그는 개봉 직전 베트남 호찌민을 방문해 현지 팬과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팬들은 그를 ‘베트남 국민 사위’라 부르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정일우는 개인 일정으로 베트남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너무 많은 사람이 자신을 알아보며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으러 와서 놀랐다는 이야기를 사석에서 한 적이 있다. 그 이야기가 김 대표의 귀에 들어왔고, 결국 출연 제안까지 이어졌다. 김 대표는 “한국과 베트남에서 동시에 인지도가 있는 배우가 필요했는데, 정일우는 캐릭터와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며 “서로 만족스러운 캐스팅이었다”고 설명했다.

특별출연한 정일우는 영화의 인기와 함께
베트남 현지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제공=모티브픽쳐스)



성장하는 베트남, 신뢰 받는 한국영화 베트남 인구는 약 1억 159만 명, 평균 연령은 30세(한국 45세)다.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7%에 달하며, 극장가는 젊은 관객으로 붐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베트남영화 시장은 팬데믹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였고, 향후 연평균 20% 안팎의 성장이 기대된다. 김현우 프로듀서가 젊은 관객을 극장에 불러오는 마케팅에 공을 들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는 “베트남 젠지(Gen-Z: 1990년대 중반~2000년대생) 관객을 타깃으로 하는 소셜미디어 마케팅에 집중하여, 촬영 기간부터 준비한 다각도의 소셜 콘텐츠로 관객과 인터렉티브한 마케팅을 펼쳤다”고 말했다. 이어 “개봉 전 유료 시사(스닉쇼)부터 정식 개봉에 버금가는 압도적인 오프닝 스코어를 낼 수 있었고, 이러한 폭발적인 화제성에 기반해 정식 개봉 3일 만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며 ‘Gen-Z 관객들이 엄마와 함께 안 보면 안 되는 영화’로 포지셔닝을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류는 이미 동남아시아의 주류 문화로 자리 잡았다. 김현우 프로듀서는 “베트남 관객은 한국영화의 독창적이고 예측 불가한 스토리, 신구 배우가 어우러진 연기, 장르별 높은 완성도를 신뢰한다”며 “코미디는 웃기고, 드라마는 감동을 주며, 장르영화는 반전과 재미를 확실히 주는 점이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김대근 대표도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시사회에서도 베트남 스태프가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한국영화의 색깔이 느껴졌다’고 말했다”며 “한국영화에 대한 이러한 신뢰가 곧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Gen-Z 관객들이 주도하는 베트남영화 시장에서
한국영화는 높은 신뢰를 얻고 있다(제공=모티브픽쳐스)



합작영화, 한국영화의 돌파구 될까 한국영화 산업은 코로나19 여파, 티켓 가격 인상,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 확대 등으로 침체에 빠졌다. 올해 제작비 30억 원 이상 상업영화는 20편도 되지 않는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이 “투자가 끊기면서 영화 현장에 돈이 마르고 영화인들의 생계가 위태로울 정도로 산업 생태계가 무너졌다”며 “심폐소생술 수준의 긴급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합작영화는 충무로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

김원국 하이브미디어코프 대표는 “멀티플렉스를 거쳐 글로벌 OTT의 등장으로 또 다른 챌린지를 맞이하고 있는 시점에서 합작영화는 자국 영화 점유율이 70%에 육박하는 베트남 산업과의 장기적인 전략적 협업 모델 모색과 함께 한국영화의 글로컬라이제이션(세계화와 현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을 현실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베트남 외에도 인도네시아 내 파트너들과 좀 더 본격적으로 배급 및 공동제작을 논의 중이며, 동남아시아뿐 아니라 중국, 일본, 대만 등에도 다양한 협업 기회가 열려 있다”고 전했다.

김현우 프로듀서 역시 “베트남 관객이 한국영화에서 좋아하는 우수한 스토리텔링 구축 능력을 기반 삼아 새로운 아이템을 함께 기획하고 개발해보거나, 실질적으로 감독, 작가, 배우, 스태프 협업 등 하나씩 서로 잘하고 자신 있는 부분을 제안하면서 아이디어를 교환하다 보면, 어느덧 한 편의 합작영화를 만들고 있을 것”이라면서 “의지가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도전하라”고 조언했다.

글로벌 합작영화 제작은 위기에 빠진 한국영화계 내에서
새로운 기회로 여겨지고 있는 분위기다(제공=모티브픽쳐스)



호러부터 멜로까지, 다양한 한-베 합작영화 라인업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의 성공 이후, CJ HK 엔터테인먼트가 준비 중인 차기작은 호러 텐트폴 영화 <데몬 프린스>다. 이 작품은 기존 베트남 호러와 차별화된 정교한 스토리텔링과 입체적인 캐릭터 구축을 위해 오랜 기간 준비해 온 프로젝트다. 특히 베트남 대표 호러 전문 제작사인 프로덕션큐(ProductionQ)와의 첫 협업이라는 점에서 현지의 기대감이 크다.

CJ HK 엔터테인먼트는 연말까지 3~4편의 자체 제작 영화를 촬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라인업에는 베트남 역대 흥행 1·2위작인 <마이>, <냐바누> 계보를 잇는 가족 코미디, 드라마부터 새로운 콘셉트의 로맨스, 정통 호러까지 다양한 장르가 포함된다. 현지 고유의 매력적인 소재와 아이템을 발굴하는 데 집중하는 동시에, 한국 및 해외의 원천 콘텐츠를 활용해 베트남 관객의 정서에 맞춘 로컬라이제이션 작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매년 4~5편 규모의 로컬영화를 꾸준히 선보일 계획이다.

CJ HK 엔터테인먼트가 베트남 호러 전문 제작사와 준비 중인
한국-베트남 합작영화 <데몬 프린스>(제공=CJ HK 엔터테인먼트)

하이브미디어코프도 두 편의 베트남 영화를 제작 중이다. 먼저 <화씨 저택(Haunted Mansion)>은 홍쩐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실제로 ‘귀신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도는 베트남의 대저택 폐가를 배경으로 하는 공포극으로, 홍 감독은 단편영화로 해외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신예이자 베트남영화계에서 공포 장르의 차세대 주자로 꼽힌다. 이 작품은 연말 촬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다른 작품 <굿바이, 맘(Goodbye Mom)>은 시한부 엄마와 딸의 마지막 여행을 그린 멜로드라마다. 현재 주연배우 캐스팅이 진행 중이며 내년 초 크랭크인이 목표다. 연출은 베트남 최초로 5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보자>(2021)를 공동 연출했던 부응옥당 감독이 맡았다.

김원국 대표는 “수년간의 베트남 배급 경험과 제작 노하우를 토대로 현지에서 주목받는 제작사로 성장 중인 런업베트남과의 협업이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진성 런업베트남 대표는 합작영화를 만들 때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양국 모두에게 필요성이 있고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프로젝트여야 하며, 합작 파트너와의 교류와 검증 과정을 충분히 거친 뒤에야 제대로 된 협업이 가능하다.”

한국영화 베트남영화 한국베트남합작영화 합작영화 글로벌영화제작 글로컬라이제이션 엄마를버리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