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 or No
부디 완성도로 화제가 되기를
<전, 란>과 넷플릭스의 한국영화
<전, 란>과 넷플릭스의 한국영화
서병기 헤럴드경제 문화부 선임기자·
성찬얼 씨네플레이 부편집장 겸 기자 대담
- 진행
- 김혜선(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 사진
- 서범세
Yes or No
서병기 헤럴드경제 문화부 선임기자·
성찬얼 씨네플레이 부편집장 겸 기자 대담
양반과 노비는 동무가 될 수 있는가, 없는가. 민중은 왜 경복궁을 불태웠는가. 백성을 버리고 도망갔던 왕은 왜 경복궁 재건에 사활을 거는가. 한국 사회의 현재를 왜란기의 조선으로 은유하는 듯한 설정과 민중을 부각시킨 전과 란의 구조로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평가받는 넷플릭스 영화 <전, 란>. 공개 이후 반응이 갈리면서 우리에게 던져준 화두가 적지 않다. <전, 란>을 계기로 그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한국영화, 이른바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영화’를 돌아본다. <전, 란>의 영화적 장단점, 넷플릭스 영화로서의 성과와 한계, 그간 한국영화가 넷플릭스와 손잡으면서 벌어진 여러 상황들이 한국영화의 완성도와 산업 내부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함께. 서병기 헤럴드경제 문화부 선임기자와 성찬얼 기자 씨네플레이 부편집장 겸 기자가 <전, 란>과 넷플릭스를 이야기했다.
넷플릭스 영화 <전, 란>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면서 논란과 화제가 되었다. 그 논란을 어떻게 보았나?
나는 거부감이 크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넷플릭스 영화 <옥자>를 통해서 이런 논란을 겪어본 역사가 있다. 칸국제영화제가 넷플릭스 영화를 인정해줄 수 없고 극장에 걸리는 콘텐츠를 대상으로만 시상한다고 강력하게 나왔던 것도 벌써 몇 년 지난 이야기다. 아카데미 시상식도 애플TV나 넷플릭스가 제작한 영화들이 많이 노미네이트된다. 결국 작품성을 따져봐야지 극장에 걸렸나 안 걸렸나를 따지는 게 의미 있을까. 물론 <전, 란>이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의 일반 상영작이 아니라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은 상징성이 크다. 하지만 <전, 란>은 개막작으로 선정하지 못할 만큼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지는 않는다. 극장에 걸어도 좋을 컨디션으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행을 택했기 때문에 반대하는 쪽에서도 명분이 약하다. <옥자>가 먼저 겪었던 상징적인 사건의 흐름과 역시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전, 란>의 부산영화제 개막작 선정은 찬성하기 어렵지만 반대할 수도 없다. 개막작이라는 위치에 놓인 <전, 란>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더라도 <전, 란> 대신 개막작으로 선정할 한국영화가 있었느냐고 물을 때 없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부산영화제가 가진 전통과 의미를 아는 사람으로서, 개막작으로 <전, 란>이 최선인가 의문은 들지만 그 이상의 최선은 생각이 안 났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Q <전, 란>은 박찬욱 감독이 각본과 제작을 맡았고, 김상만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이 제작진에게서 기대했던 바가 있을 것 같다. 그간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영화’와 다른 성과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약간 부족한 부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좋았다. 전과 란을 이렇게 따로 병치시켜 놓은 전쟁영화를 별로 못 봤다. 임진왜란 관련 영화는 또 얼마나 많이 나왔나. 이미 <명량>(2014) <한산: 용의 출현>(2022) <노량: 죽음의 바다>(2024)가 있지 않나. <전, 란>은 극 중에서 의병들의 활약이 중요하게 나타나고 의병과 선조, 관군의 관계 설정도 확실하다. 선조(차승원)는 심지어 조선 정벌의 선봉에 섰다가 포로가 된 겐지(정성일)를 앞세워 의병을 죽이려고 한다. 이건 의도가 있는 거다. 신분제 사회의 권력관계가 이렇게 흔들리는 걸 보여주는 게 상당히 흥미로웠다. 현대적인 해석도 가능하다. 우리의 민중 사회 경제사가 많이 다뤄진다. 마구 나열해서 다큐멘터리처럼 설명하는 게 아니라 미장센을 활용하면서 사회를 해부하는 접근 방식이 흥미로웠다.
‘박찬욱 감독’이라는 이름은 매우 강력한 브랜드지만 연출자인 김상만 감독은 꽤 오래 공백기를 가졌기에 기대치는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런데 결과물은 꽤 만족스러웠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도 명확하고, 장르적으로도 어떻게 비틀고 클리셰를 가져가야 효과적인지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그리고 꽤 큰 제작 규모를 흐트러짐 없이 가져갔다는 점에서도 기대보다 훨씬 좋았다. 계급 문제도 장르에 잘 녹였다. 그런데 계급 문제가 영화의 전체적인 색깔과 완성도를 약간 흩트려 놓은 지점도 있다. 너무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우겨 넣어서 중반에 늘어지는 감도 있다. 물론 이 부분을 배우들의 연기로 끌고 가지만. 극 초반에는 조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박정민)와 그의 몸종 천영(강동원)의 관계에 접근해서 몰입도를 확 높였다면 이후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고, 관객이 ‘이 사람은 누구지?’ 하고 쫓아가야만 그 인물들이 제대로 보인다. 그게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부분이 있었다. 더 담백하게 인물들을 그려 나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100% 동의한다. 이야기를 만들 때 욕심이 많았던 것 같다. 의병대 책사 상문(전배수), 전쟁 통에 백성들을 이끌던 김자룡(진선규)은 대사 몇 마디 주어지고 사라진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있어도 역모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없다” 식의 대사로 캐릭터를 퉁 친다고 할까. 하지만 해외에서는 <전, 란>이 사극이라는 점이 오히려 글로벌한 보편성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일본 드라마 <쇼군>이 올해 에미상에서 18개 부문을 수상했다. 지금 시점에서 우리도 주목받는 글로벌 콘텐츠가 나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전, 란>은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면서 실제 몇 개국 톱10에 들어갔다. 유럽 언론들의 평가도 나쁘지 않다. 사극은 각 나라의 특수성을 반영하면서도 보편적인 시각에서 공감을 할 수 있는, 문화적 할인율이 높은 콘텐츠다. <전, 란>은 계급 갈등을 다루면서, 제3자가 보기에도 슬픔과 아픔에 공감할 수 있다는 면에서 괜찮은 영화다. 글로벌 OTT의 기준에 맞춘 상업적 역량이 있다. 그런 성과는 분명히 인정해줘야 한다.
<전, 란>의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가 <전, 란>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어느 순간부터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스토리보다 구조와 계급 얘기가 더 많이 나왔다. 그것도 하나의 성취이겠지만, 메시지가 너무 강해서 영화의 장르적 쾌감이 절감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사극 안에서 일종의 추격전 형식으로 인물들이 서로를 추적하는 방식이 굉장히 좋았다. 완성도와는 별개로 넷플릭스라는 대기업의 플랫폼을 빌려 한국영화를 만들었을 때 또다시 이만큼의 완성형이 나올 수 있을까. 액션의 수위라든가 표현 방법 면에서도 그렇고. <전, 란>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영화’로 나올 수 있는 최상의 상품이다.
그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부산영화제 상영관에서 <전, 란>을 본 사람들과 넷플릭스 공개 이후 본 이들의 반응은 차이가 크다. 화제성이 확연히 줄었다. 그 차이가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전, 란>을 좋게 봤지만, 그런 온도 차이는 이 영화 자체의 흡입력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의미다. 집에 좋은 TV가 있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컴퓨터 모니터나 노트북, 스마트폰으로 볼 텐데, 언제든지 영화를 끌 수 있는 환경에서 결국 영화를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이 부족했다는 것으로 읽힌다. 그리고 영화제만의 분위기라는 것도 있지 않나. 흔히 말하듯 극장에서 같이 웃고 떠들며 볼 때의 쾌감과 집에서 혼자 볼 때의 쾌감의 차이도 있지 않을까. 지금 와서 보면 <전, 란>은 오히려 극장 개봉을 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넷플릭스 영화를 대부분 노트북으로 본다. <전, 란>에 달린 댓글 중에 “노비 옷 입은 강동원, 노비 같지 않다. 노비 옷을 패션으로 만들어 버린다”라는 게 있었다. 노트북으로 봐서는 잘 모르겠더라. (웃음) 이런 예부터 시작해서 극장 스크린과 노트북이나 TV 화면에서의 관람 차이가 화제성을 삼켰다고 본다.
영화의 흡입력과 연결 지어서 얘기해볼 수 있는 게 <전, 란>의 구조다. <전, 란>은 이야기를 전, 쟁, 란이라는 3막 구조로 나눈다. 사실 극장에서 보면 중간에 영화가 아쉬워도 끝까지 볼 수밖에 없지만 넷플릭스로 보면 달라진다. 1막이 끝나는 순간, ‘이 영화 별로다’라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끌 수 있다. 막과 막 사이에 시간의 간격도 있고, 절묘한 연결성으로 이어진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현대 사회에서 2시간 동안 집에 앉아 뭔가를 봐야 한다면, 그 대상 자체가 엄청나게 흥미로워야 하는 거다.
나는 오히려 <전, 란>의 3막 구조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정여립이라는 이름을 던진다. 정여립의 ‘대동계’는 조선의 성리학 질서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이론과 실천의 결합을 통해서. 실제 ‘대동계’ 사람들은 한 달에 한 번씩 활쏘기 모임을 했는데, 그게 반란을 도모했다는 구실이 되었다. 반란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데도. ‘대동계’라는 것 자체가 조선의 왕이나 유학자들에게 거슬리는 거다.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같이 어울림을 표방한 ‘대동계’의 의미를 초반에 던져놓고 이것이 전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을 하나하나 가져가다가 임진왜란이 벌어진다. 그때 좋은 대사가 많다. 선조에게 “백성들 고혈을 빨아먹을 때는 언제고 제일 먼저 도망치냐”고 하지 않나. 실제 조선 왕들은 전쟁 시 자주 도망갔다. 영화는 결국은 범동(김신록)과 천영 등을 중심으로 살아남은 의병들이 ‘범동계’라는 이름으로 대동계를 이어가게 한다. 처음과 끝, 막과 막 사이에 적절한 연결성을 지녔다.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에서 얼마든지 중간에 시청을 중단할 수도 있지만, <전, 란>은 시청을 중단했다가도 2막이나 3막을 다시 볼 수 있게 하는 구조다. 새로운 관람 형태에 맞는 연결성을 가졌다고도 본다.
그간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된 한국영화는 몇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코로나19 시기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로 간 경우, 처음부터 넷플릭스의 투자로 오리지널로 만들어진 경우, 엔데믹 이후 극장과 넷플릭스의 글로벌 시장 중에서 넷플릭스를 택한 경우. 한국영화계의 탈출 전략으로 작용했던 각각의 경우에서 눈에 띄는 작품들이 있었다면?
코로나19 초기에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 온 경우는 <사냥의 시간> <승리호>를 들 수 있다. 두 번째, 넷플릭스의 투자로 오리지널로 만들어진 경우와 세 번째 엔데믹 이후에 극장 대신 글로벌 시장을 택한 경우는 섞여 있는 것 같다. <낙원의 밤> <정이>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길복순> <발레리나> <황야> <크로스> <무도실무관> <전, 란>까지 꼽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구성이나 의도가 아쉬웠던 작품들이 많다. <무도실무관>은 ‘이게 영화인가’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정이>는 인간과 인공지능(AI)의 대화가 다소 촌스럽다고 느꼈다. 개인적으로는 액션에 감성이 묻어 있는 <낙원의 밤>이 좋은 인상을 남겼다. 이렇게 본다면 확실히 <전, 란>은 이 흐름에서 돋보인다.
오리지널 작품이라고 해도 넷플릭스가 제작비를 전체 투자해서 독점 제작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이하면서 극장에 배급하지 못하고 있는 작품들을 사들여서 공개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결과들을 보면 팬데믹 이후에 개봉했어도 성공하기 어려웠겠다는 미묘한 느낌을 주는 영화들이 많았다.
결국 돌이켜봤을 때 <전, 란>도 좋았지만 내게는 <승리호>가 가장 베스트다. 개인적으로 SF를 좋아한다는 것도 이유긴 하지만, 모든 장르물이 깊어질수록 무거운 주제를 가져가는 경향이 있고 최근 SF영화들이 점점 무거워지는 추세에서, <승리호>가 SF 장르로 모험극을 찍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다. <승리호>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는 사실 할리우드 영화의 전유물처럼 느껴지지 않나. 예전 <스타트랙>에서 보던 정서를 가져간다는 게 좋았다. 극장에서 개봉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작품이다. 유치하다는 반응, 선악 구조도 애매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우주를 너무 신비스럽게 그리기보다는 인간이 지구 다음으로 누릴 수 있는 미래의 놀이터로 그린 것 자체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그 외에는 꼽을 만한 작품이 아예 없다. 화제가 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영화’가 정말 드물었다는 게 도출할 수 있는 결론 같다.
넷플릭스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작품을 가져와서 보여주는 것은 그들의 전략인데, 문제는 그런 작품들조차 보는 이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넷플릭스 영화나 시리즈에 기대하는 어떤 이미지들이 있다. 흔히 말하는 매운맛, 자극적인 맛이다. 전 세계 영화인들이 한국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눈이 높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영화에 기대하는 기준, 바라보는 잣대가 다른 콘텐츠보다 훨씬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간은 정말 성과가 두드러지지 않아 아쉬웠다. 넷플릭스도 그들에게 맞는 한국영화를 어떻게 ‘잘’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영화’와 관련한 또 다른 이슈들은, (넷플릭스의 선호를 맞추기 위해) 만들어지는 작품의 장르 폭이 좁아졌다, 반대로 넷플릭스가 아니면 어려웠던 장르적 표현 때문에 표현 수위가 훨씬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그 자유로움으로 인해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표현이 선을 넘는다 등이다. 꼬리를 물고 이어진 이런 논란들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기존의 레거시 미디어는 표현 수위가 많이 제한되어 있다. 그런데 많은 콘텐츠들이 유튜브로 넘어오면서, 욕을 해도 된다, 상품명을 대놓고 말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사고가 난 게 <피식대학>이다. 지상파의 어떤 콘텐츠들보다 많이 보고 영향력이 큰 콘텐츠들이 대부분 그렇다. 그 문제는 넷플릭스 같은 OTT의 오리지널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욕설을 남발하고 있다. 그런 부분은 콘텐츠 성격과 연계되어 캐릭터의 특성이나 작품의 의도에 맞을 때 표현되어야 한다. 함부로 발언해선 안 된다고 본다. 하지만 표현의 수위를 높일 수 있다는 건 여러 장점도 있다. 대중들은 유튜브나 숏츠를 계속 보는데, 이렇게 도파민에 몰두하는 시대에 고리타분하게 만들어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큰 틀에서 표현의 수위가 높아진 것은 바람직하고, 창작자들이 잘 이용했으면 한다.
한국 사회는 굉장히 보수적인 편이고 특정 표현에 대해서 매우 조심스러워 한다. 특히 문화 쪽에서는 유독 검열이 강한 느낌이다. 그런 면에서 넷플릭스라는 플랫폼 자체는 좋은 장이라고 본다. 넷플릭스에 대해, 넷플릭스 자체도 뭔가를 제재한다거나 하는 것에는 반대하는 입장에 가깝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일 것이다. 자유로운 표현의 장이 주어졌을 때, 창작자는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 우회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를 더 생각해야 한다. 즉, 발상은 자유롭게 하더라도 표현 방법은 고민했으면 좋겠다.
넷플릭스 작품들이 급상승시킨 출연료 문제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몸값 비싼 스타들 출연료를 낮춰야 한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그런데 그게 궁극적인 해결책일까. 이미 예전에 실패했다. 드라마 쪽에서는 과거 <태왕사신기> 이후 촉발된 스타 출연료 문제가 있었다. 어떤 계약이든 예외적인 경우가 생기고, 그것은 산업의 경제 논리와 맞물려 돌아간다. 출연료를 조정하자고 목소리를 높인 측에서 출연료를 많이 받는 만큼 국내외에서 많이 벌어주는 스타와 계약하려고 겉으로는 출연료를 낮추면서 뒤로는 이면계약을 하는 경우도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군가 너무 많이 받으면 안 된다는 감정적인 호소를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감성에 호소하면 결국 시스템에 부딪힌다.
개인적으로 뮤지컬을 좋아하는데, 그쪽도 같은 그림이다.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들이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가져가면서 뮤지컬 제작비가 높아지니 관람료도 올라간다. 지난 2년 사이 거의 최고 관람료가 약 5만 원 가까이 오른 상황이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A급 배우들이 어느 정도 앞에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은 든다. 스포츠계에서도 샐러리캡이라는 게 있지 않나. 출연료 상한선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업 내부에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조정이 되었으면 좋겠다.
출연료는 A급 배우 개인의 문제도 아니다. 소속사와 연결되어 있다. 가수 겸 배우 아이유와 우즈가 소속된, 사실상 아이유를 위한 회사 EDAM엔터테인먼트의 직원이 27명이다. 송중기 배우와 김수현 배우의 소속사 하이지음과 골드메달리스트 같은 회사들은 공동제작사로 참여해 지분을 나눠 갖는다. 이런 상황에서 출연료를 깎으라고 하면 앞으로 가는 사람을 뒤로 가라고 하는 게 된다. 그런 해결 방식은 자본주의 질서에 맞지 않는다. 누가 그러더라.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이정재 배우가 회당 10억을 받는다고 알려졌는데, 그런 배우가 만약 국내 드라마를 계약할 때는 회당 1억만 받겠다, 이러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겠다고. 그런 양보를 하라는 게 가능한가. 해결책이라고 볼 수 없다.
향후 넷플릭스와 한국영화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할 거라고 생각하나?
한국영화가 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많지는 않다. 영화 제작이 쇠퇴하면 영화제도 어려워지고, 마켓도 힘들어진다. 그러면 영화는 점점 더 사라지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말해 온 전통적인 개념의 영화가 사라져가는 지도 모른다. 이 시점에서 오히려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을 잘 활용해야 한다. 대안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영화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집이라는 공간에 최적화된, 집에서 영화를 보는 환경에 특화된 영화들을.
극장 영화는 흥행 스코어가 조금 덜 나와도 완성도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영화제 수상 등 다양한 경로가 생기지만, 넷플릭스는 훨씬 상업성에 치우친다. 어차피 그게 OTT 플랫폼의 속성이라면 극장과 OTT 영화 양쪽을 구분해서 발전시키는 형태로 가야 제작 편수가 지금보다 늘어나지 않을까. 자본을 대는 쪽에서 요구하지 않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해봐야 불협화음만 생길 뿐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도 충족해주면서 한국영화 산업도 망가지지 않는 제작 방식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지금 구독자가 늘지 않는 넷플릭스는 이미 한국 시장의 한계 내지 사이즈를 체크했다. 그래서 넷플릭스 자본이 일본 등 다른 곳으로 가고 있지 않나. 어쨌든 현시점에서 <전, 란>을 통해서 넷플릭스 한국영화들을 돌아본다는 것은 적절한 계기였던 것 같다.
한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라면 오히려 다른 대형 배급사들에서 받아주지 않은 비상업적인 영화들이 많았다.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2018), 마틴 스콜세지의 <아이리시 맨>(2019) 같은. 개인적으로 “넷플릭스는 <로마> 한 편으로 할 거 다 했다”라는 농담을 종종 한다. (웃음)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영화’는 반대로 시작부터 굉장히 상업적인 부분에 맞춰져서 작품의 판권이 거래되고 제작되거나 공개되는 쪽으로 흘러왔다. 이쯤에서 이미지 쇄신이랄까, 한번쯤 도전적인 작품을 제작할 필요가 있다. <로기완>이 그런 시도에 가까웠다고 본다. 화제가 안 된 작품이긴 하지만. (웃음) 감독들이 포기하고 있던 아이디어 혹은 완성도는 좋은데 쉽게 투자되지 않는 시나리오들이 넷플릭스를 통해서 제작된다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영화’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장르적 화려함이 아니라 완성도로 화제가 되는, <로마>나 <파워 오브 도그> 같은 한국영화가 한 번은 나와야 한다. 그런 작품들은 비전이 있기 때문이다.
<전, 란>을 계기로 넷플릭스 얘기를 해본 가운데, 마지막 질문이다. <전, 란>은 YES인가, NO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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