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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짖는 대신 안아주기를”
<안경> 정유미 감독
글 _ 김혜선(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사진 제공 _ 매치컷
2025-06-02
2009년 <먼지아이>로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된 이후 정유미 감독의 작업은 줄곧 국제적인 관심사였다. 대학에서 순수 미술을 전공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서 애니메이션 연출을 전공한 이후 그의 행보는 늘 최초였다. <수학시험>(2010), <연애놀이>(2013), <존재의 집>(2022), <서클>(2024)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총 네 차례 초청되었고, 2014년에는 <연애놀이>로 24회 자그레브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단편 경쟁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그림책 <먼지아이>와 <나의 작은 인형상자>는 ‘그림책 분야 노벨상’이라 여겨지는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대상과 우수상을 받았다. 애니메이션계의 젊은 거장이자 작가로서 놀라운 성과를 쌓아 온 정유미 감독에게 이 모든 결과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한 곳에 머물지 않도록 저항해 온 노력이다. 여전히 변화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신작 <안경>은 급기야 칸이 주목했다. 15분 분량의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지난 5월 27일 막을 내린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공식 초청되었다.
<안경>에는 정유미 감독 자신의 모습 혹은 새로운 변화를 원하는 누군가의 자아라고 해도 좋을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가 깨진 안경을 뒤로하고 새로운 안경을 다시 맞추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을 받아들이고 변화하는 심리적 성장을 그리고 있다. 흥미롭게도 정유미 감독은 많은 이들이 시력 검사대에 눈을 대고 들여다보면 마주하게 되는 ‘들판의 집’ 이미지를 내면의 풍경으로 삼았다. 어느새 그 집 안에 들어간 주인공은 세 공간에 자리 잡고 있는 내면의 그림자들을 만난다. 깨진 안경을 쓴 채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털북숭이 같은 나. 서재의 책상에 앉아서 깨진 안경을 쓴 채 자꾸 얼굴에 선을 그어 재단을 하는 나. 침실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그 안의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나. 깨진 안경을 벗겨주고 나와 화해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줄 수 없는 나의 일이다. 왜곡된 나를 꾸짖거나 몰아세우는 대신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 역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와 화해의 마음을 치열하면서도 세련된 방식으로 구현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안경>은 한국인 디자이너 김인태가 론칭한 프랑스 브랜드 KIMHĒKIM(김해김)과의 협업을 통해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전 작들보다 훨씬 세공된 배경과 소품의 디테일들이 정유미 감독의 확고한 자기 세계 안에서 더 깊어지고 정교해졌다. 정유미 애니메이션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아름다움이 정서적 유대감을 지닌 디자이너 브랜드와 만나 매혹적인 협업의 결과물로 완성되었다. 역시 새롭고 보기 드문 행보다.
<안경> 포스터
Q올해 칸영화제에 초청된 한국 작품은 <안경>과 ‘라 시네프’ 부문에 초청된 허가영 감독의 단편 <첫 여름>뿐이다. 이 상황이 시사하는 바가 많다는 이야기들을 칸에 가기 전부터 많이 들었겠다.
일단 초청받은 게 기쁘긴 하지만 한국영화의 어려움과 관련해서 거론될 때는 약간 민망하기도 하다. (웃음) 우리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극장도 어렵다는 얘기를 칸에 와서도 많이 들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성장이라는 어쩔 수 없는 큰 흐름에서, 시대의 변화를 관찰하고 있다.
Q<안경>은 전작들에 비해서 더 정교하게 세공되었다고 느껴지는 작품이다. 주인공이 자신의 발로 안경을 밟아 깨뜨리는 오프닝이 새로운 시선을 갖고 싶다는 ‘자기 선언’처럼 보인다.
안경의 프레임이라는 게 일종의 관점이지 않나. 과거의 어떤 프레임을 버리고 새로운 프레임을 찾는다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면서 마지막에 주인공이 새 안경을 쓴다. 그 과정에서 과거의 프레임, 과거의 시점을 가진 존재들을 만난다. 그들을 수용하고 안아줬을 때 이전과 다른 정체성, 에너지의 변화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Q주인공이 검안사가 있는 집에 들어가서 시력 검사를 시작하고, 시력 검사대에 눈을 대면 보이는 이미지, 결국 자신의 내면의 풍경이 되는 집 안으로 들어간다. 안경을 새로 맞추는 과정과 내면의 치유를 연결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오래전부터 계속 생각해 왔던 주제이자 표현 방식이다. 사람마다 각자의 세상을 보고 살지 않나. 나의 내면을 세상에 투사하고 반영하면서 사는 것 같은데, 내 마음, 내 안의 무의식을 알게 되면 이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늘 생각했다. 그리고 최근 작업을 하면서 내가 지닌 무의식적인 프레임에서 계속 벗어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변할 수 있을까. 이 고민을 항상 하고, 그런 욕구가 큰 편이다. 무엇보다도 내 삶에서 변화를 경험했으면 좋겠고, 그런 나의 변화가 작품에도 반영되었으면 좋겠다는 의도에서 만들게 된 작품이다.
<안경> 스틸컷
Q평소에 보이지 않는 압력을 많이 느끼나?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작가로서 갖는 세계적인 유명세, 혹은 작품에 대한 주변의 큰 기대 때문일까?
<연애놀이>(2013)를 만들고 7년간 작업을 못했다. 언급한 외부적인 시선들에 신경을 쓰다 보니, ‘내가 어떻게 하는 게 맞지?’라는 고민이 컸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원래부터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에 몰두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작품으로 내 얘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고, 기본적으로는 나의 내면에 어떤 불편함 혹은 약간의 고통이 있는 것 같다. 그 고통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해결하고 싶다는 욕구에서 출발해 여러 작업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내게 계속 에너지를 주고 있다. 작업을 시작하면 처음에는 힘들지만 그 과정에서 큰 변화가 생긴다. 삶에서도, 작품 자체에서도. 그게 내게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Q그 내면의 고통이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는, 살면서 내 옷 주머니 안에 넣어놓고 계속 가져가야 하는 작은 돌 같은 것일까?
아마도? 어떨 때는 삶에 거대한 무엇인가가 닥쳐오지 않나. 살면서 견뎌야 하는 새로운 시험 같은 것들. 그게 어떨 때는 버겁기도 하고 되게 두려운 마음도 들고, 또 어떨 때는 잘 수용하고 겪으면서 그 이전과 다르게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괜찮기도 하다. 그런 식으로 수용할 수 있는 범위가 조금씩 넓어져서 나중에는 두려워서 벌벌 떨던 것들을 부드럽게 받아들이게 되면 좋겠다.
Q<안경>의 주인공은 시력 검사대 안에서 보이는 내면의 풍경 속 세 개의 방을 지나면서 나를 둘러싼 여러 겹의 무의식을 벗겨낸다. 내 안에 있는 다양한 나를 만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내게는 익숙한 공간 배치이긴 하다. 그림책 <먼지아이>나 <나의 작은 인형상자>에서도 내면의 풍경을 그리다 보니 비슷한 구조를 가져갔었다.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내면의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 늘 낯선 공간이 아니라 집이었다. 보통 자아를 상징할 수 있는 집. 이번에도 그렇다. 집 안에서 반복되는 공간의 프레임은 똑같다. 가구와 커튼 정도만 변화를 주어서 비슷한 공간이 약간씩 변하거나 중첩되게 했고, 그때 생기는 효과가 재미있었다. 마치 우리의 내면이 때때로 살짝살짝 변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런 변화가 펼쳐질 수 있는 공간은 역시 평범한 집에 있는 방들 중 하나이고, 순서는 거실에서 서재, 침실로 이어진다. 원래는 네 공간을 구상했지만 작업량과 기간이 너무 길어져서 세 공간으로 압축해서 완성했다. 거실에서 침실로 가면서 감정이 점점 더 해소되는 방향으로 느낌을 잡았다. 그 외의 나머지 것들은 거의 무의식적인 선택이었다.
<안경> 스틸컷
Q그 공간에서 주인공이 하는 행동이 여러 방식으로 반복된다. 주인공은 거실에 들어와 이미 거기 있던 또 다른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머리를 땋아준다. 침실에선 주인공이 티백을 계속 찢어서 찻잔에 담고, 이불을 뒤집어쓴 또 다른 나에게 권한다. 그런 작은 일들을 반복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그러고 나면, 공간 안에 들어온 주인공은 새로운 옷을 입고 변신한다.
행위는 단조롭고 제한적인데 원칙은 다 똑같았던 것 같다. 보통 게임을 하면 어떤 것을 깨야 다음 판으로 넘어가지 않나. 한동안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느꼈다. 내가 어려워하는 것을 회피하면 또 다른 형식으로 그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 반복된다고. 그 어려움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나 자신이 변화하기 전까지는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어려움, 변화를 수용하기 전까지는 계속 그 방에서 못 나가는 주인공의 상황을 그렸다고 할 수 있다.
Q한편으로, 그 반복의 행위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작은 일들을 반복해 나갈 때에 비로소 성장이나 변화가 가능하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진다.
그것 역시 맞는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실 계속 시도하고 반복한다. 사람이 한번에 뭔가를 영리하게 알아차리고 싹 바뀌지는 않는다. ‘정말 해도 해도 안 되는구나’ 하는 데이터가 쌓여서 몸이 느낄 즈음에 뭔가 다른 방향이 있다는 걸 깨닫기도 한다. 나는 일종의 저항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잘하고 많이 하는 편이라서 내면적으로 더 그런 저항을 느껴 왔던 것 같다.
칸영화제에 참석한 정유미 감독
Q두 번째 공간이자 커튼이 젖혀진 서재의 창밖에서 주인공의 거대한 눈이 안을 들여다보는 장면이 있다. 서재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는 거대한 눈에 의해 관찰을 당한다. 방에 들어온 주인공은 또 다른 나를 위해 커튼을 닫아준다. 나를 보는 나의 거대한 시선을 배치했다는 게 흥미롭다.
창밖에서 주인공의 엄청 큰 눈이 서재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내게는 고통의 이미지였던 것 같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사우론의 눈처럼, 거대한 내 눈이 무의식적으로 비판하며 관찰하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다. 서재에 원래 앉아 있던 나는 그 시선이 신경 쓰이기 때문에 강박적으로 스스로를 계속 재단하려는 행위(얼굴에 계속 점선을 그린다)를 한다. 그래서 자아인 주인공이 서재에 들어와 커튼을 닫아서 그 거대한 시선을 차단해주면서 서재 안에 있던 나의 감정을 해소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을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외부의 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결국은 나 자신의 시선일 수 있다. 결국 스스로를 판단하고 가두는 자기 자신의 시선에 대해서 알아차리지 않으면 계속 고통받게 된다고 할까.
Q<안경>은 이미지만큼이나 사운드의 세공도 정교하다. 주인공인 내가 내면의 나를 만나고 변신하는 순간의 컷 전환 타이밍에서, 침묵의 앰비언트와 강렬한 사운드가 절묘하게 계산되어 사용된다.
이전 작품에서도 음악으로 정서를 만들기보다는 엠비언트를 통해 건조하게 표현하는 편이었다. 이번에는 전반적인 사운드를 사실적으로 표현했다면 변신하거나 변화하는 순간만큼은 임팩트가 확 느껴졌으면 했다. 사실적이지는 않더라도 반전이 가장 잘 느껴지도록, 그런 효과를 만들기 위해서 선택한 사운드다.
Q오프닝부터 엔딩까지 작품 안에서 주인공이 신은 양말, 들고 있는 핸드백 등 여러 패션 잡화에 계속 KIMHĒKIM이라는 브랜드명이 보인다. 어떻게 협업하게 된 건가?
김인태 디자이너가 파리에서 공부하고 일을 하던 시기, 내 작품 <연애놀이>를 보고 영감을 많이 받았고 이후 KIMHĒKIM 브랜드를 론칭했다고 한다. 그래서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연락을 해 오셨는데 내가 인스타그램을 잘 안 해서 한참을 모르고 있다가 알게 되었다. KIMHĒKIM 제품들의 디자인에 담긴 정서와 내가 작품 속에서 표현한 정서가 유사하고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굉장히 흥미로웠다. 처음엔 짧은 이미지 광고처럼 함께 작업을 해보는 게 어떨까 했는데, 이후에 아예 영화제를 목표로 영화를 만드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제안을 받고 본격적으로 <안경> 작업을 시작했다. KIMHĒKIM의 디자인을 작품 안에 많이 반영하고 싶었다. 내가 중요하고 흥미롭다고 생각한 것들은 소재다. 털이나 진주, 혹은 이불 같은. 이런 소재들을 사용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봤다. 처음에는 소재에 불과했던 이불을 덮은 주인공이 아름다운 의상을 입은 모습으로 변신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처럼. 애니메이션에서는 캐릭터가 결국 의상을 입고 소품을 사용해야 되는데, 지금까지는 랜덤하게 선택하고 미니멀하게 표현하는 편이었다. <안경>에서는 실재하는 브랜드의 의상을 작품 속에 반영하다 보니 관객이 더 디테일하게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작업했던 것 같다.
Q배경이나 소품 드로잉이 전작보다 훨씬 정교하다고 느껴진 게 그래서인가. 더 치열해 보이고, 세련되어 보이기도 한다. 뭔가 도망치지 않는다는 느낌도 든다.
아무래도 협업을 하다 보니 내 개인 작업보다는 비주얼이 조금 더 임팩트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귀찮을 수 있는 과정이지만 소품이나 의상, 배경을 더 디테일하고 꼼꼼하게 묘사하려고 노력했다. 약간의 스트레스는 좋은 에너지를 주지 않나. <안경>도 약간의 부담을 안고 시작했지만, 오히려 에너지를 얻은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KIMHĒKIM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Q흑백의 선, 흑백의 드로잉이 지닌 가능성을 풍부하게 열어 놓는 동시에 가장 크게 펼쳐 놓는 아티스트다. 그런데 <안경>을 보고 나니 정유미 애니메이션의 컬러풀한 드로잉 세계도 궁금해진다.
흑백으로 어떤 디테일을 묘사했을 때 만들어진 정서가 여전히 재미있다. 거기서 나오는 초현실적인 느낌, 그러니까 시대가 모호해지고, 약간 공포스러운 느낌도 드는 긴장감을 좋아한다. 레퍼런스나 자료들을 찾을 때도 끌리는 이미지들을 보면 대부분 흑백이 많다. 나중에 컬러로 표현하는 게 더 적합한 작업을 하게 된다면 컬러로 표현하겠지만, 아직까지는 흑백이 주는 매혹적인 긴장감이 좋다. 그런데 최근작인 <파라노이드 키드>에는 약간의 컬러가 들어간다. 내가 20대 때 썼던 그림일기를 모아서 만든 책을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작품이다. 항상 ‘조각조각 그날의 감정들을 표현했던 그림들을 모아서 하나의 줄기를 이루는 이야기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를 생각했는데, 지난해에 내레이션을 쓰고 작업을 해서 완성했다. 거의 흑백이지만 포인트 컬러로 레드를 썼다.
<파라노이드 키드> 스틸컷
Q지금까지 그림책이든 애니메이션이든 회화든 경계를 두지 않고 작업해 왔고, 많은 수상을 하는 등 성과도 컸다. 정유미의 세계는 계속될 텐데, 여전히 꿈꾸는 이미지나 작업 방식이 있나?
계획을 많이 하기보다는 그냥 주어지면 하는 편이다. 다만, 앞으로 가능하다면 조금 더 긴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 조금 더 긴 작업을 경험해보면 더 자유로운 무기를 가지는 셈이니까. 동시에 매우 미술적인 작업도 하고 싶다.
Q애써 만든 작품의 배급도 매우 중요한 부분일 텐데, 국내와 해외 배급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저희는 프로듀서가 직접 국내외 배급을 맡고 있다. 17년 넘게 같은 프로듀서가 제 작품의 제작과 배급을 함께 해왔고, 그동안 쌓아온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영화제 출품은 물론, 다양한 상영회를 포함한 배급 활동을 진행해 왔다. 직접 배급을 하다 보니 작품의 성격에 맞게, 적절한 시기와 방식으로 유연하게 배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프랑스-독일 공동 방송사인 아르테(ARTE) 채널의 경우, 한 작품이 판매된 이후에도 프로듀서가 직접 연락을 주고받으며 배급을 이어가고 있다. 참, 오는 6월 11일에는 메가박스에서 <안경>과 <파라노이드 키드> 두 작품을 묶어 단독 상영하기로 했다. 영화제에서는 짧게 상영할 수밖에 없는데, 전국에서 볼 수 있어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Q<안경>은 한국콘텐츠진흥원과 부천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의 제작 지원을 받은 작품이다. 지금의 독립 애니메이션 지원 제도에 대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일단 독립 애니메이션 지원사업의 규모가 많이 줄어들었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와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사업이 있었지만 지금은 한국콘텐츠진흥원 지원사업으로 다 합쳐진 것으로 아는데, 그게 아쉽다. 내 경우 프로듀서와 함께 일을 하고 있는데, 나는 작업만 하고 프로듀서가 그 외의 일을 다 하신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거다. 프로듀서님을 통해서 지원사업에 참여하기 위한 과정들을 보면 굉장히 복잡하고 서류 작업과 예산 집행이 매우 까다롭다. 단편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혼자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시작하는 창작자들의 경우에는 자기 작업을 하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서류 작업까지 챙겨야 한다면 정말 힘들 것 같다. 다들 고군분투하고 있을 텐데, 좋은 창작물을 만들 수 있는 창작자들을 위해서 불필요한 서류 작업은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칸영화제에 참석한 정유미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