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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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찍 도착한 이해

<내가 누워있을 때>

글 _ 정지혜(영화평론가)

2025-06-02

길을 떠나는 이야기는 얼마간의 우발성과 예측 불허를 전제한다. 바로 그 점이 길 떠나는 일의 즐거움일 테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것이야말로 길이 불러일으키는 불편하고 알 수 없는 긴장이기도 하다. 이질적인 감정이 뒤섞이고 낯선 존재와 마주치며 겪게 될 일련의 과정은 많은 경우 인물의 각성과 성장으로 이어지곤 한다. 본연의 자리를 떠나는 누군가의 크고 작은 모험의 길은 그러하기에 필연적으로 다른 결의 주제와 이어지고 낯선 사람들과 만난다. 그런 길은 이색의 풍광과 풍경 앞으로 우리를 데려갈 것이라는 기대를 부른다. 그것이 로드무비의 본령이자 본질적인 매력이기도 하다. 다면적이고 다층적이며 단순하지 않은 복합적이고 이질적인 것들, 알 수 없는 것들이 한 데 뒤섞이고 맞물리는 공간으로서의 길. 그렇기에 그 길은 불순하고 불온한 지평으로 연장된다. 그러한 것이야말로 또한 로드무비의 막강한 힘이기도 하다.

비밀을 품은 세 여자의 로드무비 최정문 감독의 장편 데뷔작 <내가 누워있을 때>는 큰 틀에서 보자면 이러한 로드무비의 형식을 취하는 듯하다. 주인공들이 길을 나서고 길 위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에 부딪히자, 긴장이 고조된다. 낯선 상황 속에서 인물들은 얼마간 환기되고 각성하며 여정을 이어가는 일련의 과정으로서 그러하다.

길을 나선 세 여성이 있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선아(정지인), 선아의 이종사촌 동생 지수(오우리), 지수의 친구 보미(박보람). 그녀들은 저마다 말 못 할 사연을 안고 산다. 그런 그녀들을 보며 누군가는 손가락질할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그녀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가족이 있는 부산을 떠나 홀로 서울에 정착한 선아는 겉으로 보기에는 나름 성공한 직장인이다. 하지만 비밀 연애 중인 직장 상사와의 관계는 삐걱대고 두 사람 사이를 의심하는 동료들은 상사의 지원으로 능력도 안 되는 선아가 일을 맡았다며 대놓고 모함하고 따돌린다. ‘꽃뱀’이라는 소리까지 듣는 상황이지만, 선아는 아등바등 애 쓰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부모를 잃고 이모인 선아의 엄마 집에서 살고 있는 지수는 철이 일찍 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부산을 떠나 서울로 가서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하는데 당분간 선아에게 신세를 져야 할 처지다. 무엇보다 지수는 자신의 성적 지향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선아에게조차 말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게 미지수인 채로 남은 상황이다. 보미는 얼마 전 딸 진이를 사산했다. 애인으로 보이는 사내는 아무런 죄책감도 책임감도 느끼지 못하는 듯 보이고, 보미가 이 극한의 아픔을 누군가와 나누고 있을지조차 잘 가늠되지 않는다. 아이를 잃은 뒤부터였을까. 보미는 자꾸 헛것이 보인다. 진이도 등장하고 여기저기 망자의 기운이 느껴지고 그들과 소통까지 한다.

사연 없는 이들이 어디 있겠느냐만, 세 여성이 직면하고 있는 일들은 누군가에게 농담처럼 가벼이 꺼낼 만한 성격은 아니다. 특히나 여성, 퀴어로서 살아가며 겪는 내밀한 개인사라는 점에서 타인과 쉽게 공유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런 세 사람이 지수 부모님 성묫길에 동행한다.



불순과 불온이 소거된 일차원적인 ‘로드’ 비밀을 품은 사연 있는 여자들의 로드무비는 처음 목적한 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달이 나고야 만다. 낯선 길 위에서 차 사고가 나 자동차 수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카센터 사장과 직원이라는 사내들은 작정한 듯 이상하게 군다. 그들은 차를 고치는 일보다 세 여인을 괴롭히는 데 온통 신경이 가 있다. 여정은 착착 어그러진다. 경로를 벗어난 그녀들은 한참 딴 곳으로 향하더니 허름하고 인적 드문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기에 이른다. 지연과 지체, 이탈과 잠시 잠깐의 정착이 벌어지는 길이다. 이렇게 말해볼 수 있을까. <내가 누워있을 때>의 ‘로드’는 계획된 여정을 가로막는 사건을 불러일으키는 장소로서 기능한다고. 세 사람이 길을 나서기는 했지만, 그 길은 내쳐 달려 나갈 수 없는 길이다. 인물들은 그 어딘가에 어정쩡하게 머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때의 ‘로드’는 이동하는 움직임이나 그로써 마주하게 되는 풍광의 변모 같은 것을 발견하게 하지는 않는다. 역설적으로 이때의 ‘로드’는 도리어 이들 여정을 멈춰 세우는 브레이크로 작동한다.

어떤 이유일까. 바로 사연 많은 그녀들이 가까스로 마주 앉아 그 자신의 내밀한 사정을 상대방에게 꺼내놓게 하기 위함이다. 상대가 다른 상대의 비밀을 경청하게끔 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러한 자리와 시간을 모색하려고 의도된 지연, 지체, 이탈이 일어나는 ‘로드’다. 이렇게 말해볼 수 있을까. <내가 누워있을 때>는 바로 이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시작된 여정이라고. 그런 이유로 영화는 지수의 부모 묘지에 앞서 이미 목적한 곳에 도달한 셈이다. 로드무비의 형식을 느슨하게 취하고 로드무비라는 장르적 뉘앙스를 살짝 가미한 채, 영화는 인물들의 회포와 회한을 해소하는 드라마로서의 자리를 마련하고 서사의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내기 위한 목표로 나아간다. 그러다 보니 이때의 ‘로드’는 서사를 진척시켜 나가기 위한 방편으로 기능한 다. 또 그러다 보니 로드무비의 불순과 불온은 소거되고 만다. 이를테면 황량한 풍광 속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고독한 방랑자, 단독자의 끝없는 배회로서의 ‘로드’ 같은 건 이곳의 것이 아니다. 우연한 사고로 사건은 벌어졌지만, 세 여성의 사연을 듣기 위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건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일차원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했을까 세 여성 상호 간의 이해와 서로를 향한 다독임의 과정이야말로 이 영화의 요체이자 이 로드무비의 중대한 기착지일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영화가 목표한 바가 성취된 듯 보이지만 인물들이 정말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게 된 것일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그런 의구심을 갖게 된 데는 영화가 취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구조인 다중 플롯의 작동 방식 때문이다. 영화는 시점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현재와 과거가 병치되어 있고 현재에서 과거로 거침없이 오고 가는 구조를 띤다. 특히 영화는 세 명의 여성 캐릭터 저마다의 사연을 가능하다면 고루 다루고 싶어 하며 세 인물 모두에게 과거의 시간, 과거의 플롯을 부여한다. 기능적으로만 보자면, 일종의 플래시백에 해당하는 구조일 텐데, 과거와 현재가 병치되는 타이밍이나 방식이 낯설고 의아하다. 불쑥 들어오는 과거는 현재 시점의 인물이 지난 시간을 회고하거나 회상하는 것일까.

지난 시간을 향한 인물의 상념이나 감상일까. 명확하지가 않다. 오히려 그보다는 인물들에게서 떨어져 거리를 두고 있는 제3의 시선처럼 느껴진다. 전지적 시점의 존재, 이 영화 <내가 누워있을 때>가 ‘이 인물은 과거에 이런 일을 겪었다’며 인물의 처지와 상황과 역사를 설명하고 제시해주는 듯하다. 마치 전언의 이미지로 말이다. 이러한 방식은 관객에게는 일종의 정보가 된다. 그 인물이 지금과 같은 상태에 이르게 된 연유를 사후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얼마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인물의 현재 플롯과 과거 플롯을 연이어 본다고 한들 그러한 이미지의 병치가 관객이 아닌 바로 그 인물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가 불분명하다. 상당히, 자주, 지속적으로, 중요하게 들어오고 있는 인물들의 과거 장면들이 어떻게 인물의 현재에, 그들의 지금 감정과 상태, 삶에 파고를 일으키는지가 가늠되지 않는다. 이것은 비단 개별 인물의 내면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세 인물 상호 간에도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관객은 누군가의 과거 장면을 볼 수 있다지만, 그렇다고 한들 그것이 현재 시점의 인물들이 서로의 감정과 행동 변화를 이해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인물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관객들이 얻은 것만큼의 충분한 정보를 주지 않았을뿐더러 그것을 충당할 만큼의 밀도 있는 현재의 대화가 진행된 것인지도 의문이다. 많은 부분이 공백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심지어 관객에게조차 보여주지 않는 공백—예컨대 카센터 사내들의 난동 이후 해소되는 과정—도 있다.

하지만 그녀들 각자의 전사나 당면한 사안은 꽤 진지하고 섬세한 접근이 필요한 일들이 아닌가. 쉬이 타협하고 이해될 지점이 아닐 수도 있지 않겠는가. 오히려 더 첨예해질 수도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이해되기에는 그들은 아직 서로를 너무 모른다. 어쩌면 인물들을 응원하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지나치게 앞선 게 아닐까. 서로가 서로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어도 괜찮지 않겠는가.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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