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이상하게 사랑스러운 이유영
영화 <세기말의 사랑> 이유영 인터뷰
- 글
- 이은지(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 사진
- 에이스팩토리, 엔케이컨텐츠
Interview
영화 <세기말의 사랑> 이유영 인터뷰
덥수룩한 머리카락 사이로 맑은 눈동자가 보인다. 그 아래 약간은 튀어나온 입이 보인다. 맑은 눈동자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바닥을 내려다보고, 튀어나온 입은 제멋대로 난 덧니를 가리느라 정신이 없다. 그녀의 이름은 영미지만, 직장 동료들은 비아냥거리며 ’세기말’이라고 부른다. 어딘가 모르게 조화롭지 않은 얼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랑스럽다. 참으로 이상하게 사랑스럽다. 지난 1월 24일 개봉한 영화 <세기말의 사랑> 속 주인공 영미를 묘사한 것이다. 캐릭터 카피가 ‘이상하고 사랑스러운 미쓰 세기말’이라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영화 속엔 영미만큼이나 이상한 사람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유부남임을 알리지 않고 모든 사람이 피하는 영미에게 과한 친절을 베푸는 도영부터 아름다운 미모를 지녔지만 남의 도움 없이는 고개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 도영의 와이프 유진, 유진의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도 그의 곁을 지키며 수족을 자처하는 준까지 모두가 이상하다. 가장 이상한 점은, 현실에서는 기피 대상인 이들이 영화 속에서는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을 응원하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이유영이 영미를 연기한 <세기말의 사랑>은 세상 끝나는 줄 알았던 1999년, 짝사랑 때문에 모든 걸 잃은 영미에게 짝사랑 상대의 아내 유진이 나타나며 벌어지는 이상하고 사랑스러운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상한데 사랑스러운 영화’라는 관객 반응에 위안을 얻었다는 배우 이유영을 만났다. 이 이상한데 사랑스러운 영화를 완성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이유영은 영미가 되기도 했고, 영미는 이유영이 되기도 했다. 어쩌면 영미는 이유영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아직 보지 못한 미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으로 국내 관객을 만나는 게 오랜만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마지막 작품이 JTBC 드라마 <인사이더>였다. 한동안 쉬다가 영화 <세기말의 사랑>을 찍었다. 이후 6개월 정도 쉬면서 재정비하는 시간을 갖고 처음으로 혼자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지금은 KBS 드라마 <함부로 대해줘>를 촬영 중이다.
정식 개봉을 앞두고 다수의 영화제를 통해 이미 관객들과 만났다.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
정말 긴장을 많이 했었는데, 생각보다 좋아해 주셨다. 극장에서 보는 내내 울고 웃었다고 이야기해 주셨고, 이상한데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영화라는 말에 많은 위안을 받았다.
<세기말의 사랑>을 이상한 사랑스러움이라고 표현하더라.
시나리오를 볼 때보다 영화로 봤을 때 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너무 귀여웠고, 임선애 감독님의 전작인 <69세>와는 또 다른 작품 같아서 너무 좋았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책으로 읽었을 때는 이런 컬러감이 입혀진 느낌은 아니었다. 글로만 봤을 땐 이렇게 밝고 유쾌한 지점, 또 그런 밝은 매력이 있는 영화로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영화 속에서 흑백으로 처리된 부분에서는 영미의 서사가 쭉 그려지면서 그 부분만으로도 한 편의 영화 같았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영미에게 극적으로 많은 일이 일어나는데 너무 재밌었다. 설정도 재밌었고, 일어나는 일들도 너무 웃프다고 해야 하나?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영미의 기구한 운명이 매우 재밌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좋은 의미로 ‘이거 뭐지? 미쳤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반으로 가면서 풀어지는 이야기들은 힐링이 되었고 위로, 위안을 받은 작품이었다. 답답하던 영미가 성장해서 좋았고 그 과정 역시 매력적이었다.
영화가 흑백으로 시작해 영미에게 전환점이 되는 사건 이후 컬러로 바뀐다.
초반이 흑백으로 그려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임 감독님도 나중에 “이것을 흑백으로 할까 고민 중”이라고 이야기해 주셨다. 카메라 구도부터 소품, 연기, 대사 한마디까지 모두 감독님의 의도가 많이 숨겨져 있다. 흑백의 영미가 많은 일을 겪고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 더 이상 무서울 것이 없을 때 달라진 영미의 심정을 컬러풀한 세상으로 이미지화한 것 같아서 흥미로웠고 희열까지 느껴졌다. 또 다른 영화 같기도 해서 좋았다.
<세기말의 사랑> 속 영미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영미는 평생 무언가에 욕심을 내지 않고 그냥 천성이 착하고 책임감 있는 인물이다. 굉장히 소심하고, 어떤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어 자존감도 낮으며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매력적인지를 모르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인지 모르니 사람들을 피한다. 팍팍한 현실을 견디면서 살고 있는데, 그것도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면서 사는 것 같다. 그런 점이 처음에는 답답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영미가 변화한다. 성장을 하고 자신의 현실을 돌파해 나간다고 해야 하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초반 답답함이 해소되었다.
영미는 외적으로 아름답지는 않지만, 충분히 사랑스럽다. 영미와 이유영이라는 배우가 만나 그 사랑스러움이 배가된 느낌이다.
사실 매력은 상대적이다. 스스로는 콤플렉스라고 생각하고 숨겨도 어떤 사람에게는 매력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저는 영미의 덧니, 그 덧니를 드러내고 웃는 모습이 귀여웠다. 출소 후 탈색한 빨간 헤어스타일도 사랑스러웠다. 그때 만난 사람들은 영미보다 특이하고 에너지가 강하다. 그런 에너지를 받으면서 영미도 바뀐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자세도 당당해지고, 그동안 숨겨 왔던 덧니를 드러내면서 웃는다. 좋은, 긍정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더 사랑스러워진 것 같다.
출소 후 자신이 짝사랑했던, 불륜으로 의심받았던 남자의 아내인 유진의 집에 들어가서 산다. 아름다운 외모지만 전신마비 장애인인 유진을 보면서 영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일반 사람들은 유진을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으로 보겠지만 영미는 장애인으로 느끼기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의 아내로 생각했을 것이다. (장애인이지만)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한 저 여자는 뭐지?’라는 생각과 함께 부러운 동경의 대상이었다. 신기하면서 질투를 했을 것이다.
영미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이유영 씨라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연기도 정말 좋았고
하하. 굉장한 칭찬이다. 저 역시 전반부, 그러니까 흑백 부분 연기가 너무 좋았다. 그런 모습을 더 보여 줬어야 했나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그만큼 분장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지만, 여배우로서 부담은 없었나?
이상하게 부담은 전혀 없었고, 더 재밌을 것 같았다.
분장 과정에서 이유영 씨의 아이디어도 있었을 것 같다.
사실 분장을 더 하고 싶었다. 그래서 덧니 개수를 늘리자는 제안을 했다. 처음에는 덧니를 세 개 만들어서 드라큘라처럼 입이 다 튀어나오게 하자는 이야기도 했다. 평소 제 모습과는 많이 다른 영미를 연기하고 싶었다. 메이크업도 전혀 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편하더라. 개인적인 이유영으로는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배우 이유영으로서는 예쁜 모습보다는 오히려 전혀 다른 인물처럼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가 더 좋다. 이번에는 분장의 도움을 받았다. 연기적으로도 도움이 되고 캐릭터적으로 더 재밌게 연기할 수 있는 것 같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기는 것 같다.
맞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즐기고, 항상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났으면 하는 생각으로 사는 것 같다.
매번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눈빛을 보면 항상 호기심에 가득 차 있다. 그 눈이 너무 예쁘고 좋다.
하하. 너무 좋은 말이다. 예전보다는 그 욕망이 많이 줄어들긴 했는데, 여전히 호기심과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것 같다.
2014년 영화 <봄>으로 데뷔해 어느덧 10년이나 지났더라. 이 시점에서 배우 이유영을 돌아본다면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벌써 10년이다. 시간이 진짜 빨리 지나간 것 같다. 정말 바쁘게, 열심히 살아왔다. 그래서 스스로 너무 대견하고 잘했다고 칭찬을 해 주고 싶다. 예전보다 마음의 여유도 많이 생기고 편안해졌다. 많은 것을 내려놓게 되면서 욕심도 조금 내려놓고 되고, 스스로를 좀 더 아끼게 된 것 같다. 영미가 성장하면서 스스로를 사랑하게 된 것처럼.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 먹을수록 그런 변화가 느껴진다. 최근 들어서 그런 변화를 크게 느끼고 있다. 이렇게 변화한 내가, 또 배우 생활을 하는 내가, 어떤 연기를 할지 달라지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배우 이유영에 대해 스스로 기대가 좀 된다.
사실 많은 사람이 배우 이유영에 대해 기대가 클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다양한 활동을 한다는 점이 가장 크지 않을까? 독립영화부터 상업 영화, 드라마까지 다방면에서 활동 중이지 않나? 그런 배우가 많지 않다.
맞다. 그렇게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은 바람도 있지만 결국엔 절 찾아주니까 할 수 있었다. 진짜 복인 것 같다. 드라마를 하면서 영화도 놓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것 같다. 드라마와 영화(독립·상업) 모두 각기 다른 매력이 있다. 계속해서 이렇게 번갈아서 하고 싶다.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이토록 다양한 장르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가 있나 싶다. 특별한 비결이 있나?
없다. 그냥 들어오는 시나리오 안에서 선택을 한 것이고,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캐릭터를 할 수 있었는지 저 역시 신기하다. 저의 다양한 면을 봐 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한 마음이 크다.
연기자로서 살아가는 것을 즐기는 느낌이 크다. 연기를 통해 얻는 것은 무엇인가?
연기를 하면서 진짜 다양한 삶을 산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소심해서 영미처럼 숨어 지내는 사람이었다. 사람들 눈도 잘 못 쳐다보고 사회성도 없었다. 그런데 연기를 하면서 많이 밝아지고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늘 억눌려 있는 욕망을 한 캐릭터, 한 캐릭터를 만나면서 풀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인물의 삶을 살면서 인간 이유영이 해보지 못한 임무를 대신 풀면서 해소가 되는 부분이 너무 좋고, 그게 재미있는 것 같다. 계속 해로운 것을 도전하고 싶은 욕망도 생긴다.
반대로 잃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작품 하나에 들어가면 너무 바쁘다. 밤낮이 많이 바뀌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다 보니 촬영을 하는 시기에는 취미생활을 한다든지 저 자신을 돌보는 것에 대해 소홀해지는 부분이다. 저 자신을 부지런하게 돌보지 못하는 것 같다. 일상의 삶도 좀 더 풍부하게 살고 싶은데, 쉬는 시간엔 잠만 자게 된다. 배우 이유영이 인간 이유영보다 더 많아지는 것 같다. 그런 부분이 잃는 것 아닐까?
조금 늦은 질문일 수도 있는데, 어떻게 연기자가 되었나?
성격은 진짜 소심했는데, 장기자랑을 하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다. 무대 위에 올라가서 춤추고 노래하는 친구들이 부럽고 신기하고 나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무대 공포증과 대인공포증이 약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길거리 캐스팅을 여러 번 당했다. 하하. 내심 ‘나도 저런 친구들처럼 나를 뽐낼 수 있을까?’라는 바람이 있었던 것 같다. 스무 살이 되면서 성격이 조금씩 변했다.
전공도 연기로 알고 있다.
맞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다. 한 가지에 정착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연기를 접했는데, 연기를 하기 위해선 배워야 할 게 너무 많더라. 그때 연기에 정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족한 게 너무 많았고,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것도 너무 많았다. 책도 보고 전시회도 다니면서 공부와 훈련을 했다. 어떤 직업은 경력이 쌓이면서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것이 있는데, 연기는 죽을 때까지 배우고 성장해야 하는 것이라 느꼈다.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이 배워야겠구나‘ 이런 느낌이었다. 끝까지 연기를 해야겠다고 그때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배우 이유영에게 연기란 무엇인가?
끝까지 속마음을 모르겠는 친구 같은 느낌이다. 사실 이제 배우 이유영과 개인적인 이유영을 분리하고 생각하긴 어렵다. 그런 저에게 연기는 너무 어렵고 정답이 없는 친구 같다. 끝까지 함께, 내 옆에 있겠지만 속을 잘 모르는 친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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