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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티빙-웨이브 합병…
OTT 시장 지각변동 일어날까?

김희경(영화평론가)

“우리는 당신의 잠과 경쟁한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의 창업주인 리드 헤이스팅스 회장은 이같이 말했다. 이용자의 모든 시간, 심지어 잠을 자는 시간까지 빼앗아 넷플릭스를 시청하도록 하겠다는 의지와 포부가 담긴 얘기다. 그리고 헤이스팅스 회장의 말처럼, 넷플릭스는 글로벌 1위 OTT 플랫폼이 돼 전 세계 이용자들의 시간을 차지했다. 2016년 진출한 한국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국내 이용자들의 시선과 시간은 넷플릭스에 쏠렸고, 영화와 드라마 등 콘텐츠 시장은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그렇게 8년 넘게 국내 시장에서 지속된 넷플릭스의 독주를 막아설 방법이 있긴 할까? 이런 질문조차 하기 힘들어진 위기의 상황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될 만한 소식이 들려왔다. CJ ENM의 ‘티빙’과 SK스퀘어와 지상파 3사의 OTT ‘웨이브’가 합병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체급 키우고,
‘록인(Lock in) 효과’까지

넷플릭스가 국내에 진출한 이후 티빙, 웨이브, 쿠팡플레이 등 토종 OTT는 다양한 노력을 해 왔다. 하지만 힘의 불균형은 쉽게 해소되지 못했다. 그 원인은 명확한 체급 차이에서 비롯됐다. 자본력 자체에서 큰 차이가 났기 때문에,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부터 콘텐츠 방영권을 확보하는 것까지 모든 면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국내 대표 OTT 플랫폼끼리 합병을 하게 되면 이전보다 규모가 훨씬 커진다. 이를 발판으로 더 큰 비용을 투입해 작품들을 만들고 사들여 플랫폼을 채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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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부산국제영화제 웨이브 홍보부스, 출처 한경DB

이용자 수를 따져 봤을 때도 넷플릭스와 맞서게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넷플릭스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약 1164만 명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티빙(약 521만 명), 웨이브(약 404만 명)의 MAU를 합치면 총 925만 명에 이른다. 여기서 중복 가입되어 있던 사람들을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합병 이후 700만~800만 명의 MAU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쿠팡플레이의 MAU가 약 664만 명으로 티빙보다 앞선 상황이지만, 합병 이후엔 이 순위가 다시 뒤집힐 것이다. 게다가 화제작이 연이어 나올 경우엔 넷플릭스와 치열한 경쟁 구도를 만들고, 사실상 2강 체제를 구축할 전망이다.

MAU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는데, OTT의 ‘록인 효과’이다. ‘자물쇠 효과’라고도 불리는 록인 효과는 특정 브랜드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해 본 고객이 다른 브랜드로 옮겨가지 않고 해당 브랜드를 계속해서 이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OTT 시장에서 록인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선 두 가지 요인이 함께 작용해야 한다. 하나는 해당 OTT에서만 볼 수 있는 강력하고 재밌는 오리지널 콘텐츠가 공개될 것, 다른 하나는 그 외에도 평소 소소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이 다수 있어 가입을 유지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국내 OTT는 넷플릭스에 비해 록인 효과가 현저히 떨어졌다. 일부 화제작이 나오더라도 해당 작품을 보기 위해 가입을 했다가, 곧 해지하는 ‘메뚜기족’이 토종 OTT에서 대량 양산됐다. 이런 현상은 두 플랫폼의 합병 이후엔 크게 완화될 전망이다. 우선 티빙과 웨이브에 분산되어 있던 드라마, 예능 등 다양한 콘텐츠가 하나로 집중되면서 굳이 가입과 해지를 반복할 이유가 없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이전보다 제작 규모 등이 커진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서 록인 효과가 더욱 극대화될 전망이다.

적자 부담에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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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국제 OTT 페스티벌 개막식, 출처 한경DB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을 하기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두 플랫폼은 누적된 적자를 해소해야 하는 부담이 크다. 2022년 기준 티빙은 1192억 원, 웨이브는 1216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 막대한 적자를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인 상황에서, 곧장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이와 동시에 합병 이후 한껏 높아진 이용자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부담도 작용한다. 오리지널 콘텐츠의 흥행이 곧 OTT의 브랜드 가치로 직결되는 만큼 초기 단계부터 강력한 오리지널 콘텐츠로 시선을 끌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합병 이후 초반엔 제작비를 투입하더라도 ‘선택과 집중’을 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작품을 만들긴 어렵지만, 큰 화제가 될 만한 소수의 대작을 제작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이 같은 행보는 넷플릭스, 쿠팡플레이 등이 최근 취하고 있는 전략과도 유사하다. 팬데믹 이후 OTT 산업은 정체기를 겪고 있다. 게다가 제작비가 나날이 치솟고, 티빙과 웨이브 합병 등으로 플랫폼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면서 제작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이 플랫폼 업체들은 전체적인 작품 편수를 줄여 내실을 기하고, 집중도를 높이는 방안을 선택하는 것이다. 넷플릭스 팬사이트 왓츠온넷플릭스에 따르면 지난해 넷플릭스 글로벌 오리지널 콘텐츠는 705개로 전년(839개) 대비 16% 감소했다. K-콘텐츠의 경우엔 글로벌 영향력이 큰 만큼 다른 나라 작품과 달리 크게 줄이고 있진 않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2>처럼 이미 흥행한 작품의 새로운 시즌을 만드는 데 주력하며 보다 효율적인 방법을 강구하는 분위기이다. 쿠팡플레이 역시 <안나>(2022)<미끼>(2023)<소년시대>(2023) 등 소수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양보다 질을 내세워 입소문을 통해 화제성을 높이는 전략을 쓰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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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플레이 시리즈 <소년시대>
쉽지 않은 영화의 길…
토종 OTT, 영화의 날개도 달길

문제는 이런 분위기로 인해 영화가 갈수록 소외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대부분의 OTT는 영화보다 드라마에 주력하고 있으며,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 등이 이뤄져도 이 같은 현상은 갈수록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선택과 집중’을 해서 작품을 만들 때, 이왕이면 2~3시간에 불과한 영화보다 여러 회차로 구성되는 드라마를 더욱 선호하기 때문이다. 헤이스팅스 회장의 얘기대로 결국 OTT 전쟁은 ‘시간 전쟁’이다 보니, 이용자의 시선을 장시간 잡아 둘 드라마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OTT가 영화를 직접 제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극장 상영작을 사들이는 규모도 이전에 비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에 비해 영화의 시청 비중이 크게 떨어지는 탓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발표한 ‘주요 SVOD 서비스 제공 콘텐츠 이용 행태 분석’에 따르면 2022년 12월부터 2023년 4월까지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등 5개 OTT 서비스의 이용 행태를 분석한 결과, 넷플릭스에서의 드라마 시청 비중은 61.6%인 반면 영화 시청 비중은 20.6%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디즈니플러스에선 각각 80.3%, 12.5%로 나타났다. 글로벌 OTT와 달리 국내 OTT 티빙과 웨이브에선 예능과 드라마가 압도적이었다. 티빙은 예능 44.0%, 드라마 42.4%로 나타났다. 웨이브에선 각각 46.1%, 37.4%를 기록했다. 국내 OTT가 오리지널 영화는 거의 제작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영화 수급 자체도 적게 하는 영향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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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독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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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황야>

그럼에도 OTT가 영화를 아예 포기하지는 못한다. 영화는 드라마 못지않게 중요한 핵심 콘텐츠이다. 특히 한국영화는 뛰어난 작품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아 왔으며, <기생충> 등을 통해 K-콘텐츠 열풍 확산에 크게 기여해 왔다. 앞으로 OTT는 한국영화 다수를 제작하거나 수급하진 못하더라도, 작품성이 뛰어나거나 화제가 될 만한 작품에 대한 관심은 이어 갈 전망이다. 넷플릭스가 글로벌 시장에서 오스카 등 주요 시상식을 석권하기 위해 유명 감독들의 작품을 적극 제작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국내에서 극장 대신 OTT 행을 선택한 <황야><독전2> 등을 오리지널 영화로 채택한 것도 플랫폼 자체의 화제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티빙, 웨이브도 합병 이후 주목도를 높이고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이전보다 영화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다. 방송에서 동시에 방영되는 비중이 높은 예능이나 드라마만으로 OTT 자체에 대해 높아진 기대를 온전히 충족시키긴 어려운 이유다.

어느 때보다 중요한 갈림길에 선 국내 OTT 시장.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은 넷플릭스의 독주를 막아설 수 있을지, 이대로 시장이 잠식되고 말지 결정짓는 주요 사건이 될 전망이다. 이 상황에서 한국영화가 가는 길은 당분간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플랫폼 전쟁은 곧 콘텐츠 전쟁이며, 여기서 영화는 결코 빠질 수 없다는 점이다. 나아가 이 치열한 전쟁에 참여하게 된 토종 OTT들이 드라마뿐 아니라 영화라는 든든한 날개를 달고 날아오른다면 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이 잠자는 시간까지 쪼개 K-무비에 빠져들 준비가 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