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극장가에 솔솔 부는 기대감,
봄은 과연 올 것인가
- 글
- 이선필(오마이뉴스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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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엔 <범죄도시3>, 그리고 하반기엔 <서울의 봄>이 주인공이었다. 지난해 등장한 이 두 편의 천만 관객 돌파 영화는 과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침체한 영화계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동력이 되었을까. 분명한 건 팬데믹 이전의 약 절반 수준으로 절대 관객이 감소한 상황에서도 좋은 작품은 관객들이 반응한다는 사실이었다.
통계로만 놓고 보면 여전히 반등의 흐름을 찾기는 어렵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발표한 2023년 영화 산업 결산 자료 기준 지난해 극장을 찾은 관객 수는 1억 2514만 명으로 2022년 관객 수 대비 10.9%가 증가했지만, ‘한국 영화’로 범위를 좁히면 오히려 2022년보다 3.3% 감소한 6075만 명이었다. 2022년 유일한 천만 동원 영화였던 <범죄도시2>보다 한 편 증가한 두 편의 천만 관객 영화가 나왔지만, 관객들은 주요 한국 대중영화보다는 <엘리멘탈><스즈메의 문단속><더 퍼스트 슬램덩크> 등 웰메이드 애니메이션과 외화에 호응을 보였다는 게 영진위의 분석이었다.
수치상으론 아쉽지만 당장 지난해 11월 말과 12월에 <서울의 봄>을 비롯해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가 약 4주 간격을 두고 개봉하며 1700만 명 가까운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물론 <노량>의 흥행세가 다소 꺾여 손익분기점(720만 명) 돌파는 어려워 보이지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강세로 영화 자체가 사양산업이 되는 게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를 일부 씻어내는 계기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주요 투자배급사들은 2024년 저마다의 배급 전략을 면밀하게 세우고 공개 시기를 저울질 중이다. 명절 연휴나 여름·겨울방학의 흥행 불패 신화가 깨진 만큼 섣불리 배급 날짜를 정하지 않고, 극장가 흐름을 지켜보며 유연하게 대처하려는 분위기가 읽힌다.
<범죄도시3>와 <서울의 봄> 대흥행으로 희망을 맛본 메가박스 플러스엠은 올해 많게는 일곱 편의 작품을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흥행 보증수표나 다름없는 <범죄도시4>가 베를린영화제 스폐셜 갈라 부문에 초청되며, 한 번 더 기대감에 부풀게 만든다. 무술감독 출신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황야>로 첫 연출 신고식을 치른 허명행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범죄도시> 시리즈 제작자이기도 한 마동석과 <황야>에 이어 함께 작업한 만큼 그 호흡이 기대된다.
박상영 작가의 인기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을 원작 삼은 영화 역시 기대작이다. 배우 김고은과 애플 TV+ <파친코>로 주목받은 노상현이 출연했다. <무뢰한>을 연출한 오승욱 감독은 신작 <리볼버>로 전도연과 또 한 번 호흡을 맞췄다. <베테랑><내부자들> 등 여러 대중영화에서 감초 조연으로도 활약했던 황병국 감독은 영화 <특수본>(2011) 이후 <야당>이라는 작품으로 13년 만에 감독으로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마약 범죄를 소재로 다뤘다는 점에서 시의성이 있기에 기대작으로 꼽을 만하다.
조진웅, 김희애가 주연으로 나선 <데드맨>(하준원 감독)과 황정민, 염정아, 전혜진이 함께 하는 <크로스>(이명훈 감독)도 범죄 오락 액션 장르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객의 소구를 만족시켜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제훈, 구교환 등 한국 독립영화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온 배우들이 전면에 선 <탈주>(이종필 감독)는 분단 현실을 배경으로 남북 간 추격전 및 수 싸움을 그린 작품이다.
지난 1월 10일 <외계+인> 2부를 공개하며 가장 먼저 포문을 연 CJ ENM은 전통의 업계 1위임에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및 지난해까지 주요 작품이 흥행에 실패하며 와신상담 중이다. 지난해 <유령><카운트><더 문><소년들><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등 다섯 편의 한국 영화를 투자·배급한 CJ ENM은 올해에도 편수로 치면 비슷한 수준의 작품을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각본상 2개 부문 노미네이트 소식을 전한 <패스트 라이브즈>는 미국 독립영화계의 신성 A24가 제작한 작품으로, 배우 유태오가 주연을 맡았고, 국내외 주요 영화제에서 공개될 때마다 호평을 받고 있기에 국내 관객의 기대치 또한 높아진 상황이다. 현빈과 박정민, 조우진, 전여빈이 출연한 <하얼빈>(우민호 감독)은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를 장르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2015년 8월 개봉 후 1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현재까지도 영화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이 오랜 요구와 기대에 부응해 올해 속편이 공개될 예정이다. 이 또한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이바지할 것으로 보인다. 윤여정, 유해진, 김윤진이 출연한 <도그데이즈>는 동물병원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코미디로 올해 설 연휴 흥행을 노리고 있다. 연출 데뷔작 <엑시트>로 흥행에 성공한 이상근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2시의 데이트>도 올해 개봉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지난해 다른 투자배급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국 대중영화보단 OTT 플랫폼 협업 드라마 및 배급에 집중했던 뉴(NEW)는 올해 역시 타사보다 다소 적은 세 편의 한국 영화를 배급하며 ‘정중동 전략’을 취한다. 적은 편수였지만 <밀수>가 흥행했고, 배급대행이었던 <더 퍼스트 슬램덩크>도 크게 성공하며 나름 의미있는 성적표를 받아든 뉴는 올해 세 편에서 네 편의 한국 영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코미디 장르를 표방한 <핸섬 가이즈>(남동협 감독), 범죄 액션 요소가 가득한 <엑시던트>(가제)가 상반기 혹은 하반기에 공개될 것으로 보이며, 2014년 <인간중독>으로 관객과 만난 김대우 감독이 10년 만에 <히든 페이스>라는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로 돌아올 예정이다.
쇼박스도 상반기와 하반기 각각 두 편의 한국 영화를 배급한다는 방침이다. 라미란 주연의 추격 활극 <시민덕희>가 1월 24일 개봉했고,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된 <파묘>도 2월 22일 공개된다. 최민식과 김고은, 유해진이 각각 장의사와 무당을 연기해 오컬트 요소에 열광하는 관객들의 구미를 당길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엔 글로벌 투자사와 국내 기업 간 경영 대결을 다룬 <모럴헤저드>와 배우 박신양 주연의 <사흘>이 개봉을 예고했다. 죽은 딸 안에 살던 악마가 깨어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는 <사흘>은 박신양이 10년 만에 영화로 복귀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연말에 <노량>을 개봉하며 2024년을 맞이한 롯데엔터테인먼트는 많게는 일곱 편의 한국 영화를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임상수 감독의 <행복의 나라로>는 지난해에 공개할 것으로 보였지만, 올해 라인업에 다시 포함되었다. <변호인><강철비> 등 한국 현대사에 천착해 온 양우석 감독은 휴먼 드라마 <대가족>으로 찾아온다. 유명 만둣집을 배경으로 한 가족 코미디로 방학 시즌 혹은 명절 연휴를 노릴 것으로 보인다. 오랜만에 휴먼 장르로 돌아온 류승룡, 박해준 주연의 <정가네 목장>(김지현 감독), 황혼 연애를 소재로 한 <소풍>(김용균 감독), 실직자의 재취업기를 다룬 <파일럿>(김한결 감독)은 특유의 따뜻한 감성을 담아낸 작품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일종의 오컬트 요소가 가미된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임대희 감독), 부활 능력을 지닌 주인공을 다룬 <부활남>(백종열 감독)이 개봉 시기를 가늠하고 있다.
신진 투자배급사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에선 김태용 감독의 복귀작 <원더랜드>를 가장 큰 기대작으로 꼽고 있다. <댓글부대><바이러스>를 비롯해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소방관> <출장수사> 등 그간 여러 이유로 쌓아 두고 있던 영화들도 올해에는 대거 개봉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 같은 국내 주요 투자배급사들의 작품과 함께 OTT 플랫폼, 그리고 할리우드 자본과 손잡은 한국 영화인들의 작품도 극장가에 힘이 될 전망이다. 올해는 박찬욱·봉준호 감독의 작품이 모두 출격을 대기 중이라 어느 해보다 관객들에게도 극장을 찾아올 요인이 분명하다.
애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7>을 원작으로 한 봉준호 감독의 <미키17>은 봉 감독 특유의 디테일한 연출이 기대되는 SF 장르의 영화다. 스티븐 연, 마크 러팔로 등 스타 배우들이 출연했다. 배급사인 워너브라더스는 애초 올해 3월 개봉을 예정했으나, 할리우드 영화인 조합의 파업 등을 이유로 개봉을 연기한다고 밝힌 상태다. 일각에선 올해 칸영화제 출품을 이유로 연기한다는 소문이 일 정도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오스카상 4관왕을 한 <기생충>(2019) 감독의 신작인 만큼 관심도가 그만큼 높다.
박찬욱 감독은 미국 HBO 채널을 통해 드라마 <동조자>(The Sympathizer)로 전 세계 시청자들을 만날 예정이며, 제작 및 각본으로 참여한 <전,란>(김상만 감독)은 넷플릭스를 통해 올해 공개된다. 넷플릭스의 인지도를 세계 최정상으로 올려놓은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2>도 빠르면 올해 말 공개될 가능성도 있다.
이미 영화인들의 OTT 플랫폼 진출이 활발한 만큼 극장 상영작과 함께 각 OTT 플랫폼 신작도 눈여겨봐야 한다. 플랫폼 특성만 놓고 보면 극장과 스트리밍 서비스는 경쟁 관계처럼 보이지만, 산업적 측면에서는 부가 판권이나 일자리 창출, 콘텐츠 제작과 관련해 연동되어 있기에 공생 관계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극장과 스트리밍 서비스는 경쟁 관계처럼 보이지만,
산업적 측면에서는 부가 판권이나 일자리 창출, 콘텐츠 제작과 관련해
연동되어 있기에 공생 관계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19일 드라마 <선산>과 <황야>를 공개한 넷플릭스는 올해 <살인자ㅇ난감><경성크리처2><스위트홈3><더 에이트 쇼> 등을 공개한다. <선산>은 K-좀비물을 세계적으로 알린 연상호 감독이 제작에 참여한 작품으로 가족의 양면성을 다룬다. <살인자ㅇ난감>은 우연히 살인을 즐기게 된 한 남성과 그를 추격하는 형사의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이며 스릴러 요소가 강하게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더 에이트 쇼>는 웹툰 <머니게임><파이게임>을 원작으로 새롭게 각색한 결과물로 한재림 감독의 첫 OTT 시리즈물 연출작이기도 하다.
국내 OTT 플랫폼 중에선 티빙이 가장 공격적으로 올해 작품을 공개할 예정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온스크린(OTT 작품을 소개하는 섹션)에서 공개된 여섯 편 중 세 편의 작품이 티빙의 투자 작품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따로 ‘CJ의 밤’ 행사를 열고 국내외 취재진을 만난 구창근 대표가 기존의 영화 부문 투자를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밝히면서도 “투자된 영화들이 고객을 만나는 방식과 형식은 조금씩 변화가 있지 않을까 생각은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OTT 플랫폼에 방점을 찍겠다는 의중으로 읽힌다.
지난해 11월과 12월 각각 파트1과 2가 공개된 <운수 오진 날>, 그리고 지난해 12월에 파트1이 공개되고, 올해 1월 초 파트2가 공개된 <이재, 곧 죽습니다>는 티빙의 오리지널 콘텐츠로 간판 역할을 하는 중이다. 액션 사극으로 알려진 <우씨 왕후>와 인기 드라마였던 <비밀의 숲>의 스핀오프 버전인 <좋거나 나쁜 동재>, 코미디 액션 멜로 요소 등 다양한 장르성이 돋보이는
국내 최대 콘텐츠 기업 CJ ENM은 계열사와 협력사를 적극 활용한 콘텐츠 제휴 전략을 구사한다. 티빙은 방송 채널 tvN과 협업해 드라마 <손해 보기 싫어서>, 멜로 사극 <원경> 등을 선보인다. 앞서 언급한 작품 중 <좋거나 나쁜 동재><우씨 왕후><운수 오진 날> 등은 미국 OTT 플랫폼 파라마운트 플러스를 통해서 전 세계에도 함께 공개된다.
<무빙>과 <카지노>, 그리고 지난 연말에 공개된 <비질란테>로 재미를 본 디즈니플러스는 <킬러들의 쇼핑몰>과 <화인가 스캔들> 등을 올해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또 다른 국내 OTT 플랫폼 웨이브(wavve)는 지난해 11월 <거래>를 공개하긴 했지만, 화제 몰이에는 실패하며 드라마 콘텐츠 제작에서 위축된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그나마 인기 오리지널 콘텐츠였던 <약한 영웅> 시리즈의 판권마저 넷플릭스에 넘기면서 해당 드라마 시즌2는 넷플릭스에서 투자 및 공개하게 되었다.
모바일인덱스가 발표한 2023년 한국 OTT 시장 분석 자료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1위 수성에 티빙과 쿠팡플레이가 각각 2위와 3위, 그리고 4위를 차지한 디즈니플러스가 2023년 1월에 비해 12월 이용자 수가 약 40% 이상 급증했다. 하지만 디즈니플러스를 제외한 다른 플랫폼은 구독자 수가 미미하게 감소하거나 정체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방역 등을 이유로 집단 관람 문화가 축소되면서 OTT 플랫폼의 성장세가 두드러졌고, 그에 따른 공격적인 투자도 이어졌지만 기대만큼 성장세를 이어 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OTT 플랫폼의 정체는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구독자는 한정되어 있는데 플랫폼은 갈수록 다양해지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글로벌 기업 아마존, 파라마운트, 워너브러더스 등이 이미 스트리밍 관련 인원을 감축해 오고 있다. 유명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 트위치는 지난해 말 한국 서비스 종료를 발표했고 본사 직원 수백 명을 해고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티빙과 웨이브가 합병을 위한 사전 논의가 진행 중이다.
예상보다 빠른 OTT 플랫폼의 정체에 다시금 극장용 콘텐츠에 자본이 몰릴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한 주요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팬데믹 기간 및 직후에 주요 대작 영화들이 참패하긴 했지만 2024년엔 관객들이 극장에 상당수 돌아올 조건이 마련될 것 같다”며 “흥행성 높은 작품 공급이 줄어든 게 전체 시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지켜봐야겠지만, 영화라는 게 역사적으로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라 늘 형식과 내용을 변화해서 수요를 발생시킨 만큼 올해엔 그 과정을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내다봤다.
또 다른 투자 관계자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을 때보다 양질의 시나리오가 돌기 시작했다. 2, 3년 전만 해도 그런 게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등으로 넘어갔다면 이제는 주요 영화사들의 투자심사 단계에 올라오고 있다”며 “예전처럼 대형 블록버스터로 갈 수는 없겠지만, 중급 예산의 영화들이 다양하게 등장할 것 같다. 오히려 그게 더 영화 산업이 건강해질 수 있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전했다.
겨울이 지나면 곧 봄이 찾아오는 게 자연의 섭리다. 기성 감독들의 작품과 더불어 꾸준히 신진 작가들의 기획과 작품 제작 소식이 들려오는 이상 극장가에도 봄기운이 완연한 때가 찾아올 수 있지 않을까? 창작이 지속되는 한 따뜻한 봄바람은 어김없이 불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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