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via
사기 피해자와 발신자의 특별한 동맹
영화 <시민덕희> 트리비아
- 글
- 이은지(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 사진
- 에이스팩토리, 엔케이컨텐츠
Trivia
영화 <시민덕희>는 보이스피싱을 당한 평범한 시민 덕희에게 사기 친 조직원 재민의 구조 요청이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2016년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세탁소 주인 김성자 씨가 보이스피싱 총책 및 조직 전체를 붙잡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제 이야기로, 김 씨는 보이스피싱 사기를 통해 약 3200만 원의 피해를 입었고 사건 한 달 후 보이스피싱 발신자에게 제보를 받아 사건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이 이야기를 들은 박영주 감독은 보이스피싱 피해자 다수가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연출을 결심했다. 개봉 전 박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영화 <시민덕희>는 알려진 바와 같이 실화를 소재로 한다. 박영주 감독은 제작사로부터 해당 실화를 영화로 만들어 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이후 전해들은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로웠다고. 보이스피싱을 한 사람이 사건의 제보자인 점, 피해자가 총책을 잡는 데 기여했다는 점, 그 사람은 아주 평범한 시민이라는 점 등이 박 감독의 흥미를 당겼다. 이런 지점에 이끌려 피해자와 경찰을 인터뷰했는데,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보이스피싱이라는 범죄가 악질이고, 무섭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박 감독은 피해자가 스스로 ‘내가 바보 같아서 당했다’고 자책을 많이 한다는 부분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절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었고,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결정을 내렸다.”
박 감독은 연출을 하기로 결정한 뒤 직접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부분이 피해자를 위로하기 위한 것인 만큼 피해자가 자존감을 회복해 가는 과정과 일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잘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덕희가 처해 있는 상황과 그 상황을 극복해 가는 과정, 그리고 총책을 잡는 과정 등은 많은 사람이 공감하리라 생각했다. 그 부분을 관객들이 보다 편안하게 보고 웃고 울고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나리오 방향을 잡아 나갔다. 특히 보이스피싱 범죄가 절대 가벼운 범죄가 아닌 만큼 너무 가볍게 비치지 않도록 밸런스를 잡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 실화와 영화적 개연성실화를 소재로 택한 모든 감독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바로 어디까지 담을 것이냐이다. 박 감독 역시 이 부분을 가장 많이 고민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실화를 그대로 옮긴다고 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잘 전달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잘 전달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또 실화의 개연성과 영화의 개연성이 다르기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현실적인 의문을 가지지 않고 이야기를 잘 따라올 수 있을지,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도록 신경 썼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사실 우리와 너무 가까이 있다. 그만큼 누구나 당할 수 있는 범죄이기도 하다. 박 감독 역시 이런 피싱 문자를 종종 받았다고. 예를 들어 시키지도 않은 택배 배송 완료 문자, 자신이 쓰지도 않은 카드 결제내역이 전송되는 일 등이다. 최근에는 모바일 메신저로 ‘엄마 핸드폰 잃어버렸어’라는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고. “엄마가 원래 잘 잃어버리는 캐릭터다. 하하.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는데, 가만 보니 나를 엄마라고 부르고 있더라. 나는 자식이 없는데 말이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답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누구나 당할 수 있는 피해라고 생각한다.”
# 실제 피해자박영주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실제 피해자를 만나 모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영화와 다른 점도 있지만 큰 틀에서는 비슷했다. 경제적으로 좋지 않은 상황이었고, 수술비가 필요한 절박한 상황이었다. 보이스피싱은 이런 절박함을 이용한 범죄다. 피해자는 영화에서 배우 라미란이 연기한 덕희와 마찬가지로 송금을 여덟 번이나 했다고 했다. 또 덕희처럼 스스로를 자책하고 괴로워했다고.
당시 제보를 받고 경찰의 도움을 받기 위해 찾았지만 믿어 주지 않았다. 결국, 실제 피해자는 제보자를 설득했고 총책을 잡는 데 큰 도움을 줬다. 박 감독이 들은 설득 과정이 몹시 흥미로웠다고. “어떻게 보면 사기를 친 사람이 제보한 셈이다. 그 제보자는 피해자에게 자기도 갇혀 있어 힘들다고 푸념을 했고, 피해자 역시 나도 돈이 없어 힘들다는 등 서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연대 아닌 연대감이 생겨 자료를 주고받았다고 하더라. 그 과정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또 당시 피해자가 느꼈을 절망감이나 자책감, 경찰의 대응으로 인한 억울함, 울분 등을 좀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참고로 실존 인물은 중국에 가지는 않았다. 또 1~2주 동안 제보자와 전화통화를 진행하며 총책을 잡을 수 있는 단서를 얻어 냈다.
영화 속 보이스피싱 조직의 본거지인 중국 칭다오는 영화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공간이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박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을 당시는 2017년으로, 보이스피싱 내부는 지금보다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만큼 많은 취재와 공부가 필요했다. 콜센터 내부 분위기는 누가 봐도 무섭고 나쁜, 위협적인 범죄라는 것이 드러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전화기 뒤에 숨어서 하는 무서운 범죄, 절박함을 이용한 악질적인 범죄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영화적 과정을 통해서라도 보여주고 싶었다고.
# 보이스피싱 조직원을 만나다박 감독은 <시민덕희>를 보다 현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한때 보이스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과 인터뷰까지 진행했다. 그 사람을 통해 어떻게 조직적으로 보이스피싱 범죄가 일어나는지, 실제로 구타나 협박이 일어나는지, 또 조직 안에서 서로 이름을 잘 모르는지, 콜센터가 나눠져 있는지 등에 대해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생생한 이야기와 자료 조사를 통해 영화의 현실성을 채워 나갔다. 여담이지만, 박 감독이 만난 조직원은 조직에서 나와 보이스피싱과 관련된 책을 내기도 했다.
# 덕희 라미란과 재민 공명, 그리고 총책 이무생<시민덕희> 속 캐릭터는 그 누구보다 생생하게 살아 있다. 무엇보다 캐릭터에 딱 맞는 배우들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덕분이다. 먼저 라미란은 박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을 당시부터 염두에 둔 배우였다. 덕희라는 캐릭터는 우리 주변의 이웃이고 그냥 함께 살고 있는 듯한 친근함이 필요했다. 또 굉장히 다양하고 폭넓은 감정을 보여주는 만큼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가 필요했다고. 친근함이 있으면서도 어려움 속에서 유머를 잃지 않는 재치나 위트가 있는 배우가 바로 라미란이었다.
다음은 제보자인 재민이다. 재민은 제보자로도 활약하지만 결국은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다. 비록 현재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 덕희에겐 가해자지만 속에는 선함이나 정의로움을 가진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지금 나쁜 짓을 하지만 나쁜 애는 아닐 것 같은 믿음을 주는 얼굴이 필요했다. 박영주 감독은 "개인적으로 공명 씨가 신뢰를 주는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박 감독이 가장 고민을 많이 한 캐릭터는 총책이었다. 분량이 많지 않지만 임팩트가 필요했다. "우연히 <봄밤>이라는 드라마를 봤다. 배우 이무생이 아내를 때리는 나쁜 역할로 나왔는데, 드라마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미팅을 했는데, 배우 자체가 가지고 있는 아우라가 있더라. 덩치도 크고 남자다운 느낌, 카리스마가 있었다. 이무생이라면 덕희가 만났을 때 위압감이 느껴질 것 같았다. 항상 벙거지를 쓰고 다니는데 마지막엔 슈트를 입고 등장한다. 사기꾼 이미지가 아니라 비즈니스맨 이미지를 주고 싶었다."
# <콜>에서 <시민덕희>로<시민덕희>의 당초 제목은 <콜>이었다. 보이스피싱이 전화로 시작되는 범죄라는 점에서, 또 전화가 총책을 잡는 시발점이 된다는 점에 어울리는 제목이었다. 단순한 제목이었지만 영화가 개봉하기 전 박신혜, 전종서 주연의 영화 <콜>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선수를 뺏겼다 생각하고 다른 제목을 찾던 중 <시민덕희>가 떠올랐다고. “사실 덕희라는 이름을 찾기까지 오래 걸렸다. 이름 자체가 주는 푸근함과 친근함이 있으면서도 발음하기 쉬운 이름이 필요했다. 영화 속에서 “김덕희 씨!”라고 부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 이름을 찾기 어려웠고 덕희라는 이름을 찾았을 때 제목 역시 <시민덕희>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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