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미경 (스튜디오N 대표, 이하 ‘권미경’)

지금까지 제작비가 거론되지 않았는데, 제작비 문제도 정말 중요하다. 요즘 늘 투자배급사들에게 듣는 얘기들이 있다. “이게 ‘얼마짜리’ 이야기예요?” “50억짜리 가지고 오세요.” “70억짜리 가지고 오세요.” 여기서 ‘얼마짜리’라고 얘기하는 건 BEP를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제작비를 낮추는 건 정말 쉽지 않다. 투자배급사들은 투자 금액의 BEP를 맞추려고만 하지 말고 제작비를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제작비를 줄일 수 있는 부분은 결국 캐스팅 비용 아닐까?

김혜선 (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이하 ‘김혜선’)

권미경

가장 큰 부분이긴 하다. 스태프 비용도 많이 올라갔지만, 가장 점핑을 한 건 배우 캐스팅 비용이다. 톱 캐스트들은 거기에 더해 지분을 가져가니까 제작사 입장에서는 그게 가장 어렵다. 배우 입장에서 볼 때 OTT 시리즈를 찍으면 그 기간 동안 얼마를 버는데, 영화를 찍으면 그만큼 벌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또 대부분의 스타들이 극장 관객 수를 매우 부담스러워한다. OTT는 관객 수가 안 나오지 않나. OTT 시리즈는 시청자들의 평가가 좋든 나쁘든 각자 온도를 조절해서 반응하는데, 극장 영화를 할 때는 망한 영화의 주인공이 될까 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톱 배우들이 영화를 예전만큼 선호하지 않게 되었다.

예진해 (넷플릭스 글로벌 어페어팀 시니어 매니저, 이하 ‘예진해’)

2026년이면 넷플릭스 코리아가 론칭한 지 10주년이 된다. 넷플릭스 코리아 역시 영화 제작비 상승의 압력을 겪고 있다. 일본이나 동남아시아의 영화 제작비 수준에 비하면 한국영화 제작비가 매우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부에서 캐스팅 비용 가이드라인을 만들 계획은 전혀 없다. 다만 정부 차원에서의 콘텐츠 제작비 관련 적정 캐스팅 비용들에 대한 연구나 관련 법 사례들이 있긴 하다. 영상 콘텐츠 제작비 세액공제의 경우, 일부 주요 창작자들이나 주연급 배우들의 출연료가 제작비의 3분의 1 수준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조항이 일부 제도화되어 있긴 하다. 앞서 김혜선 편집장의 말씀처럼 뭔가 상생협의체나 대화의 장이 필요하다고 본다.

김주형 (펜처인베스트 상무, 이하 ‘김주형’)

김수연 이사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다. NEW의 경우 작품 제작 결정을 할 때 제작비에 대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최적의 제작비를 산출하나.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했을 때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 현재 좀 더 신경 쓰는 것은 어떤 부분인가?

김수연 (NEW 영화사업부 이사, 이하 ‘김수연’)

제작사가 제출해주는 예산서를 보고 유관 부서인 투자팀이 같이 검토하고, 제작사와 조율을 하는 편이다. 예산을 줄이는 방법 가운데 우선적인 방법은 촬영 회차를 줄이는 것이다. 큰 영화는 예전에는 기본 100회 차 촬영을 했다면 지금은 제작사와 감독이 10회 차라도 줄이려는 노력을 한다. 팬데믹 때도 100억 원 혹은 150억 원 규모의 영화가 꽤 있었다. 하고 싶은 프로젝트인데 BEP를 걱정해서 투자를 안 한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2025년은 최대 흥행작의 관객 수가 500만 대였으니 만약 누가 BEP 700만짜리 영화를 제안하면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시장이 어려우니까 투자배급사도 투자 심사를 할 때 스스로 보수적이 되는 면이 있다. 그리고 앞서 해외 수출이 답이 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해외 바이어들도 자국에서 흥행할 만한 작품들만 사고, 사더라도 그 금액이 한정되어 있다. 간혹 베트남에 직배(직접 배급)를 해서 한국 호러나 스릴러가 더 크게 터질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보편적인 흥행 성적이 나오기 때문에 투자금 회수가 어려울 수 있다. 촬영 회차 축소 외에 촬영 방법의 아이디어 등 제작비를 효율적으로 절감할 방법을 계속 찾아야 한다.

권미경

스튜디오N도 지금 60억 원 규모의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데, 회차를 줄이는 게 제작비를 낮출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회차가 작품의 퀄리티와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지 솔직히 알 수 없고, 여기에서 또 대두되는 문제가 인공지능(AI)이다. AI를 얼마나 활용해서 제작비를 줄일 수 있는가. 그만큼 제작비는 한국영화가 넘어야 할 큰 허들인 것 같다.

김주형

가끔 파트너사들과 이야기하면 이런 얘기들을 듣는다. 제작비 100억 원 규모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순제작비를 80억 정도로 줄여보면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한다고. 20억을 어디서 어떻게 줄여야 할까. 제작사도 참 만만치 않겠구나 싶다. 투자사는 이런 장르와 이런 배우라면 이 정도 제작비가 BEP 도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산출할 때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영화 산업 데이터를 보면 쉽지 않다. 투자하는 입장에서도 혼란스럽고 죄송하다.

김수연

시장이 어려우니까 최근에는 40억에서 50억 원 사이의 영화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온다. 제작사들도 위기를 느껴서 적은 예산으로 제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지금 시장 상황 때문에 큰 영화는 큰 영화대로 ‘BEP가 500만이면 어떡하지’ 하면서 두려워한다. 작은 영화는 작은 영화대로 걱정한다. 예산이 30억, 40억이라는 건 그만큼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A급 캐스팅이 어렵다는 얘기다. 연출 경험이 없는 신인 감독, 신인 배우를 캐스팅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산업적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30억, 40억 원대 영화의 BEP가 100만 이하라고 하더라도 어렵다고 보는 거다. 지금 시장에선 100만 관객도 정말 많은 것이니까. 작은 영화는 작은 영화대로, 큰 영화는 큰 영화대로 걱정하는 상황이다.

권미경

결국 시장을 키우려면 큰 영화도 필요하다. 2025년 천만 영화가 안 나온 건 왜일까. 다들 큰 영화에 대한 부담이 있는 거다. “그럼 도대체 큰 영화는 누가 하냐”라고 묻는다면 결국 대기업이라는 백그라운드가 있는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판을 다 만들어 올 수 있는 사람들. 그런데 정부의 모태펀드 같은 경우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전혀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제는 펀드에 대한 재정비도 필요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나누는 기준은 언제,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가 싶다. 2025년 이후의, 현재의 기준이 필요하다. 많은 이들이 제작사나 영화인들이 연대해서 싸워야 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우리가 경쟁해야 하는 대상은 할리우드 영화, 중국영화, 일본 영화다. 제도와 규정이 한국영화 제작사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한국영화 산업을 위해서 정말로 필요한 규정인지 질문하고 싶다. 독립영화, 예술영화를 살리는 건 물론 중요하다. 독립예술영화의 몫을 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지금 한국영화 시장에서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니 역차별은 안 했으면 좋겠다.

윤하 (영화진흥위원회 정책개발팀장, 이하 ‘윤하’)

예전에는 괜찮은 제작사, 유명 감독, 스타 배우의 조합이면 무조건 수익이 나고 그 수익의 차이가 얼마나 되느냐는 정도였다. 지금은 그게 불투명하고 스타 시스템의 한계도 있어서 콘텐츠 미디어 전략펀드 운용사에서 영화 투자를 못 하겠다고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영화 단체 및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등과 계속 대화하고 있다. 한국영화가 경쟁력이 있으려면 영화 전략펀드를 별도로 만들어야 하나 등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신영 (롯데컬처웍스 커뮤니케이션팀장, 이하 ‘이신영’)

모태펀드의 한계를 완화시키기 위해 오랜 기간 국회, 문체부, 경제 단체를 통한 규제 개선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모태펀드는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관할이기 때문에 문체부가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전략펀드 같은 경우도 벤처캐피털(VC) 회사들이 펀드를 운용하게 되면 애초의 펀드 도입 성격과 달라진다. 결국에는 중기부 기조를 따라야 된다고 알고 있다. 모태펀드가 아니라 다른 정부 펀드가 결성되어도 문제는 같다. 일반 금융권이 들어와야 하는데 수익성이 좋지 않으니 들어오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영화뿐 아니라 바이오 등 다른 분야의 펀드를 얘기할 때도 손실이 생기는 부분을 어느 정도 정부에서 끌어안고 다른 금융권 투자가 들어올 수 있게 여지를 만들어줘야 투자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그 부분이 가장 어려운 문제 같다.

투자배급사들마다 고유의 BEP가 있다. 리스크를 줄이려고는 하는데, 펀드 활용에 제약 조건들이 많으니 제작된 영화들을 개봉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지금도 개봉하지 못한 영화들이 여전히 남아 있고. 그래서 정부가 재정 부담을 안더라도 직접 투자, 직접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지금 바이오 산업 쪽에서 많이 얘기되는 게 직접 환급제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100만 원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가 있는데 지금 낼 법인세가 당장 없다. 초기 사업이라서 투자비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이익이 없고, 그래서 낼 세금이 없는 경우다. 그러면 당장 100만 원에 대해서 세액공제를 받는 게 아니라 직접적으로 현금 100만 원을 지원해주는 형태로 한 분야의 초기 산업을 보장해주자는 법안이 미국에서는 통과되었다. 국내에서도 많은 기업들이 이러한 지원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 산업도 너무 어려우니 정부가 이런 방식도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전략펀드 결성 초반에 큰 기대를 했었다. 문체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800억을 투입했으니까. 이후엔 ‘그 800억을 펀드 결성하지 말고 차라리 직접 지원을 해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제약 조건이 너무 많아서다. 당장 급한 이들에게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처방을 한 게 아닌가 싶다.

김주형

제작비 절감 노력은 다 같이 해야 될 것 같다. 상식과 도를 넘는 수준의 절감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2025년 개봉한 연상호 감독의 <얼굴>이 그런 면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수익이 났을 때 함께 나누는 형태로 해 제작비 집행을 최소화했고, 다행히 흥행에도 성공해서 참여한 모든 이들이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런 시도가 2026년에는 조금씩 더 늘지 않을까. 물론 연상호 감독이 그간 쌓아 온 관계로 좋은 배우들, 스태프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프로젝트이겠지만.

한국영화가 흥행이 안 되니까 메인 투자배급사들의 현금 보유가 많이 부족해진 게 사실이다. 총 제작비 중에 우리가 얼마나 부담할 것인가 늘 고민이었는데 지금은 그 고민이 더 커진 거다. 만약 정부에서 지원 또는 투자로 들어오면 메인 투자사들의 제작비 조달 부담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투자사 입장에서는 BEP가 낮아지는 효과도 있으니까 보다 더 활발한 투자를 할 수 있을 것도 같고. 이상적인 생각이겠지만 정부가 한국영화 P&A 비용일 겁니다. 비용을 지원해주는 등의 정책이 있다면 더 많은 영화들을 제작하고 개봉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제작사가 제작하는 영화에는 현재 모태펀드 자펀드를 통해 투자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이 있는데, 이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다. 최근 모태펀드에서 우리 같은 영화 펀드 운용사들에 의견 수렴을 한 바 있고, 저희도 여러분들과 같은 생각으로 답변했다.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권미경

지금 한국영화계는 심폐소생술이 필요하다. 타이밍을 놓치면 죽는다. 그 골든타임이 1, 2년 도 안 남은 것 같다. 지금 심폐소생술을 못 하면 2027년, 2028년에는 한국영화가 전체 박스오피스의 20%, 아니 10%밖에 안 될 것 같다. 외화가 80, 90%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타이밍이 급한데, 정책은 빠르게 진행되지 않는다. 한국영화의 생존 자체가 급하다는 것을 정부가 인지하고 있는지, 영진위 관계자들이 그 위급함에 대해 계속 전달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정책이 실행되는 게 너무 오래 걸리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게 될 테니까.

윤하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한다. 대기업 계열의 제작사나 중견기업 계열 제작사들에게 규제를 완화하면 그들이 영화를 정말 많이 기획할까? 지금은 자금 허들 때문에 할 수 없이 계속 시리즈를 만들고 있고 영화 기획개발 자체를 못하고 있다고 우리도 정부를 설득하고는 있다. 하지만 투자 규제만 풀리면 정말 영화를 많이 기획할 것인가도 약간은 의문이다.

권미경

관객은 한국영화, 외국영화를 구별하지 않는다. 이게 몇 백만 짜리 영화야, 대작영화야, 독립영화야, 하는 식의 구별도 없다. 그냥 재미있으면 본다. 그런데 자꾸 생산자적 마인드로 영화를 몇 십억 짜리, 몇 백억 짜리로 구별 짓는 정책이 아이러니하다.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도록 타석에 자꾸 서게 해주는 정책, 관객들에게 맞는 정책이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