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cover img

Briefing

스크린 상한제 법제화, 위기의 해법 될까?

‘스크린 독과점 문제와 대안 마련 토론회’

김광균 프리랜서 기자

지난 7월 16일 오전 10시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국민의 힘 김승수 의원이 주최하고 영화진흥위원회가 주관한 ‘스크린 독과점 문제와 대안 마련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영화계의 해묵은 난제인 스크린 독과점 문제의 해결 방안을 놓고 다시금 관련 논의가 탄력을 받게 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이번 토론회는 지난 4월 개봉한 영화 <범죄도시4>가 상영 점유율 82%를 기록하며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불거진 데 대해 특정 영화의 상영관 독식을 방지하는 해법 마련을 위해 열렸다.

image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

토론회를 주최한 김승수 의원은 개회사를 통해 “올 상반기에 <파묘><범죄도시4>가 1000만 명을 돌파했지만 상영 점유율이 80%를 차지하다 보니 많은 제작사들이 극장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극장들도 여러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대작을 개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면서 “극장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동시 개봉 문제를 비롯해 수익 배분을 둘러싼 다양한 영화계 현안들이 불거지고 있는 만큼 서로 힘으로 밀어붙이기보다 토론을 통해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image
한상준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축사에 나선 한상준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은 “영화 흥행을 위해 개봉 초기 특정 영화에 스크린을 집중적으로 배정하는 관행이 오랜 기간 이어지고 있고, 이로 인해 규모가 작은 영화는 스크린을 배정받지 못해 흥행의 양극화가 발생하고 있다”며 “이번 토론회에서 기업의 영리 활동에 대한 규제의 관점에서 벗어나 다양한 규모의 영화가 상생하고 관객 입장에서 작품 선택권도 확대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토론회는 노철환 인하대 연극영화학과 교수, 이하영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운영위원의 발제에 이어 배장수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이사, 황재현 CJ CGV 전략지원담당, 이한대 싸이더스 대표, 신한식 한국영화관산업협회 본부장, 이호재 영화감독, 황승흠 국민대 법학부 교수 6명의 지정 토론 순으로 진행되었다.

image
노철환 인하대 연극영화학과 교수
발제 1. “관객의 높아진 안목, 입소문 영향 커”

노철환 인하대 연극영화학과 교수는 ‘스크린 점유율 상한제 도입 관련 영비법 개정 추진 경과 및 한계’를 주제로 발제에 나섰다. 노 교수는 “스크린 독과점은 영화의 경험재로서 특징을 활용해 상품성의 가치가 온전히 퍼지기 전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하는 홍보 전략인데, 갈수록 관객들의 안목이 높아지면서 마케팅이나 스크린 수에 휘둘리기보다는 입소문을 확인하고 관람하는 방식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스크린 독과점의 효과는 감소하리라고 보지만 한국영화의 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를 두고 보기보다는 최소한의 법적 규제를 통해 발전적 방향으로 시장 질서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노 교수는 스크린 상한제 시행의 필요성과 함께 연 2편 정도 자유롭게 상영할 수 있는 예외 규정을 두거나 극장 개봉 후 유예 기간을 두는 미디어 홀드백 법제화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미디어 홀드백은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된 후 IPTV, OTT 등 다른 채널로 유통되는 데 걸리는 유예 기간을 뜻한다. 

image
이하영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운영위원
발제 2. “상영 횟수 독과점, 통제 시스템이 없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이하영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운영위원은 ‘통합전산망 상영 통계에 근거한 스크린 독과점 현황 분석’을 주제로, 심화하고 있는 스크린 독과점의 현황과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운영위원은 “코로나19 이후 상영 횟수 독과점이 더 심화되고 있으며, <범죄도시4>의 경우 상영 횟수 점유율이 82%까지 올랐다”며 “현재 누구도 이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으며,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운영위원은 스크린 독과점 현상을 두고 멀티플렉스의 성장과 맞물려 스크린 배정 권한을 가진 극장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흥행 가능성이 큰 영화에 ‘몰아주기’를 한 결과라고 지적하며 “영화의 다양성이 파괴되면서 관객은 선택할 권리를 잃고 영화 산업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2011년 영화 산업의 불공정 해소를 위해 발족했으나 현재 유명무실해진 동반성장협의회라도 활동을 재개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토론회는 법 규제이냐, 합의를 통한 자율적 규제이냐를 두고 활발한 논의가 진행됐다.
“최소한의 법제화” VS. “인위적 규제는 역차별”

토론에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영화 산업을 우려하며 규제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배장수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이사는 “동반성장협의회가 발족해 이상적이라 할 수 있는 여러 합의를 만들어냈지만,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했다”며 “최소한의 스크린 상한제를 정하고 이를 준수하는 극장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함으로써 영화 다양성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한대 싸이더스 대표(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운영위원)는 “(스크린 상한제와 같은) 최소한의 룰조차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영화의 미래는 없다”며 “최소한의 법제화를 통해 극장과 배급사 간의 자율적인 협상 노력으로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제안했다.

이호재 영화감독 역시 “대학에서도 영화감독이나 창작자가 되려는 학생들이 줄고 있다”며 “업계 생태계 자체가 미래가 안 보이기 시작했고, 이대로 가면 결국 최상위 포식자도 같은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신중론을 펴는 의견들도 있었다. 신한식 한국영화관광산업협회 본부장은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위한 지원이 확대되어야 함에도 오랫동안 지원이 동결되거나 축소되어 왔다”며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는 영화 시장의 재도약과 상생 발전을 위해서는 규제보다는 진흥 정책 확대를 통해 시장경제 측면과 공공 측면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정책 방향성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승흠 국민대 법학부 교수는 스크린 독과점이란 용어의 적절성 여부를 두고 “스크린 배정 행위가 독과점이 되려면 수직계열화 관점에서 차별이 있어야 하는데 어떤 배급사가 공급하는 영화에 대해 스크린을 덜 배정했다는 것만으로 독과점이라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그보단 스크린 집중이란 표현이 적절하며, 이 문제가 소비자의 후생을 감소시킬 것인가에 대해선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극장 측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황재현 CJ CGV 전략지원담당은 “극장의 스크린 쏠림현상은 관객의 선택권을 반영한 것”이라며 “인기 없는 영화에 과도한 스크린을 편성했다면 극장은 규모를 줄이고, 예상보다 높은 인기를 얻는다면 스크린을 늘리면서 탄력적으로 운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인위적으로 극장 편성 규모를 줄이고 상영 기간을 늘린다면 국내 영화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멀티플렉스 브랜드를 사용하는 개인사업자 극장에 대한 역차별 등 인위적인 스크린 규제로 발생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면밀한 사전 검토와 대책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이 끝난 뒤 김승수 의원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스크린 독과점 문제와 관련해 직접적인 법적 규제로 갈 것인지, 이해관계자 간의 합의를 통한 자율적 규제로 해결할 것인지 논의해보기 위해 마련한 자리”라며 “실질적인 법제화 단계로 가기 전에 상호 협의를 통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시행해보는 시도가 선행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와 대안 마련 토론회에 참석한 관계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