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stival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속 한국영화와 74년의 베를리날레(Berlinale)
ALL About 베를린국제영화제
- 글
- 김현록(스포티비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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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About 베를린국제영화제
겨울의 차가운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2월, 회색의 도시 독일 베를린은 영화의 열기로 먼저 달아오른다. 베를린국제영화제(Internationale Filmfestspiele Berlin)의 계절이다.
베를린국제영화제는 칸, 베니스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햇살 좋은 5월 프랑스 남부 해변의 소도시 칸에서 열리는 칸국제영화제, 세계적 관광지인 이탈리아 베니스(베네치아)의 리도 섬에서 매년 8~9월 열리는 베니스국제영화제와는 온도와 분위기부터가 다르다.
유유자적 즐기는 관광과 휴양, 반짝이는 보석과 명품이 떠오르는 두 영화제의 레드카펫이 화려함 그 자체라면, 냉전으로 절반이 쪼개졌던 독일의 수도 중심가에서 열리는 이 영화제에선 두툼한 코트로 몸을 감싸고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 할 듯한 기분이다. 그래서일까. 올해 74년째를 맞은 베를린영화제는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도 시대와 호흡하는 날선 시선, 짙은 정치색으로 다른 두 영화제와 차별화하며 명성을 얻었다.
베를리날레(Berlinale)로도 불리는 이 저력의 영화제는 1951년 개최 이래 단 한번의 중단 없이 지금에 왔다. 지금이야 세계 3대 영화제로 자리잡았지만 출발은 다분히 정치적이었다. 극으로 치닫던 미소 냉전의 결과로 탄생한 대형 이벤트가 바로 베를린국제영화제다.
제1회 영화제가 열린 1951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6년, 소련의 서베를린 봉쇄가 풀린 지 2년 된 해다. 종전 후 동서로 분단된 독일의 통일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출발했다지만, 사실 영화제를 처음 구상한 미군정은 재건 중이던 '서'베를린을 주무대로 '자유주의 쇼케이스'를 열고자 했다. 유럽 한복판이자 동독의 수도, 동서 냉전의 최전선에서 시끌벅적한 축제를 열어 서방세계의 매력과 우월함을 선전하려 한 것이다.
역사적인 개막작은 알프레도 히치콕 감독의 첫 할리우드 영화 <레베카>. 첫 해에는 각 장르별로 5편에게 최고상인 황금곰상이 수여됐는데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신데렐라>가 음악영화 부분 황금곰상과 함께 관객상을 수상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영화제 초창기엔 제인 맨스필드, 에롤 플린, 캐리 그란트, 소피아 로렌, 셜리 맥클레인 등 당대 할리우드 스타들이 참석하며 인기몰이에 큰 몫을 했다. (1회 영화제는 6월에 열렸다. 이후 줄곧 여름에 열리던 영화제는 1978년부터 2월 개최로 바뀌어 지금에 왔다.)
베를린국제영화제가 국제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전문심사위원단을 배정하지 못하도록 압박하던 국제영화제작자연맹(FIAPF)은 1956년에야 영화제를 공식 인증했고 칸, 베니스와 같은 'A' 등급을 받아 이후부터야 전문 심사위원단이 황금곰상을 수여할 수 있었다. 이후 베를린국제영화제는 뉴웨이브를 적극 수용하는 등 실험적이고도 아방가르드한 영화, 정치색 짙은 날선 문제작을 두루 발굴하면서 빠르게 입지를 굳혔다.
긴 역사 동안 시끌벅적한 정치적 논란과 스캔들도 상당했다. 1970년에는 미군의 베트남 소녀 집단강간을 묘사한 미하엘 페어회벤 감독의 <오케이>를 둘러싼 논란으로 심사위원단이 사임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1979년에는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디어 헌터>의 베트콩 묘사를 문제삼아 사회주의 국가 참가자들이 대거 영화제를 이탈하기도 했다. 정치적 사건만 영화제를 뒤흔든 건 아니다. 1976년에는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왕국>이 음란물로 압수당하고 영화제 운영진이 고발당하는 소동도 있었다. 1989년에는 할리우드 영화 <레인맨>이 황금곰상을 수상하자 영화과 학생들과 영화인들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가장 정치적 영화제로 일컬어지지만, 칸·베니스와 달리 대중친화적인 대규모 축제로도 명성이 높다. 코로나19 이전엔 한해 400여 편의 영화를 선보이며 관객이 50만 명을 돌파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와 경기 불황을 지나며 영화제는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예산 축소 및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출품작 수도 대거 줄였다. 올해엔 상영작이 약 193편이다. 런던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지내는 등 영국을 주 무대로 활동해 온 미국 출신의 트리시아 터틀 신임 집행위원장이 위기를 기회로 바꿔놓을지 주목된다.
베를린을 상징하는 동물이자 마스코트는 바로 곰이다. 베어(Bear)라는 단어부터 베를린과 비슷한데, 실제로 도시 이름이 곰(독일어 Bär)에서 기원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다. 시의 문장과 깃발에도 곰이 있고, 실제 베를린 곳곳에 수많은 곰 이미지가 가득해 '곰의 도시'임을 실감케 한다. 그래서 베를린영화제의 최고상이 바로 황금곰상이다. 세계 3대 영화제 모두 도시를 상징하는 심볼을 최고상으로 삼았는데, 베니스는 그해 최고의 영화에 황금사자상을, 칸은 황금종려상을 선사한다.
한국영화는 김기덕 감독이 2012년 <피에타>로 베니스 황금사자상을, 봉준호 감독이 2019년 <기생충>으로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맛봤다. 그러나 베를린의 황금곰상은 아직이다.
하지만 베를린과 한국영화의 인연은 다른 둘보다 깊고 오래됐다. 세계 3대 영화제 중 한국영화와 가장 먼저 인연을 맺은 곳이 바로 베를린국제영화제다. 한국영화 최초의 국제영화제 출품이 베를린을 통해 이뤄졌다. 1956년 제7회 영화제에 출품된 이병일 감독의 <시집가는 날>이다. 한국영화제 최초의 국제영화상 수상작도 이 곳에서 나왔다. 1961년 제11회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특별상을 수상한 강대진 감독의 <마부>가 그 주인공이다. 이듬해에는 신상옥 감독의 <이 생명 다하도록>에 출연한 1950년생 배우 전영선이 아역상을 받았다.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옥희를 연기한 바로 그 배우다.
이후 수상 소식이 뜸하다가 1993년 장선우 감독이 <화엄경>으로 알프레드 바우어상을 거머쥐었다. 이어 김기덕 감독이 2004년 <사마리아>로 은곰상 감독상을 수상한 데 이어 박찬욱 감독이 2007년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로 알프레드 바우어상을 받았다. 박 감독은 2010년에는 동생 박찬경 감독과 공동 연출한 단편 <파란만장>으로 단편부문 황금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독일 영화 역사가이자 영화제 초대 집행위원장의 이름을 딴 알프레드 바우어 상은 8대 본상 가운데 하나였으나 그의 나치 정권 부역 경력이 드러나 2020년부터 폐지됐다.)
이후 베를린의 경쟁부문은 '칸의 남자'에서 '베를린의 남자'로 거듭난 홍상수 감독의 독무대나 다름없다. 2017년 배우 김민희가 홍 감독의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은곰상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2020년에는 홍상수 감독이 <도망친 여자>로 은곰상 각본상을 직접 수상했다. 수상 행진은 이후로도 이어져 2021년에는 <인트로덕션>이 은곰상 각본상을, 2022년에는 <소설가의 영화>가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경쟁 부문 이외에서도 여러 한국영화 수상작이 탄생했다. 관객들이 직접 상을 주는 '파노라마' 부문에선 이동하 감독의 <위캔즈>가 2016년 관객상의 기쁨을 맛봤다. '포럼'은 영화 매체에 대한 성찰-사회 예술적 담론에 무게를 두는 섹션인데, 2005년 이윤기 감독의 <여자, 정혜>가 넷팩상을, 같은 해 신재인 감독의 <신성일의 행방불명>이 베를리너 자이퉁 독자상을 받았다. 2009년 김소영 감독의 <나무 없는 산>(애큐메니컬상)과 이숙경 감독의 <어떤 개인 날>(넷팩상), 2012년 양영희 감독의 <가족의 나라>(국제예술영화관연맹(CICAE)상)도 수상했다.
성장영화를 소개하는 '제너레이션' 섹션은 14세 이상 관람 영화 부문인 14플러스 부문, 어린이도 관람 가능한 K플러스 부문이 있다. 2013년 신수원 감독의 <명왕성>이 14플러스 부문에서 특별언급된 데 이어 2019년 김보라 감독의 <벌새>가 이 부문 대상을 거머쥐었다. K플러스 부문에서는 2013년 김정인 감독의 <청이>가 대상을, 2014년 윤가은 감독의 <콩나물>이 어린이 심사위원단이 선정하는 수정곰상 단편영화상을 받았다.
단편 경쟁부문에서는 <파란만장>의 황금곰상에 이어 2011년 양효주 감독의 <부서진 밤>이 은곰상을, 2015년 나영길 감독 <호산나>가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살아있는 한국영화의 전설 임권택 감독은 2005년 공로상에 해당하는 명예 황금곰상을 받아들었다. 올해는 마틴 스콜세지가 수상자다.
그리고 올해, 74회를 맞은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수상자가 다시 쓰여졌다.
지난 2월 15일부터 25일까지 열린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선 줄어든 상영편수에도 불구하고 풍성한 한국영화 라인업이 돋보였다. 대중적인 화제작부터 작가주의 영화와 다큐까지 두루 베를린의 관객과 만났다.
이 가운데 한국영화로는 유일하게 경쟁부문에 초청된 홍상수 감독의 31번째 장편 <여행자의 필요>가 2등상에 해당하는 은곰상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그는 베를린영화제에서 부문별 작품상인 은곰상만 모두 5차례 수상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트로피를 받아든 홍상수 감독은 “심사위원단에 감사하다. 내 영화에서 무얼 봤는지 모르겠다. 궁금하다”는 소감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여행자의 필요>는 <다른 나라에서>, <클레어의 카메라>로 이미 홍 감독과 이미 두차례 협업했던 프랑스 연기파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주인공이다. 그는 한국에 머물며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막걸리를 마시는 여인 이리스로 분해 여행자의 관조적 시선을 드러냈다.
'뮤즈' 김민희 없이 영화제 일정을 소화한 홍상수 감독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과거에는 이유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려 했지만, 지금은 딱히 그렇다고 할 수 없다"며 "내 안에 있는 것들이 하루하루 표현된다. 캐릭터는 그 과정에서 그렇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이든 여배우의 외로움을 담아낸 이유에 대해 "잘 모르겠다. 그 감정이 나한테 온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무책임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도 내가 뭘 하는지 알 수 없다"고 답해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자신의 인장이나 다름없는 소주가 막걸리로 바뀐 '주종변경'에 대해서는 "내가 이제 나이가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소주를 마실 수 없다"는 답을 내놨다.
쌍천만 범죄액션 시리즈 <범죄도시>의 신작, <범죄도시4>는 한국영화 최초로 스페셜 갈라 부문에 초청됐다.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 작품을 소개하는 섹션인 만큼 세계에 통하는 주인공 마동석의 호쾌한 캐릭터, <범죄도시> 프랜차이즈의 힘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허명행 감독과 마동석, 김무열, 박지환, 이동휘가 직접 베를린으로 날아가 현지의 관객과 만났다.
<범죄도시> 시리즈가 세계 3대영화제에 초청된 것은 이번이 처음. 허명행 감독은 "세계적인 영화제인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받게 돼 영광이다. 베를린영화제를 시작으로 <범죄도시4>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을 대표하는 무술감독이기도 한 허 감독은 “무술감독 출신이라 액션 연출에 다소 부담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지만 배우들이 너무 잘 소화해 주셨다”며 특히 ‘마석도’와 ‘백창기’의 액션 케미스트리가 완벽하다”며 마동석과 김무열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장재현 감독의 <파묘>도 국내 개봉에 앞서 포럼 부문에 초청돼 베를린에서 월드프리미어를 가졌다. 거액의 돈을 받고 묘를 이장한 풍수사, 장의사, 무속인에게 벌어지는 섬뜩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다. 세번째 오컬트 영화로 베를린을 찾은 장재현 감독은 "저는 유령이나 귀신에 관심이 없으나, 사람을 너무 사랑하기에 이것들이 존재했으면 좋겠다. 보이지는 않지만, 영혼이 있다는 것이 우리를 기계와 다르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나 역시 여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 같다"고 장르에 대한 애정을 밝혔다.
귀국한 장 감독은 "외국 분들이 자기네는 오컬트 장르가 아예 없다고 하더라"며 "이런 류 장르가 없으니 기본적으로 미스터리 영화, 미스터리 포 오컬트라고 표현하더라. K오컬트가 몇 개 없어 그런 것 같다"며 "베를린의 기자분이 제 작품을 다 봤다면서 '그로테스크한 신비로움'이라고 표현하더라. 저도 그런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동아시아적 그로테스크한 신비로움에 몰두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고 소회를 털어놨다.
이밖에 제너레이션 K플러스 부문에는 김혜영 감독의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가 초청돼 감독과 배우 이레, 진서연, 정수빈이 베를린의 레드카펫에 올랐다. 뜨거운 호평을 얻은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는 수정곰상을 품에 안았다. 또 박수남·박마의 모녀 감독이 연출한 한일 공동제작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포럼 스페셜 부문에 초청됐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원폭 피해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꾸준히 베를린영화제와 인연을 맺었던 정유미 감독의 신작 <서클>은 단편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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