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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via

관객들을 현혹 시킨 <파묘>가 탄생하기까지
영화 <파묘> 트리비아

이은지(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사진
(주)쇼박스

영화 <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작품이다. 단편영화 <12번째 보조사제>를 통해 연출력을 인정받은 장재현 감독이 이를 토대로 만든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에 이어 세 번째로 연출한 장편영화로 이를 ‘장재현 감독의 오컬트 3부작’이라고 부른다. 풍수지리와 무당, 장의사 등 우리에게 익숙한 사상과 인물들에 익숙하지 않은 ‘험한 것’을 결합시켜 관객들을 현혹한 장재현 감독은 <파묘>를 통해 마이너한 장르로 여겨지던 오컬트로 흥행까지 성공하며 한국의 오컬트 장르를 새롭게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파묘>가 탄생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겪고, 영화 속에는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가 숨겨져 있는지, 장재현 감독을 직접 만나 들어봤다.

<파묘>
개봉일
2024.02.22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34분
감독
장재현
출연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 외
# 어린 시절 기억에서 출발한 <파묘>

시골에서 자란 장재현 감독은 어린 시절 100년이 넘은 무덤의 이장을 목격했다. 뒷산 풀밭에서 뛰어놀던 시절이었다. 당시 고속도로 개설로 인해 이장을 하는데 제사를 지내고 굿을 진행했고, 포크레인이 아닌 삽으로 땅을 파는 걸 본 기억이 생생했다. “오래된 관을 끈으로 묶어서 들어 올리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무섭기는 한데 궁금하기도 했다.” 장재현 감독은 당시의 기분과 느낌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출발은 음흉한 공포영화였는데 코로나19가 시작됐고, 생각이 달라졌다. “극장에서 제대로 느낄 수 있는 화끈한 영화를 만들자!” 결국 <파묘>는 어두운 공포영화에서 관객들이 극장에서만 즐길 수 있는 요소가 잔뜩 들어있는 오컬트 무비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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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본 산소탈

영화 <파묘>는 기이한 병이 3대째 대물림되고 있는 어느 집안사람 박지용(김재철)이 갓 태어난 자식만큼은 지켜내기 위해 무당 화림(김고은)을 자신이 살고 있는 미국까지 불러들이면서 시작된다. 화림은 집안을 둘러보면서 이들이 겪는 기이한 현상이 ‘산소탈’임을 직감한다. 산소탈이란 산소를 쓴 묘지에 문제가 발생해 자손에게 여러 가지 피해를 주는 것을 말한다. 장재현 감독은 영화의 시작이기도 한 산소탈을 직접 목격했다고.

장재현 감독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장례지도사 자격증에 도전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과정으로 이장 현장에 실습을 나갔는데, 그곳에서 산소탈을 목격했다. 사연은 이랬다. 이장을 앞둔 한 상주가 뇌졸중이 왔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산소탈이 의심됐다. 결국, 가족들은 이장을 서둘렀고, 무덤을 파 보니 근처에서 수로 공사를 하느라 물이 들어왔던 것이다. 현장에서 곧바로 화장이 진행됐다.

# <파묘>에 일제 강점기 이야기가 들어온 이유

산소탈을 겪은 사람들이 부슬비가 내리는 현장에서 천막을 치고 토치로 화장을 하는 모습을 본 장재현 감독은 이렇게 생각했다. “파묘란 잘못된 과거를 꺼내 없애는 일이구나.” 바로 <파묘>에 일제 강점기 이야기가 들어온 이유이기도 했다. 이 영화의 시대 자체가 일제 강점기가 아닌 까닭은 그 시대가 지금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표면적인 것에 더해 안으로 파고 들어가 우리나라의 어떤 두려움과 같은 것들을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단다.

# 김고은의 대살굿

<파묘>에서 가장 큰 볼거리이자 백미는 화림의 대살굿이다. 기존 한국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굿 장면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곡성>에서 황정민이 연기한 장면이었겠지만, <파묘> 개봉 후 의견이 분분해진 것은 분명하다. 장재현 감독은 이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를 해줬다. “<곡성>에 나오는 굿은 공격수 굿이고, <파묘> 속 굿은 수비수 굿이다. 되게 착한 굿이라 할 수 있다. <곡성>은 밤에 진행하고, <파묘>는 낮에 진행한다. 에너지가 확실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공격과 수비에서 오는 에너지 차이도 분명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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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재현 감독이 CG를 최소화하는 이유

<파묘>는 CG(컴퓨터 그래픽)를 최소화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호평을 받는 대살굿 장면 역시 CG와 대역을 최소화했다. 이에 대해 장재현 감독은 현실 판타지에서 CG를 많이 사용하면 “발이 뜬다”고 표현했다. 현실에 있을 법하지만, 목격한 사람은 많지 않은, 현실에서 일어나면 안 될 것 같은 이야기 속에서 CG가 등장하는 순간 현실에서 빠져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다른 이유는 배우들이 연기를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한 것이다. 최대한 현실을 보여주고 그것을 본 배우들의 연기를 카메라에 담는 것이 좋다고 했다. 여담으로 영화 후반에 등장하는 도깨비불 역시 실제 불과 CG가 섞인 장면이고, 배우들은 그 불이 추운 날 따뜻한 온기를 줘서 좋았다고.

CG를 최소화해서 대역이 필요한 경우도 있었다. 바로 김고은의 대살굿 신이었다. 해당 장면은 CG를 최소화하면서도 스펙터클한 굿판을 담기 위해 카메라 4대를 놓고 촬영을 진행했다. 김고은은 굿 장면을 위해 사전에 리허설을 진행하고 대살굿을 배우는 등 큰 노력을 했지만, 대역을 피할 순 없었다. 바로 통 돼지에게 칼질하는 장면이었다. 돼지에 칼질을 하면서 자칫 잘못하면 손을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라 불가피하게 손 대역을 써야 했다. 이 역시 CG를 활용했다면 대역을 필요 없었겠지만, 대역보다는 CG를 최소화하겠다는 감독의 신념이 담긴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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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민과 김고은

박정민은 장재현 감독의 전작인 <사바하>에 출연한 바 있다. 그리고 박정민과 김고은은 이준익 감독의 <변산>에서 상대역으로 호흡을 맞췄다. 이런 인연을 빌미로 장재현 감독이 <파묘>에 김고은을 섭외하기까지 박정민의 도움을 거쳤다. 장 감독이 김고은을 섭외하고 싶은 이유는 명확했다. “우리나라에 그 나이대에 그 정도 경력을 가진 배우는 없다”는 것. 이유가 명확한 만큼 대안은 없었다. <사바하> VIP 시사회에서 마주한 김고은에게 반한 뒤 <파묘>를 준비하면서 김고은에 대한 갈망은 깊어졌다. 대안이 없기에 박정민에게 부탁을 하면서까지 조심스럽게 시나리오를 건넸다. 참고로 김고은의 종교는 개신교로 무속인 역할을 거절할까 봐 걱정됐다고.

# <파묘>의 명배우, 박지용의 아들 도겸

<파묘>에는 다양한 명배우들이 등장한다. 최민식, 유해진 등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들이다. 하지만 정작 장재현 감독이 꼽은 명배우는 따로 있었다. 바로 극 중 의뢰인 박지용의 갓난쟁이 아들이다. 최근 들어 CG로 캐릭터까지 만드는 경우가 많아져 이 역시 실제 아기가 아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이는 실제 아기였다. 10개월 정도 된 혼혈 아기 이름은 도겸. 부모님의 철저한 케어 속에서 스트레스 없이 촬영을 잘 마쳤다. 영화의 설정으로 우는 장면이 많았는데 울기 시작하면 촬영이 시작됐다. 놀랍게도 ‘컷’을 외치면 울음을 그칠 정도로 명연기를 펼쳤고, 웃음이 필요한 장면에서는 곰 인형이 함께했다. 몇 컷 안 되는 신이었지만 3일에 걸쳐 촬영을 진행했다는 비하인드도 들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