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②

이 세상 잘 놀다 가자는 마음

<삼춘, 어디 감수광?> 양윤호 감독

2026-11-02

글 _ 라제기(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
사진 _ 이승재(한경매거진앤북 기자),
팝엔터테인먼트

  • 16년 만의 장편 복귀, 양윤호 감독이 떠난 특별한 전국 버스킹 여행

  • 극과 현실 넘나드는 세 사람의 여정… 절망 속에서도 꿈을 놓지 않는 삶

  • 데뷔 30년, 후배 위한 유연함·영화인 교육 강조

제주어로 노래하는 가수가 있다. 활동 범위가 좁을 수밖에 없다. 제주도가 주 무대다. 본인을 삼류라 생각하는 제주 출신 감독이 이 가수와 전국 유람에 나선다. 전국 버스킹이라는 가수의 평생 꿈을 이뤄 주기 위해서다. 연기를 평생의 업으로 생각하나 이룬 것보다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 많다고 자조하는 배우가 동행한다. 셋은 제주에서 출발해 순천과 목포를 거쳐 부산과 양산으로 향하고, 서울을 지나 휴전선 앞까지 간다. 심청을 찾아 나선 심봉사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영화를 촬영한다는 ‘핑계’가 끼어든다.

영화는 극과 다큐멘터리 사이 어느 곳에 있다. 각본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고 인물들이 움직이나 버스킹 장면처럼 실제가 장면을 구성하기도 한다. 인물 대부분이 실명으로 등장하고, 어느 대목에서는 인물들의 실제 감정이 반영되기도 한다. ‘삼인조’의 남다른 여행은 처음에는 낯서나 여정이 깊어질수록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잘나가지 못하는 세 사람처럼 누구나 심청이라는 꿈을 찾아 오늘도 기대와 한탄 속에서 하루를 보내므로.

제주어 가수, 제주 출신 감독, 무명 배우가 뭉쳐 전국 버스킹 유람을 떠나는 <삼춘, 어디 감수광?>

오는 11월 11일 개봉을 앞둔 영화 <삼춘, 어디 감수광?>은 양윤호 감독의 신작이다. 그가 <아이리스 더 무비>(2010) 이후 16년 만에 내놓는 장편영화로, 장편 데뷔작 <유리>(1996) 이후 내놓은 11번째 장편영화이기도 하다. 의도치 않게 데뷔 30주년작(개봉 기준)이 된 <삼춘, 어디 감수광?>에서 양윤호 감독은 연출과 더불어 삼류 감독을 연기했다. 제주어 가수는 제주도에서 활동 중인 가수 양정원이 본인 이름으로 출연한다. 무명 배우 미정은 이태리가 맡았다.

양윤호 감독은 제작 현장 밖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꾸준히 내 왔다. 동국대학교 예술대학장으로 후학을 양성해 온 한편 한국영화감독협회 이사장을 거쳐 한국영화인협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동시에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이기도 하다. 연출자로서 교육자로서 영화 행정가로서 두루 활동 중인 그를 만나 새 영화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한국영화의 현재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연출자, 교육자, 영화 행정가 등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는 양윤호 감독이 16년 만에 장편영화 <삼춘, 어디 감수광?>으로 현장에 돌아왔다.

Q <삼춘, 어디 감수광?>은 어떤 계기로 만들게 됐는지 자세히 설명해 달라.

첫 영화 <유리>로 1995년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됐다. 당시 한국영화로는 세 번째 칸영화제 초청이었다. 그때 심사위원들이 한국영화를 처음 볼 정도로 한국영화는 낯선 존재였다. 나는 당시 ‘칸이 얼마나 대단한 곳이길래’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많이 봤다. 그때 (칸에 오기 위해서는) 재능보다는 자기 이야기를 자본에 구애받지 않고 어떻게 하냐가 중요하다고 느꼈다. 만약 내가 다시 칸에 온다면 저예산 독립영화로 와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 한 중년 남자가 딸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시간이 흘러 2019년인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송혜희 씨의 아버지 송길용 씨를 우연히 마주쳤다. 곳곳에 플래카드를 붙이고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전국을 다니시다 돌아가신 분이다. 한쪽 눈이 실명 위기에 있던 그분을 보고서 이 영화를 더 늦기 전에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2025년 1월 방학을 활용해 21일 동안 촬영했다.

Q 중년 남자가 딸을 찾는 이야기라고 했는데, 가수 양정원은 어떻게 주인공이 된 건가.

전국을 다녀야 하는 인물이니까 트럭 배달하는 이로 할까, 각설이로 해 볼까 고민을 했다. 그러다 10년 전쯤 행사로 만나 친해진 양정원을 떠올리게 됐다. 그의 꿈이 전국 버스킹이었다. (양)정원이는 장애인이라 전국 버스킹을 혼자 하기 버겁다. 몇 년 전 백혈병으로 골수이식을 하기도 했다. 정원이가 당장 전국 버스킹 장면을 안 찍으면 영영 못 찍겠더라. 제주어로 노래한다는 점이 제주가 고향인 내게 중요하기도 했다. 정원이를 주인공으로 정하면서 나머지는 쉽게 풀렸다.

Q 뺑덕어멈을 연기한 배우 이태리는 제주 출신이 아닌데 어떤 인연으로 캐스팅된 건가.

내 제자다. 원래 배우 겸 가수였다. 드라마 출연을 많이 했는데 일이 생각만큼 풀리지 않으니까 영화 공부하러 동국대 대학원 들어왔다. 내가 석사와 박사 과정 지도교수다.

양윤호 감독은 가수 양정원, 배우 이태리와 함께 한 중년 남자가 딸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 냈다

Q 형식이 독특하다. 버스킹을 하는 과정에 심봉사가 심청을 만나러 가는 모습이 들어간다.

양정원이 제주어로 전국 버스킹하는 것만으로 100분가량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이 됐다. 대중영화를 해 본 사람으로서 관객이 제주어 노래를 알아들을 수 있을까도 고려해야 했다. 한반도 겨울 풍경을 담고 싶었는데 정원이에게 체력적으로 무리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고민 끝에 찾은 게 심청 이야기다. 심봉사와 뺑덕어멈도 심청을 찾아 한양을 가지 않나. 심봉사와 뺑덕어멈의 여정을 찍는 감독이 있고, 연기하는 배우들이 있으면 3인 동행이 이뤄지겠구나 생각했다. 그게 단독 버스킹보다 낫겠다 싶었다. 우리들끼리 ‘자기 반영성’이라는 말을 하는데 나와 정원이는 영화 속 인물에 자기 반영이 약 90% 정도 돼 있다. 이태리 배우는 워낙 오래 지켜봐서 내 나름 90%가량 반영해서 시나리오를 썼다. 그런데 본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서 출연을 고사하더라. 다른 배우로 하려고 오디션을 보기도 했는데, 애당초 그 친구를 염두에 두고 쓴 거라 소화가 안 되더라. 이태리에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고치고 출연하라고 했다. 결국 자신과 관련된 부분의 시나리오를 쓰고 미정이라는 이름으로 출연하게 됐다.

Q 실제 상황인 버스킹 장면들의 비중이 의외로 많지는 않다. 실제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목포에서는 버스킹 관객이 진짜 한 명도 없었다. 아무래도 겨울이니까. 제일 분위기가 좋았던 곳은 서울역이었다. 제주어 노래가 확실히 거리감이 있긴 하다. 흥은 있어도 가사를 전혀 모르니까. 정원이가 제주어로만 노래해서는 먹고살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가 제주어로 노래를 더 잘했으면 좋겠다. 정원이가 늦게 만나 결혼한 아내가 프랑스 여자인데 역시나 제주어로 노래하라고 한다. 영화 속에는 정원이의 노래 7곡이 들어 있다. OST를 그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Q 제작비는 얼마 정도인가.

많이 안 들었다. 마케팅 비용이 더 많이 들 상황이다. 내가 대학 단편영화 출신인데 당시에는 스태프가 8명이었다. <가변차선>(1992)과 <터미널 지하다방>(1992) 만들 때는 배우까지 포함하면 제작진이 총 30명은 됐다. 이번에는 스태프가 4명이었다. 촬영 1명, 조명 1명, 데이터 매니저 1명, 조감독 겸 프로듀서 겸 제작실장 1명이었다. 조명은 혼자서 야간 촬영까지 다 담당했고, 데이터 매니저는 편집에 스크립터 역할까지 했다. 고생은 당연히 많이 했으나 재미가 있었다. 내가 영화를 오래 해서 전국 맛집을 많이 아니, 여행하듯이 놀듯이 촬영을 했다.

<삼춘, 어디 감수광?>은 양정원의 실제 버스킹, 배우들의 심청 이야기 연기 등 여러 볼거리를 제공한다

Q 영화에서 심청은 각자의 꿈을 의미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불우하지만 끝내 희망을 잃지 않는다. 감독으로서 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나.

30여 년 전에는 ‘중년 남자가 딸을 못 찾으면 어떤 마음이 들까’라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장면에 그가 더 이상 할 것이 없어 춤을 춘다는 설정을 해 두기도 했다. 서른 살이었던 내가 보기에는 절망과 비관, 답답함이 담겨 있는 몸짓이리라 생각했다. 예순에 이르러 보니 삶을 절망과 희망이 섞여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게 올바른 자세 같더라. 하지만 영화를 찍으면서 정원이에게 동화가 많이 됐다. 그는 최근 3년 정도 저축해서 1천만 원을 모았다. 그런데 그걸로 노래를 만들겠다고 하더라. 정원이는 해병대 제대 후 가수 일이 조금 될 것 같다가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됐다. 겨우 노래를 다시 할 수 있게 되고 결혼까지 해 좀 살 만하니까 백혈병이 왔다. 참 지지리 복 없는 인생인데도 ‘이 세상 굉장히 어렵게 왔으니 안 놀다 가면 억울하지 않나, 그냥 잘 놀다 가자’고 생각한다. 그에게 동화되다 보니 엔딩이 그렇게 (희망적으로) 정리가 됐다.

Q 직접 연기한 영화 속 감독은 “명작 하나 아직 못 만들었다”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스스로는 지나온 연출 이력을 어떻게 평가하나.

그리 잘하지 못한 것 같다. 영화를 많이 연출했고, 할 때마다 새로운 걸 하겠다고 많이 시도했지만 말이다. 흔히 말하는 웰메이드 영역에서 가장 훌륭한 이들은 박찬욱, 봉준호 감독이다. 상업적 작가주의가 우리나라 영화계에는 가장 잘 맞는 것 같다. 20대 중반에 이장호 감독님 연출부로 일할 때 내가 질문을 했다. “감독님은 어떻게 흥행을 하면서 작품성까지 잘 조율하시냐”고. 감독님이 “한국 감독은 다 상업성과 작품성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팔자다. 한쪽으로 기울면 망할 수밖에 없어”라고 하셨는데 지금도 유효한 말씀 같다. 나는 그런 줄타기가 좀 서툰 편이었다. 차라리 어느 한쪽으로 가고 싶어 했다. 영리하지 못했다. 관객이 1천만 명 이상 든 영화는 없으나 시청률이 ‘1천만 영화급’이었던 드라마 <아이리스>(KBS, 2009)가 있으니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양윤호 감독은 중년 남자가 딸을 찾는 이야기를 통해 현실은 어렵지만 희망을 잃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Q ‘감독 양윤호’의 시작이 궁금하다. 영화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대학 가는 시점에 어머니 잔소리 때문에 경찰대학 시험을 봤다. 1차 합격하니 정말 이러다 경찰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진로를 고민하다가 산업이면서 예술인 영화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진학을 했다. 그 나이에 냉정하게 택한 게 영화이고 그 후 (영화에 대한 생각이) 바뀐 적이 없다. 어렸을 적 단체 관람한 <엄마 없는 하늘 아래>(1977) 같은 영화가 인상적이었다. 초등학생 때 시외버스를 혼자 1시간 타고 가 <로보트 태권 V>(1976)를 본 기억이 있기도 하다. 대학 입학 후에야 스승인 유현목 감독님의 <오발탄>(1961) 같은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Q 한국영화계의 선배 세대로서, 지금 영화계에 현실적인 조언을 한다면?

선배들은 선배대로, 후배들은 후배대로 어렵다. 영화진흥위원회 예산이 젊은 영화인 쪽으로 비교적 많이 가지만, 여전히 재정적으로 힘들어하는 젊은 세대들이 많다. 유럽에서는 감독들이 연출을 하다가 프로듀서도 하고 촬영도 한다. 우리도 그런 유연함을 잘 발휘해야 할 것 같다. 선배로서 후배들을 잘 인도해야 된다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나이 많은 영화인들은 (어려운 현실 타파에) 교육이 제일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영진위에서 각본이든, 기획이든, 촬영이든 교육 기회를 주면 수업을 정말 잘 듣는다. 새 경향과 변화를 알게 되면서 겸손해지고 자신감을 얻는 듯하다.

<삼춘, 어디 감수광?> 메인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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