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잔 바닥에 도달하는 시간
<낮과 밤은 서로에게>
2026-11-02
글 _ 이지혜(영화평론가)
사진 제공 _ 케이무비엔터테인먼트
하나의 카페, 저마다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스쳐 가는 대화와 사물들… 그 안에 담긴 관계와 시간의 의미
서로 다른 삶의 속도를 긍정하는 김종관 감독의 시선
손끝의 대화가 마음에 기착하기까지
카페의 한쪽에서 세 명의 여성이 수어로 대화를 나눈다. 손끝에서 피어난 말들이 표정과 몸짓으로 번져 가는 모습을 보며, 직원이 사장에게 저 소리 없는 대화가 제일 시끄럽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그들의 손짓에 자막을 내어 주지 않는다. 무슨 말인지 궁금해 손짓을 따라가던 관객의 시선이 어느새 말하는 사람의 얼굴에 가닿는다. 터져 나오는 웃음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을 통해 대화의 분위기를 짐작할 뿐이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넘쳐나는 이 공간에서, 관객은 오히려 그들의 고요한 이야기에서 쉬이 눈길을 거두지 못한다.
김종관 감독의 영화에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한 카페의 테이블을 거쳐 간 네 쌍의 인물을 담아 낸 <더 테이블>(2017)은 그 호흡만으로 관계의 이면을 들여다본 작품이다. 누군가 조심스레 입을 열 때 카메라는 가만히 듣고 있는 상대의 얼굴에 머물고, 대화가 오가는 사이 두 사람이 공유한 과거의 시간은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로 겹쳐진다.
이러한 시선은 <낮과 밤은 서로에게>에 이르러 한층 다채로워진다. 영화는 익숙한 카페로 돌아와 그 안에 공존하는 더 많은 사람의 시간을 펼쳐 놓는다. 지난밤의 꿈을 이야기하는 사람과 아득한 기억을 꺼내는 사람이 있고, 사랑을 시작하려는 이와 이별을 앞둔 이가 있다. 하나의 공간에 모인 인물들은 이렇듯 각자 다른 시간의 어디쯤에 앉아 있다. 카메라가 테이블 사이를 유유히 옮겨 다닐 때마다 방금까지 이어지던 대화는 잠시 멀어지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가까워진다. 관객은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싶어 하지만 어느 테이블에도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새로운 사정이 열리고, 조금 전까지 마주했던 사람들은 다시 카페의 풍경 속으로 자연스레 스며든다.
<더 테이블>이 마주 앉은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에서 관계의 결을 발견했다면, <낮과 밤은 서로에게>는 다른 사람의 대화를 듣고 바라보는 자리까지 그 관계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식이다. 특히 수어를 나누는 세 여성의 모습은 영화가 타인을 바라보도록 관객을 안내하는 방식을 잘 보여 준다. 섣부른 번역으로 타인의 세계를 침범하는 대신, 영화는 관객을 관찰자의 자리에 머물게 한다. 아무런 자막 없이 관객의 눈길을 붙잡아 두었던 이 장면은, 영화가 한참 흐른 뒤에야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차를 두고 당도하는 이해
카페의 손님들이 떠난 뒤, 수어를 하던 여성 중 한 명과 직원이 어두운 계단에서 만나 입을 맞춘다. 앞서 세 여성의 대화가 가장 시끄럽다고 농담했던 직원이 실은 수어를 이해하는 연인이었음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발화된 대사에는 변함이 없으나, 계단에서의 이 짧은 시퀀스는 첫 장면의 맥락을 완전히 뒤바꾼다. 그저 소리 없는 대화의 활기를 건조하게 묘사한 줄 알았던 농담이 연인의 몸짓을 묵묵히 좇고 있던 내밀한 애정의 언어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김종관 감독은 이 사실을 처음부터 공개하는 대신, 관객이 먼저 그들의 대화를 관찰하게 둔 뒤 후반부의 단서를 통해 앞선 풍경을 스스로 복기하게 만든다. 이렇듯 뒤늦은 정보가 지나온 시간을 다시 해석하게 만드는 서사적 지연이 <낮과 밤은 서로에게>의 핵심적인 화법이기도 하다.
이러한 영화의 구조를 명징하게 함축하는 사물은 바로 소설가 혜진(심은경)이 비워 낸 커피잔일 것이다. 혜진을 찾아온 감독 동남(이희준)은 그녀의 소설을 읽으며 타인을 깊이 이해하게 된 과정을 고백하고, 그 말을 듣던 혜진은 커피를 다 마신 뒤에야 잔 바닥에 그려진 작은 꽃을 발견한다. 혜진은 자신의 이야기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맛있게 차를 마시고 잔을 비웠을 때 비로소 바닥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이야기. 꽃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것을 인지하기까지는 한 잔의 커피를 마시는 고스란한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이 작은 사물은 김종관 감독이 서사를 다루는 방식 그 자체와도 같다. 수어를 나누던 연인의 애정은 처음부터 영화 속에 존재했지만, 관객에게 그 의미가 가닿는 데에는 긴 우회가 필요하다. 텅 빈 잔에서 발견한 꽃이 지나온 시간을 반추하게 하듯, 지연된 서사는 무심코 지나쳤던 평범한 농담 속에 실은 타인을 향한 깊은 시선이 담겨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한다.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난 뒤에야 처음의 풍경이 온전히 새로운 온도로 다가오는 것이다.


저마다의 시계가 품고 있는 기꺼운 우주
잔이 빌 때까지 기다려야만 꽃을 볼 수 있듯,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는 일에도 각자의 속도를 헤아리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시계 장인을 꿈꾸는 현오(주종혁)의 에피소드는 이처럼 사람마다 전혀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마음의 시차(時差)에 귀를 기울인다.
시계 안경을 끼고 작은 부품들을 들여다보는 현오의 손끝을 따라 카메라가 시계 내부로 들어가면, 태엽과 톱니바퀴가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세계가 펼쳐진다. 현오는 그 안을 바라보며 시계의 수만큼 서로 다른 우주가 존재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똑같은 30분을 공유하면서도 주식으로 돈을 번 친구와 시계를 들여다보는 현오의 내면에 전혀 다른 시간이 흘러가듯, 사람들은 같은 공간에 앉아 있어도 각자의 궤도와 속도에 따라 삶을 감각한다.
현오의 시계는 영화가 시간을 조직하는 방식과도 연결된다. 태엽과 톱니바퀴가 일정한 운동을 이어 가듯 카페의 대화 역시 저마다 시작되고 끝나지만, 영화가 관객에게 정보를 건네는 순서는 실제 사건이 발생한 순서와 다르다. 직원은 처음부터 수어를 이해하고 있었고 두 사람은 이미 연인이라는 사실 같은 것. 관객이 그것을 알게 되는 시점만 뒤로 미뤄져 있을 뿐이다. 이 작은 시간차 때문에 같은 대사는 다른 의미를 획득한다. 영화의 시간이 인물들이 살아가는 시간과 관객이 그들을 알아 가는 시간으로 나뉘고, 김종관 감독은 그 둘 사이의 어긋남을 이야기의 동력으로 삼는다. 시계가 같은 눈금을 반복해서 지나가더라도 그 눈금을 바라보는 사람이 달라지면 시간의 무게 또한 달라진다.
흥미로운 것은 현오가 말한 ‘작은 부품들의 우주’라는 은유가, 정작 메인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이 아닌 스쳐 지나가는 주변 인물들의 서사와도 호응한다는 점이다. 카페의 배경으로만 기능하는 줄 알았던 이들이 어두운 계단에서 자신들의 서사를 꺼내 놓을 때, 관객은 화면 밖의 인물들에게도 멈추지 않는 고유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음을 인지하게 된다. 영화는 이처럼 화면 중심에서 비껴난 조연들에게도 동등한 서사의 층위를 부여한다. 시선 바깥의 인물들에게까지 고유한 시계를 쥐여 주는 이 방식은, 영화 속 모든 인물이 저마다의 시차를 품고 있음을 짚어 낸다. 멈춰 버린 이모의 시계를 간직한 여자의 이야기나 매일 태엽을 감으며 짧게 스쳐 간 인연을 그리워했던 <더 테이블> 속 민호(전성우)의 고백 역시, 다르게 축적된 시차를 견디며 나의 우주를 넓혀 가는 과정일 것이다.


다음 계절에도 당신의 이야기를
과거의 시간을 짚어 내던 영화의 시선은 이제 관계의 끝을 마주한 연인들의 테이블로 향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별을 다루는 이 장면이 감정의 파국을 전시하는 대신, 관계의 끝자락에서도 여전히 서로 다른 속도로 엇갈리는 마음의 시차를 응시한다는 점이다. 기꺼이 미움의 대상이 되어 주겠다는 담담한 수용, 이별이 선택이 아닌 불가피한 결심이었다는 고백이 교차하는 가운데, 이들은 관계의 종료를 선언하면서도 먼 훗날 서로의 식당에 찾아가겠다는 헛헛한 약속을 나눈다. 물리적인 관계가 끝나는 자리에서도 기어코 서로의 ‘다음 계절’을 상상하고야 마는 이 장면은, 관계의 종료가 곧 타인에 대한 이해의 종료를 뜻하지 않음을 짚어 낸다.
이별을 앞둔 두 사람의 대화가 인상적인 이유는 서로의 마음을 명확한 결론으로 정리하려는 대신 말을 고쳐 가며 그 마음의 모양을 살피기 때문이다. ‘선택’이라는 표현이 ‘결심’으로 바뀌는 동안 인물은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을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게 설명하고자 노력한다. 상대는 그 말을 듣고 다시 응답한다. 김종관 감독의 대화 장면에서 중요한 순간은 종종 이렇게 말이 잠시 멈추거나 다른 표현을 찾아가는 사이에 생겨난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그가 처음 꺼낸 문장만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라, 그 문장 뒤에 이어지는 망설임과 수정의 시간까지 함께 지나는 일이다. 이별의 대화가 먼 훗날의 식사 약속으로 이어질 수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두 사람은 상대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을 유보한 채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서로에게 남겨 둔다.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며 말을 고르고 다시 듣는 이 짧은 대화에는 김종관 감독이 꾸준히 그려 온 인간관계의 모습이 담겨 있다. 상대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동남이 혜진의 소설을 두고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라서 좋다”라고 고백했듯, <낮과 밤은 서로에게> 또한 타인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고치려 들지 않는다. 상대를 내 뜻대로 구원하려 애쓰는 대신, 서로 다르게 흘러가는 마음의 속도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 헤어지는 연인들이 주고받는 “늙어서 봐도 재밌겠다”는 농담처럼, 김종관 감독의 카메라는 타인의 궤적이 어디로 향하든 기꺼이 그다음의 이야기를 기다려 주겠다는 태도로 그곳에 머문다. 그리하여 관객 각자가 통과해 온 시간의 두께에 따라 스크린 속의 엇갈림이 매번 다르게 감각되는 경험. 함부로 마침표를 찍는 대신 인물들의 남은 궤적을 열어 두는 이 여백이야말로, 영화가 타인의 시간을 감각하게 만드는 힘이다.
<낮과 밤은 서로에게> 메인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