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한국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시상식 현장
(제공=영화진흥위원회)
오직 이야기만으로 얻는 기회
2026년 한국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2026-07-27
글 _ 박경희(한경매거진앤북 기자)
올해 한국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1천225편 접수… 전년 대비 약 27% 증가
대상은 김완 작가의 심리스릴러 <우리 아이>… 수상작 14편, 소재와 장르 다변화
‘성장지원 프로그램’으로 시나리오 다듬기부터 제작사 연결까지 지원
8월 26일 개봉하는 김미조 감독의 <경주기행>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2021년 한국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3등 수상작이다. 당시 심사위원들로부터 “소시민의 마지막 절규로 이어지는 뭉클한 정서와 깊은 여운을 남긴다”는 평을 받았고, 이 작품은 수상 5년 만인 오는 8월 26일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경주기행> 외에도 2019년 하반기 대상 <드림팰리스>(2023년 개봉), 2020년 하반기 장려상 <백수아파트>(2025년 개봉), 2022년 4등 <수연의 선율>(2025년 개봉, 원제 ‘워터드롭’), 2023년 4등 <허들>(2025년 개봉) 등이 스크린에서 결실을 맺었다.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하는 데 집중한 한국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은 올해도 신인 작가들의 참신한 작품들로 가득했다. 지난 6월 25일 기획개발 전문역량강화 지원센터 ‘씬원(S#1)’(이하 씬원)에서 열린 2026년 한국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시상식은 한국영화 창작계의 식지 않은 열기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전년 대비 크게 늘어난 출품작 수는 영화계 안팎의 위기론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창작자들의 의지와 그들이 놓인 자리를 함께 보여준다. 이번 공모전을 통해 발굴된 14편의 원석들과 앞으로 이들이 거쳐야 할 과정을 알아본다.
1천225편이 말해주는 것
영진위가 주최하는 한국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은 역량 있는 신인 작가를 발굴·양성하고 한국영화의 기초 기획 역량을 튼튼히 다지기 위해 마련된 순수 창작 극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이다. 그 뿌리는 깊다. 1977년부터 2010년까지 이어져 온 이 사업은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시나리오마켓 공모전’으로 운영되며 신인과 기성 작가 구분 없이 응모를 받아 월 추천작과 반기 우수작, 우수 시나리오 멘토링 등을 선정했다. 2019년부터는 다시 신인 작가 발굴에 초점을 맞추고, 수상작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개편됐다.
영진위는 신인 작가 발굴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한층 강화하기 위해 자격 요건을 지속적으로 세밀하게 다듬어왔다. 김미조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쓴 첫 장편 연출작 <갈매기>로 2020년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대상을 받은 이듬해, 공모전에 자유롭게 지원해 <경주기행>이 발굴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신인 작가 전용’으로 규정이 강화됐다. 2025년 ‘각본 크레디트 보유자’의 지원을 제한한 데 이어 2026년에는 ‘각색 크레디트 보유자’도 접수할 수 없도록 공모전의 문턱을 높였다(단, ‘윤색 크레디트’만 보유한 경우는 지원 가능). 영진위 영화산업지원팀의 강지은 담당자는 “공모전이 신인 작가의 주요 등용문으로 기능하고 있는 만큼, 신인 작가에게 조금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등용문의 기준이 더욱 엄격해졌지만, 신인 작가들의 열정은 계속 타올랐다. 지난 2월 25일부터 3월 11일까지 진행된 올해 공모전에 전년(963편) 대비 약 27% 증가한 총 1천225편이 접수됐다. 영진위는 이 수치를 창작 열기의 지표로만 읽지 않는다. 강지은 담당자는 “공모전이 신인 창작자들에게 작품을 공식적으로 검증받고 실제 영화계와 연결될 수 있는 가장 신뢰할 만한 기회로 인식되면서 참여가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면서도 “과거 시장이 호황일 때 활발히 운영되던 민간기업의 자체 공모전이 투자 위축의 여파로 폐지되거나 축소되면서 신인 작가들이 기회를 잡을 선택지가 좁아진 현상도 접수 편수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늘어난 숫자의 이면에 등용문 자체가 줄어든 현실이 겹쳐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순수 창작 극영화 시나리오에 대한 도전이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접수작의 결도 한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강지은 담당자는 “올해 접수된 1천225편은 스릴러, 드라마, 판타지, 시대극 등 특정 장르에 편중되지 않았다”며 “예년에 비해 영화화 가능성을 고려한 완성도 높은 서사 구조를 갖춘 작품이 늘어난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도전의 동력이 어디에서 오는지는 1천225편 가운데 <우리 아이>로 대상을 거머쥔 김완 작가의 말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한국영화뿐만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위기라고 진단하면서도, 계속 영화를 꿈꾸는 이유를 “영화만이 표현할 수 있는 수만 가지의 이야기”에서 찾는다. “어렸을 적 어두운 공간에서 수많은 낯선 사람들과 하나의 감정을 느끼며 바라본 스크린. 그 경험을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계속 느끼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동력이 하나둘 모인 이야기들을 두고 심사위원단은 “영화계 현실을 고려할 때 지금의 제작·투자 환경이 수용할 수 있을지 숙고하는 한편, 앞으로 더 나은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의 다양성과 영화화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했다”며 최종 14편을 선정했다. 수상 작가들에게는 대상 3천만 원, 최우수상 2천만 원, 우수상 1천만 원, 장려상 750만 원 등 총 1억 250만 원의 상금이 수여됐다.
장르를 가로지른 14편의 원석
올해 수상작들의 전반적인 경향은 ‘소재와 장르의 다변화’다. 심사위원단은 심사평을 통해 “판타지부터 실록에 가까운 드라마까지,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의 경계를 허무는 다양성이 반가웠다”고 밝혔다. 다만 “장르의 관습을 완전히 부수거나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패기 만만한 작품을 만나기 어려웠던 점은 다소 아쉽다”며 신인 작가들을 향해 과감함을 주문하기도 했다.
대상 수상작인 김완 작가의 심리스릴러 <우리 아이>는 ‘반사회적 인격을 가진 엄마’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다뤄 “흥미로운 소재로 캐릭터가 살아 있고, 매력적인 반전으로 재미를 주는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우리 아이>는 시골 마을에서 남편과 열 살 아들과 평범하게 살아가는 엄마 보영의 이야기다. 보영은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이지만 스스로 감추고 있는 본성이 하나 있고, 아이를 지키는 과정에서 그 본성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우리 아이>의 출발점에는 ‘모성은 본능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만약 본능이라면 공감 능력이 결여된 사람에게도 그 본능이 작동하는가.’ 김완 작가는 이 질문을 따라가다 반사회적 인격을 가진 엄마라는 설정에 도달했다. 그는 “모성을 다른 각도에서 들여다보고 싶었다”며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이도 아이를 지킬 수 있는가,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반사회적 엄마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아이를 지키려는 엄마의 기이한 모성에서 오는 ‘양육의 긴장감’을 형성하고, 결과적으로 인물의 내면을 파고드는 심리스릴러의 형태로 완성된다.
김완 작가는 2022년부터 매년 빠짐없이 한국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의 문을 두드려왔고, 올해 마침내 그 문을 열었다. 신인 작가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기회’라고 말하는 그에게, 이 공모전은 “이력이나 인맥이 아니라 시나리오 한 편의 완성도만으로 문을 열어주는 곳”이었다.
최우수상을 받은 최정우 작가의 <편찬관>은 역사적 사건과 픽션을 적절히 섞어 극적 흥미를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수상 <연극이 끝나고 난 뒤>(김소연)는 노인 간병 문제를 사실적이고 깊이 있게 다뤄 슬픔과 감동을 동시에 안겼고, 장려상 <토끼굴>(김승연)은 지루할 틈 없는 속도감과 반전 시퀀스, 여운을 남기는 새드엔딩으로 주목받았다.
10편의 입선작들 역시 다양한 결을 보여준다. 아픈 대한민국 현대사를 잘 발굴해 극적인 긴장감을 더한 <울릉도 1974>,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요한 한순간을 소재로 관련 인물들의 캐릭터를 살아 있는 듯 묘사한 <여공들>, 조선 시대 태종 때 사관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펼친 <기록자들: 왕이 두려워한 기록>은 역사적 배경에 묵직한 드라마를 결합한 수작들이다. 유괴범 엄마와 친모의 설정으로 여성들의 연대를 그린 <간 값>,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과정을 다룬 <지키지 못한 약속>은 시의성 짙은 메시지로 다양성에 기여했다.
이 밖에도 60대 아버지와 젊은 의사가 대한민국을 구한다는 콘셉트의 액션 <흑사>, 남파간첩 소재를 비튼 <보라매는 하강한다>, 뇌를 조정해 처벌과 교화를 한다는 흥미로운 설정의 <테이블 데스(TABLE DEATH)>, 주인공이 자신에게 찍힌 낙인을 극복하는 장르물 <낙인>, 현실과 소설 속 혼동의 발단과 결말까지의 심리묘사를 적절히 한 <죠의 이야기> 등이 고른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텍스트가 이미지로 관객에 닿기까지
수상은 끝이 아닌 본격적인 출발점이다. 영진위는 우수 시나리오들이 사장되지 않고 실제 영화로 제작될 수 있도록 수상 작가 전원을 ‘성장지원 프로그램’으로 연계한다. 시나리오를 다듬는 씬원의 ‘랩(Lab)’과 완성된 시나리오를 산업계에 선보이는 ‘비즈매칭’이 프로그램의 두 축이다.
씬원 랩은 영진위 기획개발지원 선정작과 한국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수상작을 대상으로 작가와 작품의 개발 역량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이다. 그 중심에 있는 ‘시나리오 닥터링’은 프로듀서·작가·감독 등 현업 전문가와 수상 작가가 일대일로 만나는 멘토링으로, 7월부터 9월까지 매월 1회, 총 3회 진행된다. 올해 수상 작가 전원은 7월 초 매칭을 완료하고 1회차 시나리오 닥터링에 돌입했다.
매칭에 앞서 씬원은 수요조사로 수상작의 장르와 레퍼런스 작품, 작가가 원하는 멘토 직군을 파악한다. 씬원 랩을 담당하는 여미정 프로듀서는 “레퍼런스 작품이 특정 한국영화이고 작가가 프로듀서 직군을 원하면, 가급적 그 레퍼런스 작품을 만든 프로듀서를 매칭한다”며 “신인 작가 대상 공모전이라 영화계와 네트워크가 닿지 않은 작가가 많은데, 시나리오 닥터링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동시에 전문가와의 만남을 통해 영화계와 직접적인 네트워크를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최종 목표는 “영화화 가능한 시나리오, 즉 비즈매칭 행사에서 제작사에 보여줄 만한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것”이다.
3개월간 담금질을 거친 수상작들은 ‘씬원 비즈위크’ 무대에 선다. 씬원 비즈위크는 올해 총 5회 열리며, 한국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수상 작가들은 씬원 시나리오 아카데미 8기 작가들과 함께 10월 22일 열리는 네 번째 비즈위크에 참여한다. 온라인 사전 신청으로 확정된 시간표에 따라 작가와 업계 관계자가 개별 미팅 테이블에서 피칭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운영되며, 현장 신청을 통한 추가 매칭도 이뤄진다. 이들이 만날 업계 관계자의 풀도 두텁다. 씬원 홈페이지에 등록된 비즈회원은 약 400명으로, CJ ENM, 쇼박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NEW 같은 투자배급사부터 스튜디오앤뉴, 케이티스튜디오지니, 퍼스트맨스튜디오, 영화사레드피터 등 유수의 제작사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씬원은 피칭 자료집 구성과 설득의 기술, 저작권·계약서를 다루는 ‘원포인트 레슨’부터 인더스트리 네트워킹, 창작자 PR, 법률 자문 서비스까지 지원하며 시나리오 닥터링과 비즈위크 사이를 메운다. 특히 씬원은 수상작의 저작권을 작가가 온전히 소유하는 공모전 구조에서 영화계 정보와 경험이 부족한 신인 작가를 보호하는 ‘에이전시’ 기능을 한다. 씬원 에이전시를 담당하는 문성주 프로듀서는 “다양한 형태, 다수의 작품 계약을 경험한 씬원 운영진이 계약 검토와 자문을 진행하고, 불공정 관행에 대해서는 교육과 상담으로 사전에 대비하며 문제가 발생하면 법적 대응을 안내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시나리오를 다듬고, 산업과 연결하고, 계약을 지켜주는 과정은 실제 결실로 이어지고 있다. 문성주 프로듀서는 “다수의 수상작이 비즈매칭과 수시 매칭을 통해 작품 계약을 맺었고, 계약 후 각색을 거쳐 제작 준비 중인 작품도 여럿”이라며 그중 하나로 “2021년 한국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수상작인 김혜란 작가의 <점례는 나의 빛>은 개봉을 앞두고 있다”고 전했다. 수상을 계기로 산업에 진입한 작가들의 활약도 이어진다. 2019년 수상자 김수인 작가는 <옥수역 귀신>(2023), 2020년 수상자 김동완 작가는 <파과>(2025)의 각색에 참여했다.
올해 씬원이 처음 기획한 ‘홈커밍 비즈데이’는 2019년부터 2025년까지 한국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씬원 시나리오 아카데미 등을 거쳐 간 작가들의 신규 작품을 다시 산업계에 소개하는 자리였다. 한 번의 수상이 일회성 인연으로 끝나지 않게 하겠다는 취지다. 영진위는 이 연결 구조를 더 다듬을 계획이다. 강지은 담당자는 “신인 작가 유입 확대를 위해 시상금의 상징성을 강화하되 수상작이 개발·제작 단계로 이어질 수 있도록 후속지원 체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하고 있다”며 “씬원의 성장지원 프로그램과 연계한 제작사 매칭, 멘토링, 후속 개발지원 등 지원체계를 보완해 소수 작품에 대한 집중 지원과 등용문 기능을 함께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성장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김완 작가의 기대는 크다. 지금까지 혼자 쓰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현장 경험이 있는 분들의 시선으로 시나리오를 한 번 더 점검받을 수 있다면 더 단단한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실제 투자와 제작이 이루어지는 경험까지 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 공모전을 거쳐 스크린에 도착한 작품들이 그랬듯, 올해 발굴된 14편의 원석들도 극장에서 관객과 만나 저마다의 빛을 증명하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