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함의 끝?
더 할 수 있다
<호프> 이후경 미술감독
2026-07-27
글 _ 김혜선(웹진 한국영화 편집장)
사진 _ 서범세(한경매거진앤북 기자),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무분별한 파괴가 아니다”… 외계인이 휩쓴 80년대 읍내를 설계한 이후경 미술감독
마을 건물의 85%를 직접 고치고 부쉈다… 아날로그 세팅으로 살려낸 파괴 디테일
“할리우드 문법과 다르게”… 나홍진 감독의 치열함과 맞붙어 빚어낸 한국형 SF의 진화
2003년 <살인의 추억> 미술팀, 세트팀과 <올드보이> 세트팀을 거치며 영화미술에 발을 들인 이후경 미술감독은 이른바 ‘한국영화 프로덕션 디자이너’ 2세대다. <터널>(2016), <군함도>(2017), <비공식작전>(2023), <밀수>(2023), <휴민트>처럼 굵직한 한국영화에서 시대적 배경을 기막히게 되살리고 체험하게 하는 프로덕션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리고 나홍진 감독과 <황해>(2010), <곡성>(2016)을 함께 했던 그의 경로는 2026년 여름 한국영화 최고 화제작 <호프>에 이르렀다. 괴수 SF 액션 스릴러라 할 <호프>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DMZ 인근 가상의 호포항 마을을 배경으로 오히려 어떤 과거에 시간이 멈춘 듯 ‘기묘한 리얼리티’를 자랑한다. 특히 영화가 시작하고 50분가량 이어지는 호포항 마을 읍내의 초토화된 이미지는 놀랍고 충격적이다. 가장 한국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박력 넘치는 액션의 질주는 나홍진 감독의 연출, 홍경표 촬영감독의 카메라와 탁월하게 밀착한 ‘프로덕션 디자인의 승리’라고 해도 좋겠다. 이후경 미술감독에게 리얼한 충격과 공포로 관객을 낚은 ‘파괴의 디테일’을 물었다.
Q 비무장지대 마을에 외계인이 등장하는 이야기라는 나홍진 감독의 구상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을 했나?
시놉시스를 처음 받은 게 5~6년 전이다. 그때는 배경이 외국의 고립된 마을이었다. 배경이 한국으로 바뀌면서 한국적인 설정 안에서 이야기가 맞춰지고 DMZ 인근의 어느 곳이 되었다. 나홍진 감독의 얘기를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뭐, 할 수 있지 않을까?’였다.(웃음) 재미있을 것 같았다.
Q <호프>는 종족 간의 입장 차이, 인간의 무지함이 몰고 온 거대한 비극을 담은 클래식한 액션영화이자 괴수 SF영화다. 감독의 야망 가득한 이야기를 프로덕션 디자이너로서 어떻게 해석했나?
영화 내내 파괴된 모습들이 나온다. 여러모로 파괴의 의미를 찾아보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파괴된 도시의 잔상들을 조사할 때 지진에 의한 파괴인가, 전쟁에 의한 파괴인가를 들여다봤다. 그러다가 결국 파괴 행위의 주체가 누구인가, 파괴의 동기와 목적이 무엇이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외계인들이 저지르는 파괴는 종족인 어린 왕자를 찾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처음부터 파괴를 목적으로 호포항에 오지는 않았을 거다. 읍내에 있던 사람들이 그들을 보고 놀라서 먼저 공격을 가하면서 일어난 일들이다. 단순히 무분별한 파괴가 아니라 외계인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담으려고 했다.
범석(황정민)이 처음 마주하는 파괴된 부동산이 읍내 초입에 있다. 외계인들이 우연히 숲에서 읍내로 들어와 부동산에 들어갔더니 지도가 보인 거다. “너는 여기를 찾아, 난 여기로 갈게” 하는 식으로 어린 왕자의 흔적을 추적할 계획을 세우는데, 부동산 주인 아주머니가 들어오면서 혼란이 시작된 거다. 부동산 아주머니의 죽음이 고의가 아닌 사고라는 생각하에 그 공간을 만들었다.
Q 영화 초반부터 50분가량을 차지하는 호포항 읍내와 그 가상의 마을을 표현한 미술이 압권이다. 전라남도 해남 북평면 남창마을 일대에서 찍었다고?
그 마을이 촬영지로 정해진 이유는 정말 한적했기 때문인 것 같다.(웃음) 그리고 그곳에 미술팀이 세팅을 한 구간이 굉장히 길다. 그 정도 길이의 구간을 오픈 세트로 다 만든다는 것은 한국영화가 그간 운영해온 자본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동네를 찾다 보니 해남 땅끝마을까지 가게 됐다고 할 수 있다. 한적하고 옛날 모습이 조금 많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그래도 지금 보면 여느 마을 읍내다. 을씨년스러운 느낌은 영화가 만들어낸 것이다.
Q 마을이 상당히 넓고 골목골목이 미로처럼 되어있다. 실제 지형만을 이용한 것인가. CG로 덧붙인 것은 없나?
나홍진 감독과 나는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것을 자연스럽게 이용하려는 주의다. 영화 속 읍내의 구조나 동선은 원래 마을 형태 그대로다. 우리가 한 것은 그 마을 건물들의 외형을 리터칭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시골이어도 건물이 100채 정도 있으면 옛 모습의 건물은 10~15% 정도밖에 안 된다. 나머지 85%를 미술팀이 건물 외형을 다 만들어서 설치하고 다시 부서진 과정을 만든다. 전체 프리 프로덕션은 1년 정도, 읍내 디자인 6개월, 리터칭 작업만 4~5개월을 했던 것 같다.
마을이 3섹터로 나뉘어 있다. 우선, 범석이 뛰어가서 처음으로 파괴된 읍내와 죽은 사람들을 보는 곳. 촬영하면서 우리가 ‘킬링 필드’라고 불렀던 곳이다. 범석이 킬링 필드와 골목들을 지나고 성애(정호연)가 순찰차를 몰고 첫 등장하는 400~500m 길이의 마을 메인 길까지가 한 섹터다. 끝까지 걸어가려면 굉장히 길다. 범석이 골목에서 나와서 트럭을 탔다가 떨어지는 동네가 두 번째 섹터, 그리고 첫 번째 외계인 바미기르(카메론 브리튼)가 튀어나오는 집이 있던 동네가 세 번째 섹터다. 세 동네가 실제로는 10~15분 정도 떨어져 있다. A섹터에서 촬영하고 있으면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B섹터로 넘어가서 미술팀이 세팅하는 상황을 확인하다가 다시 C섹터로 넘어가는 과정을 반복했다. 여기 잘하고 있나, 저기 문제없나 계속 돌아봐야 했다.

외계인 바미기르가 휩쓸고 가 도로에 잔해들이 가득한 <호프>의 킬링 필드(위)와
바미기르가 천장을 뚫고 등장하는 집이 있는 동네
Q 파괴의 이미지도 마을의 중요 포인트마다 콘셉트가 달랐을 것 같은데?
초반의 킬링 필드는 시각적인 충격으로 다가와야만 했다. 그래야 관객은 괴물의 존재가 영화 초반에 성기(조인성) 일행이 말하던 호랑이나 곰이 아니라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 폐허의 킬링 필드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오일장’을 떠올렸다. 읍내 광장에 오일장이 섰는데, 거기 모인 사람들이 외계인에게 봉변을 당하는 개념으로 디자인했다. 그런데 장이라는 게 평면적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하기 때문에 조형적으로는 재미있지 않다. 그래서 뒤편에 높은 탑을 세우고 외계인의 물리력을 보여주기 위해 경운기가 날아와서 탑에 박히게 만들었다. 자세히 보면 시신도 매달려 있다. 다른 차들도 날아와서 시장을 덮친 형국이고.
바미기르가 지붕을 뚫고 나오는 집은 어부들이 쓰는 용품을 파는 가게인 ‘선구사’로 디자인했다. 그리고 여기가 어촌 마을인데 관련된 게 들어가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 선구사 주변 공간을 황태 덕장으로 디자인했다. 바미기르의 시신을 해부하는 장소는 바닷가 마을에 있는 합동 냉동 창고 같은 곳을 생각했다.
오일장을 표현할 때 내가 욕심을 냈다. “오일장이면 당연히 생선이 있어야지”라고 말해서 소품팀이 부랴부랴 고급 어종부터 저렴한 생선까지 사왔는데 생선값만 1천100만 원이 들었다. 미술팀과 소품팀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좌판을 펼치고 생선을 하나하나 깔고, 일일이 엮어서 걸었다. 그러다 생선이 터져서 지저분하게 되고, 그 와중에 크레인을 불러서 차를 탑에 얹는데, 고양이가 계속 생선을 훔쳐 가고, 저쪽에 놔둔 비싼 생선은 누가 또 집어갔다. 스크린 이면에 너무 많은 일들이 있다. 고생스럽지만 재밌기도 하다. 그래서 한번 했던 콘셉트의 작업을 다시 안 하려고 한다. 새로운 것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같은 고생을 또다시 할 수가 없는 거다.(웃음)
Q 읍내에서는 엄청난 속도감의 추격전이 펼쳐진다. 범석과 성애가 탄 순찰차, 바미기르가 빠르게 지나가는데, 그럼에도 주변 폐허의 잔상들이 세세하게 화면에 꽉 차 있다.
광범위한 거리들을 세팅해야 했다. 성애가 순찰차를 몰고 등장해서 총을 쏘는 장면의 경우 400~500m 되는 거리의 소실점이 너무 멀어서 어떤 파괴가 일어나더라도 조금밖에 보이지 않았다. 잔해를 더 과장되게 만들어야 했다. 카메라가 워낙 여기저기 훑기 때문에 보이는 곳은 다 채워 놓아야 했다.

외계인의 습격으로 폐허가 된 호포항 마을 읍내 광장 오일장(위)과
그 한복판에서 외계인에게 쫓기는 장면을 촬영하는 황정민
Q 마을 전체를 3분할 해서 작업하면서 마을 주민들에게 어떻게 협조를 구했나?
제작부의 수고가 많았다. 성애가 순찰차를 타고 등장하는 메인 길은 건물 외형의 90%가 1980년대 스타일의 디자인과 건축 마감재, 색감으로 바뀐 후 파괴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그 길 안쪽의 골목골목마다 주민들이 실제 살고 계셨다. 리터칭을 90% 정도 마무리할 때쯤 할머니들이 집을 못 찾으셨다. “메인 길의 떡집 옆으로 들어가면 우리 집”인데, 떡집이 다른 간판으로 다 바뀌었으니까.(웃음) 제작부가 할머니들 손을 잡고 집 찾아드리는 일을 계속했다.
Q 어린 외계인 왕자를 사살해 냉동고에 둔 마을 청년 양배(음문석)의 집이 가장 이질적이다.
그의 직업은 목수다. 범석이 “도대체 뭐하는 놈이야?” 그랬더니 “목수래요”라고 하는 대사도 나오지 않나. 보잘것없는 한 인간이 저지른 실수로 인해서 마을이 초토화되고 거대 함선까지 지구로 떨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일들이 생기지 않나. 그런 일을 저지른 인물이 허무하게도 참 보잘것없는 놈인데, 그런 놈이 사는 공간을 만들어야 해서 나홍진 감독과 많이 고민했다. 마당에 마네킹들과 각종 물건들을 배치해 ‘변태인가?’ 하는 인상을 주면서, 목수 일을 하는 대신 총 갖고 사냥하러 다니면서 동네 다방 여자들을 꼬일 생각만 하는 한량 캐릭터를 압축해서 표현한 공간이다.

추격전이 펼쳐지는 호포항 마을 읍내 건물들은 1980년대 스타일로 리터칭됐으며
그 골목에는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Q 영화를 보면 시대적 배경이 구체적으로 등장하거나 언급되지 않는데, 마을의 풍경과 순찰차, 사람들의 복장에는 시대적 스타일이 엿보인다.
가이드로 잡았던 시대적 배경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다. 그 시대 시골 마을들의 이미지를 차용하되 영화적 허용과 재미를 불어넣는 범위 안에서 작업했던 것 같다. 범석과 성애의 경찰복도 당시의 디자인과 여러 색감들을 모티프로 했지만 영화적으로 다시 재단됐고, 순찰차나 성기 일행의 룩도 마찬가지다.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는 6·25 전쟁이 벌어진 지 오래되지 않았고 실제 불법 총기류들이 만연했던 시기다. 아직 ‘빨갱이’ 운운하던 시절이었고, 동네에서 민방위 훈련도 많이 했다. 완성된 영화에서는 삭제됐지만 범석이 근무하는 해양경찰 출장소에도 그래서 무기고가 있다. 범석이 출장소에 들어와서 부하에게 총기 관련해서 야단치는 것도 그 때문이다.
Q 루마니아에서 촬영한 숲 신의 경우도 다양한 파괴와 훼손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미술팀과 특수분장팀이 어떻게 협력했나?
성기 일행이 숲 안에서 밀렵꾼들의 캠프를 발견했을 때 그 캠프도 파괴되어 있는 상황이다. 일단 미술팀은 캠프를 만들고, 밀렵꾼들과 외계인들 간에 교전이 있었던 흔적을 숲 곳곳에 남겨야 했다. 거대한 나무들이 쓰러져 있고, 나무에 흉터나 총알 자국이 남아 있게 하는 식으로 나름 표현을 했지만 아쉬운 면은 있다. 신체 훼손의 이미지들은 특수분장팀 더 셀의 황효균 대표가 워낙 잘했다. 정확한 구도나 위치, 특수 신체 더미들의 디테일은 미술팀이 함께 잡았다. 신체 훼손의 수위는 굉장히 민감한 문제이고 영화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 나홍진 감독과 많은 회의를 거쳤다.
Q 마을의 읍내는 지극히 한국적인데, 숲은 우주선까지 등장하는 매우 대조적인 콘셉트다.
그냥 (나홍진) 감독이 시키는 대로 했다.(웃음) 우주선 디자인도 벌집 모양부터 육각형까지, 투명하기도 하고 불투명하기도 한 많은 버전이 있었다. 그런데 실제 루마니아에 가서 숲을 본 이후에는 ‘심플하게 가자’는 생각이 확 들었다. 숲의 나무들에 산란되는 빛, 그 빛이 떨어지는 각도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형 은색 우주선 디자인이 나오게 됐다.
시나리오 보면서 재미있었던 대사 가운데 하나가 성기 일행 중 한 명이 “나는 비행기도 못 타봤는데 우주선을 탄다”라는 대사였다. 그런 느낌을 보여줘야 하는 게 정말 어려운 부분이었다. 할리우드 SF 장르영화들이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보여줬고, 그들보다 예산이 적은 우리가 더 잘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오히려 ‘심플하게 가자’라는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할리우드 영화는 어차피 그들의 문법으로 계속 만드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은 방법으로 만들어야 더 영리한 것 아닌가.
읍내는 굉장히 복잡하고 숲은 굉장히 단순한 조합이 처음부터 무척 재미있었다. 시골 읍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외계인과 싸우는데, 실제 읍내 오일장에 나올 때 입는 복장을 하고 총을 들고 싸우는 것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루마니아에서 촬영된 숲 장면들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단순하게 해
복잡한 읍내와 대조적인 느낌을 준다
Q 지금 한국영화의 주요 스태프들에게 SF는 언젠가 한 번쯤 도전하고 싶은 궁극의 목표였던 것 같다. 그래서 <승리호>(2021)나 <외계+인> 1·2부(2022·2024), 그리고 <호프>가 나온 게 아닐까 싶은데.
맞다. 나도 영화미술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영화를 하면 SF 작업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SF는 해보지도 못하고 시간이 가더라. 감독들에게 “제발 SF 좀 써달라. SF 너무 하고 싶다”고 했다. 결국 <호프>로 SF영화를 하게 됐고, 이 영화의 방향성이 무척 좋았다. 할리우드를 답습하는 SF영화가 아니어서. 시나리오부터 재미있고, 설정이 지극히 한국적이었다. 완성된 영화도 정말 재미있게 봤다. 스태프가 자기가 참여한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게 쉽지 않다. 이미 시나리오를 많이 보고, 촬영하는 것도 보고, 편집된 것도 봐서 너무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프>는 초반의 에너지로 밀고 가면 후반부에 어느 정도 장애물이 있어도 그 기세로 끝까지 가겠다 싶었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장르영화라는 느낌도 있었다.
Q 외계인 크리처의 디자인에 맞춰서 미술팀이 VFX 팀과 협력해야 하는 작업은 어떤 것이었나?
한국영화에서 크리처가 등장해 화면 중심에서 움직이는 영화가 별로 없다. 스태프들도 경험이 별로 없어서 1부터 10까지 다 쉽지 않았다. 크로마키 색깔과 같은 색깔의 소품이 들어가는 것부터 조심했다. 범석이 바미기르에게 추격당하다가 식당 안으로 들어와서 총을 겨누는데 뒤에서 바미기르가 다시 등장하는 신이 있다. 바미기르가 허리를 숙이고 들어오는 것까지 고려해 천장의 높이를 계산해야 했다. 크리처 디자인이 공간 디자인 과정에도 다 영향을 미쳤다. 상대가 없는 상태에서 찍어야 하는 (홍경표) 촬영감독님과 배우들은 물론이고, 특수효과팀도 바미기르가 달려오는 경로를 계산해서 폭파하고 파편을 만들고 소품도 던져야 하는 과정들이 다 어려웠던 것 같다.
프로덕션 디자인은 공간이나 배경의 표면만 디자인하는 게 아니라 시나리오의 모든 것들을 이해해야 한다. 배우의 동선, 캐릭터의 감정을 이해하고 논리적인 사고도 해야 한다. 그 이후 미술적 테크닉을 써서 디자인을 하고, 결국 실물로 만들어야 한다. 영화감독만큼 힘든 직업이다. 과정이 보람 있고 재미있어서 이 일을 시작했는데, 이제는 결과가 성취감으로 오는 것 같다.
Q <황해> <곡성> <호프>를 거치면서 본 나홍진 감독은 어떤 면이 일관되고, 어떤 면이 변화하고 있다고 보나?
나홍진 감독은 늘 기대되는 감독이다. 이 사람이 이번에는 어떤 재밌는 시나리오를 써서 보여줄까 기대하게 된다. 처음 <호프> 시나리오를 보고 ‘<곡성>의 SF 버전’이라고 생각했다. <곡성>에서는 외지인, <호프>에서는 외계인이지만 누군가가 어느 마을에 와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으니까. 나홍진 영화에서 늘 느꼈듯이 <호프>도 대사가 너무 재미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내용들을 버무려서 뭔가 새로운 것으로 들이민다. 기존에 했던 것을 답습하지 않고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것, 나는 그게 창작자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나홍진 감독은 그걸 만들어내고자 하는 치열함이 있어서 좋다. <호프>가 그 치열함의 끝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나홍진 감독이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호프> 메이킹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