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❷ - YES or NO

무너지는 희망을 추격하다

<호프>

2026-07-27

글 _ 김혜선(웹진 한국영화 편집장)
사진 _ 서범세(한경매거진앤북 기자),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대담 _ 조재휘 영화평론가, 청예 SF 소설가

  • 조재휘 영화평론가 “명확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다시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작품”

  • 청예 SF 소설가 “스토리의 엉성함을 압도하는 극장 경험의 최대치”

  • 단점도 덮어버리는 압도적 에너지, 기대를 완전히 웃돈 한국 SF의 성취

나홍진 감독의 강렬한 신작 <호프>가 지난 7월 15일 개봉 이후 관객의 양분된 극단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어느 날 비무장지대 마을에 나타난 외계인의 존재가 마을을 파괴하고 거대한 혼돈을 불러오는 이야기는 단점을 상쇄할 만큼 거대한 에너지를 높이 평가하는 이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와 허술한 비주얼의 아쉬움을 말하는 이들의 설전 속에 요동치고 있다. 한국영화의 놀라운 성취라는 반응과 과도한 의미 부여라고 보는 시각도 팽팽하다. 그런 찬반의 열기 속에서 <호프>는 개봉 첫 주 관객 수 200만을 넘어섰다. 나홍진 감독이 <호프>라는 거대한 장르 오락영화 속에 담은 것은 무엇일까. 영화를 보는 방법은 다양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다만 조금 깊이 들여다봤을 때 보이는 것들을 이해하고 즐기는 것이야말로 영화가 지닌 매력이 아닐까. 조재휘 영화평론가와 청예 SF 소설가가 ‘나홍진이라는 세계’가 지닌 기대와 배반의 흥미로움을 이야기한다.

Q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는 칸국제영화제 공개 이후 국내 개봉 전까지 배우들의 홍보와 다양한 언론 기사가 국내 관객의 궁금증과 기대치를 크게 올려놓았다. 공개된 영화는 기대치를 웃돌았나? 아니면 기대에 미치지 못했나?

조재휘 영화평론가(이하 조재휘 평론가) 굉장히 놀랐다. 한국영화에서 이런 규모의 공간감으로 장르적 어트랙션(편집자 주 - 테마파크의 놀이기구, 체험시설을 뜻하지만 맥락상 사람을 끄는 요소라는 의미로도 쓰인다)을 펼쳐낸 경우는 만주 배경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정도다. 한국적 시골 마을에서 이런 대규모 어트랙션이 어떻게 가능했나 싶었다. 흔치 않은 동선의 액션, 낮은 앵글의 광각과 이동 카메라가 주는 활력에 놀랐다. 과시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블록버스터는 의미적으로 빈곤할 거라는 편견이 있는데, <호프>는 그 세계를 차곡차곡 쌓다가 준비된 액션을 터뜨린다. 단순한 장르 오락이 아니라 장르 오락이기 때문에 더 순수하게 정치성을 관철시킨다. 나홍진 감독의 연출이 교묘하다.

청예 SF 소설가 (이하 청예 작가) 기대치를 완전히 웃돌았다. 오히려 걱정을 많이 하면서 보러 갔다. 한국 SF영화는 실망스런 사례들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스테이크를 먹으러 갔다가 진짜 맛있는 김치찌개를 대접받은 느낌이었다. 기대했던 것들은 다 배신당했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로 충족됐다. 다만 <황해>(2010), <곡성>(2016)에 애정을 갖는 사람으로서 서사의 힘, 스토리의 구조적인 힘은 매력적이지 않았다. 영화라는 콘텐츠 자체의 시각적인 힘이 최대치로 다가오는 작품이었다.

청예 SF 소설가(왼쪽)와 조재휘 영화평론가

Q 그간의 한국 SF영화는 신파적 감정에 기대고, 과학적 사유를 하지 않는 문과형 SF라는 비판이 많았다. 나홍진 감독은 SF영화의 요소를 어떻게 활용했다고 보나?

청예 작가 SF라는 장르가 나홍진 감독을 만나서 철저하게 이용당했다고 생각한다.(웃음) SF 장르는 관객들이 과학적 정합성, 논리적 전개를 기대하는데 <호프>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SF는 임팩트와 시각적 쾌감을 극대화하는 요소로 사용됐고, 외계인 자리에 다른 게 왔어도 상관없었을 거다.

신기했던 건, SF영화가 흔히 강조하는 가족 서사를 <호프>는 주동자인 인간이 아니라 반동자인 외계인에게 준다는 점이다. 후반부에 결국 그들 가족 얘기가 나오는데, 분명 우리를 학살하는 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점에서 <호프>는 기존 SF와 한 끗이 다르다. 그리고 과학적 사유를 강조하는 게 오히려 SF에 독이 될 수 있다. 지식을 과잉 전달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조재휘 평론가 <호프>는 하드 SF가 아니라 SF를 콘셉트로 가져왔다고 보는 게 맞다. 1950년대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B급 SF에 대한 미국 진보 평론가들의 분석틀이 떠올랐다. <신체 강탈자의 침입>(1956)에서 소련 침입에 대한 공포가 외계인으로 표현됐듯, <호프>의 외계인도 이해 못 하는 적대적 타자일 거라는 예감이 싹텄다.

영화 초반, 곳곳이 파괴되는데 정작 범석(황정민)의 눈에는 그게 보이지 않는다. 가장 상징적인 순간은 범석이 괴물인 줄 알고 마을 주민이자 정육점 사장인 친구 경석(정지순)을 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한 공포로 내부를 단속하다 서로 죽고 죽이는, 분단 이후 한국 사회에 대한 완벽한 은유 아닌가. 마을 주민들이 외계인을 사냥하러 숲에 들어갈 때는 <피아골>(1955)에서 <남부군>(1990)까지 이어지는 빨치산 소재 영화들의 계보가 떠올랐다. 해술이 아저씨(임현식)에게서 한국 반공영화 서브 캐릭터의 향기가 느껴지고,(웃음) 성애(정호연)의 문어체 대사들도 냉전 시대 한국 고전영화를 레퍼런스 삼은 것 같다.

Q <호프>에 엿보이는 사회적·정치적 설정들(DMZ 접경 마을라는 배경, 멸공 문구, 생태계가 아닌 인간 중심의 이기적 사고 등)은 어떻게 보았나? 강력한 에너지를 지닌 오락영화 안에 그 함의들을 잘 실어 나르고 있을까?

조재휘 평론가 외계인의 동기를 이해 못한 채 외계인이 나타난 것만으로 마을이 쑥대밭이 되는 건, 상어는 안 보이지만 해변이 엉망이 되는 영화 <죠스>(1978)와 같다. <호프>의 가장 큰 레퍼런스는 <죠스>이고, <매드맥스>(1980)와 <프레데터>(1987), <프로메테우스>(2012)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당혹스러웠던 건 외계인 서사가 누락된 채 2편을 기대하라는 식으로 끝났다는 점이다. 그들의 구성원인 어린 왕자 캘리가 인간에 의해 죽었다는 동기가 제시되긴 하지만, 너무 기능적이고 얄팍한 수준이었다. 그래도 <호프>는 조정을 비교적 잘했다. 거대한 어트랙션을 펼치면서도 의미심장한 담론으로 초대할 단서들을 <헨젤과 그레텔>의 빵가루처럼 뿌려 놓은 셈이다.

청예 작가 초반에 범석과 성기(조인성) 일행이 죽은 소를 보며 호랑이를 언급하는데, 범석은 속지만 성기 일행은 아니라는 걸 안다. 호포항의 한자도 호랑이 호(虎)를 변으로 쓴 부르짖을 호(號) 자였다. 나홍진 감독이 선택한 죠스는 호랑이였던 것 같다. 한국전쟁 이후 시대를 얘기함으로써 영화 중반까지 “우리는 여기 없을 수도 있는 가

조재휘 평론가 나홍진 작품에 자리 잡은 공통된 무의식을 짚어볼 시기가 된 것 같다. 기묘한 건 외계인의 변신이다. 마을 사람들은 AKM까지 등장할 만큼 현대 총기라는 문명화된 도구로 야만적 폭력을 쓰고,(웃음) 외계인들은 우주선을 만들 능력이 있으면서도 변신해서는 훨씬 원시적이고 동물적인 방식으로 싸운다.

<추격자>(2008), <황해>에서도 문명화된 사회 안에 야만적 폭력이 있다. <곡성>이 진실에 도달하는 것의 불가능함을 말하듯 <호프> 초반의 혼란과 공포는 그 테마의 변주다. 하드 SF 팬은 고도로 발달한 문명의 외계인들이 <스타워즈>(1978)식 기절 총이라도 써야 하지 않냐 따질 수 있지만, 그건 나홍진이 바라보는 세상의 형태가 아니다. 나홍진 자신이 생각하는 우화의 세계를 풀어놓기 위해 <호프>에서 모델화된 시뮬레이션을 한 것으로 보인다.

청예 작가 이런 거대 예산으로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는 감독의 집념과 똥고집이 대체 무엇인가. 야수의 심장을 지녔다.(웃음) 나홍진 감독이 이번에도 믿음에 대한 얘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곡성>이 누가복음을 인용해 믿음을 이야기했듯, <호프>에서는 외계인 황후 조르(알리시아 비칸데르)가 히브리서를 인용해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 말한다. 성애는 “아무리 괴물이라도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라고 한다. 인간과 외계인의 입장이 완전히 어긋난 세계에서, 신념 체계가 너무 다른 두 존재가 공존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고자 한 것 아닐까.

Q 후반부의 호불호와 달리 1막이라 할 전반부 50분가량의 읍내 추격전에 대한 반응만큼은 뜨겁다. 읍내 추격전의 완성도는 어떠했나? 파괴된 마을을 만든 미술, 속도감, 첫 외계인의 등장이 보여주는 VFX, 추격자와 도망자의 전환 등등 많은 것들이 압축되어 있는데.

청예 작가 전반부 읍내 장면들을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 바미기르(카메론 브리튼)는 소리와 피해 상황만 보여주다 비주얼이 늦게 등장하는데도 지루하지 않았다. 미술도 철저히 가상의 도시로 디자인했는데, 그 정도가 너무 완벽해서 간판 폰트나 가게 배치가 다 비슷한 게 오히려 아쉬웠다. 그래도 액션의 압도적인 긴장감 때문에 너무 재밌게 봤다. 다만 바미기르의 눈물 신은 동의가 안 된다. 그게 외계인 가족 서사의 시작이라고 본다면 조금 허술하게 쓰였다.

조재휘 평론가 읍내 부분은 이 영화의 가장 빛나는 장면들이다. 바미기르의 눈물 신은 외계인을 향한 접근법을 바꾸는 데 기여한다. 눈물 흘리는 눈동자 디자인 자체가 사람의 눈동자다. CG 캐릭터를 인격화된 존재로 보여줄 때 눈이 가장 효과적인 장치라서 그 신은 반드시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초반부 촬영은 프레임 중앙을 향해 서서히 전진하는 심도 깊은 앵글을 많이 쓴다. 모르는 타자에게 접근하는 스릴러적 관점을 보여주는 촬영이 좋다. 양식화된 촬영이긴 하지만 그 점을 티 나지 않게 해주는 게 미술이다. 가짜 마을인데 구성 요소 하나하나에 굉장한 리얼리티가 있다.

<승리호>(2021), <정이>(2023) 등의 한국형 SF영화들이 실패한 큰 요인이 미장센의 실패다. 배우들이 그냥 세트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주니까. 그런데 <호프>에서는 범석이 마을을 뛰어다니다가 목이 마르니까 바닥에 놓인 대야에 고인 물을 퍼 마신다. 그 동네에서 살아온 사람이니까 할 수 있는 느낌이다. 이상한 리얼리티, 굉장한 시간감이 느껴진다. 그런 시각적 시간성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은데, 전경, 중경, 후경에 모두 사물들을 꽉꽉 입체적으로 채우고, 카메라 움직임의 동선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다 배치해 놓았다는 게 대단하다. 그리고 호포항은 어디선가 주전자 물이 끓고 있을 법한, 느릿느릿한 생활감이 있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고속 질주 액션을 해버리니 금기를 깬 듯한 이상한 쾌감을 안겨준다. 저 속도로 <매드맥스>를 찍을 생각을 하다니.(웃음)

청예 작가 <호프>는 지키는 영화가 아니라 어기는 영화 같다. 룰을 어기고 새로운 것을 자꾸 보여줘서 우리는 다 배신당하고 충격받고.(웃음)

Q 숲에서의 추격전이 벌어지기 전, 마을에서 외계인 시신을 해부하고 해술이 아저씨의 외계인 목격담이 등장하는 구조적 이완이 보인다. 이후 여러 인물이 추가되면서 군상극으로 방향이 전환된다. 이런 부분 역시 나홍진 특유의 의도된 불균형과 실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청예 작가 <호프>를 보면서 동시에 세 편의 영화를 본 기분이었다. 마을 사건, 숲속 추격전, 성기대교 장면이 연결돼 있지만 쫙 달라붙지 않는 느낌이었다. 색감 대비도 굉장히 심했는데 대낮에 그 부분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고자 한 것 같다. 외계인과 인간의 대립처럼 비주얼 요소도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숲으로 들어온 이후는 감독의 의도가 더 잘 보였다.

조재휘 평론가 1인칭으로 범석에게 몰입하던 시점이 외계인 시신 보관 창고 장면부터 3인칭으로 바뀐다. 어색하진 않았다. 오히려 저 세계를 파악했으니 자초지종을 들어보자는 쪽으로 환기됐다. 다만 타자화되어 있던 외계인들이 갑자기 서사의 주체로 나서면서 균형이 깨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닐 것이다. 외계인들이 갑자기 왜 이러나 싶은 느낌.(웃음)

Q 외계인 크리처 디자인의 독창성과 CG 완성도는 어떤가? 읍내와 숲, 대교에서 대낮에 활개 치는 외계인의 CG는 그간 한국 SF영화들이 사용한 전략과 어떻게 달랐을까?

조재휘 평론가 영화 초반 대낮의 마을에서 외계인이 나올 때는 과감하다고 생각했다. 낮 배경은 실사와 CG 합성의 위화감을 가릴 수 없어 공이 더 들어갔는데 꽤 그럴싸했다. 다만 바미기르의 눈물은 아쉽다. 피부 텍스처는 나쁘지 않지만 눈물방울의 광원 효과나 반사광 디테일이 미흡했다. 외계인 디자인이 기본적으로 인간형이라, 실제 사람과 함께 움직이는 추격 시퀀스는 모션 차이가 대비돼 부자연스러웠다. 마베이요(마이클 패스벤더)가 네발짐승으로 변신했을 땐 오히려 위화감이 덜했다. 성기대교 추격전부터는 3D 모델과 환경의 조화가 어색했다.

청예 작가 나는 오히려 CG를 크게 개의치 않는 관객이어서 재미있게 봤다. 요철감이나 색감은 좋은데 조금만 더 자연스러웠으면 어땠을까 싶다. 다른 장점들이 크니 156분 동안 CG 완성도는 눈 감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외계인 크리처 디자인은 보면서 많은 레퍼런스가 떠올랐다. 나홍진 감독만의 독창적인 크리처였다면 좋았을 텐데, 대부분 인간형이고 가장 단순한 형태였다. CG 완성도보다 크리처 디자인이 훨씬 아쉬웠다.

조재휘 평론가 외계인 몸의 가시는 작업 난이도만 올릴 뿐 차별화가 되지 않는데 굳이 만들어야 했을까. 눈동자도 외계인이 인격적 존재임을 돌아보게 했지만 신비감은 증발시켰다. 2012년에 <프로메테우스>와 <토탈 리콜> 리메이크가 나왔고, 2017년에 <블레이드 러너 2049>가 나오면서 할리우드 SF 미래 디자인도 스테레오 타입이 심화됐다. <호프> 역시 그 전형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호프>의 제작비 600, 700억 원이 대단해 보여도 1999년 <매트릭스> 제작비 6천500만 달러보다 모자란 예산이다. 이런 예산에서 승부처는 CG 퀄리티보다 크리처 디자인의 개성인데, 디자인이 너무 소심했다.

청예 작가 그냥 게으른 선택 아닐까. 예산 문제도 있겠고. 외계인 디자인은 SF 장르가 약간 존중되지 않는 모습이어서 아쉬웠다. 2008년 영화 <미스트>의 크리처들을 보면 각각 특이한 비주얼과 남다른 공격 방식을 갖는데, <호프>의 외계인들은 예상이 되어서 오히려 상상력이 결여된 디자인으로 보였다.

Q 황정민, 정호연, 조인성이 연기하는 범석, 성애, 성기의 캐릭터는 매력적이었나?

청예 작가 캐릭터들이 평면적이라 아쉬웠다. <호프>는 전체적으로 스토리가 납작하다. 인물의 전사가 많이 생략돼 있는데, 꼭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드러났다면 더 공감할 수 있었을 거다. 성기는 조금 특이했다. 후반부까지는 범석과 성애처럼 사용되는 캐릭터인 줄 알고, 왜 저런 인물이 3명이나 필요할까 싶었는데, 성기의 마지막을 보고 나홍진의 뮤즈는 범석이 아니라 성기라고 느꼈다.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끝까지 살아남는, ‘호프’라는 제목의 뜻을 다 담은 캐릭터다. 그걸 조인성 배우가 소화했다는 게 너무 웃겨서 애정이 생겼다.

조재휘 평론가 캐릭터들은 철저하게 기능적이다. 범석은 관객의 시점을 대변해 초대하는 역할, 성애는 조력자이자 사이드킥, 성기는 숲으로 끌어들이는 도구성 캐릭터다. 인물에서는 그리 매력을 못 느꼈지만, 각본의 문자 텍스트가 채우지 못하는 틈새를 배우들의 존재감이 채워주는 부분은 있다. 캐릭터는 매력적이지 않지만 그들이 초대하는 세계가 매혹적이다.

Q 외계인으로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같은 할리우드 배우들을 기용한 방식이 의미가 있을까, 아니면 글로벌 세일즈를 염두에 둔 선택에 그칠까.

조재휘 평론가 외계인 얼굴 디자인을 처음 봤을 때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인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꼭 그들을 캐스팅하지 않았어도 괜찮았을 수 있다. 다만 <호프>가 1부라면 이건 인간 관점에서 본 타자들의 침입일 뿐이고, 2부에서는 철저히 외계인 관점으로 그들이 여기 온 이유가 나와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할리우드 배우 캐스팅은 글로벌 세일즈를 위한 포석이면서 3부작을 위한 좋은 미끼다.

청예 작가 할리우드 배우들의 얼굴만 가져다 쓴 셈이라 약간의 쾌감이 있었다. 그동안 할리우드 영화에서 동양인 캐릭터가 재미없는 너드나 배 나온 아저씨로 소모됐다면, <호프>에서는 우리가 백인들을 이용한 느낌이다. 나홍진 감독이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웃긴 포인트였다. 굳이 마이클 패스벤더가 아니어도 되는데 캐스팅했다는 게 이 영화의 블랙 코미디 포인트가 아닐까.(웃음)

Q 확실히 영화 내내 블랙 코미디스러운 상황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도입부에서부터 성기 일행들이 해술이 아저씨에 대해 나누는 대화, 실제 해술이 아저씨가 묘사하는 외계인 목격담 신, 그리고 부검의가 죽은 바미기르를 해부하는 신 등등. 진지한 대화를 거부하는 듯한 만담식 대사, 소통되지 않고 미끄러지는 듯한 대화에 대한 생각은?

청예 작가 개인적으로 너무 재미있었다. 그런 포인트들이 완급조절에 도움이 됐고, 액션에만 매몰되지 않고 우스꽝스러운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지게 해줬다. 욕설이 많았지만 긍정적으로 봤고 실제로 웃기도 했다.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조재휘 평론가 주인공 3인방은 기능적이고 평면적인데,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를 임현식 배우가 맡은 게 재미있었다. 배우들이 욕을 차지게 소화해서 전 세계에 한국 욕이 유행할 것 같다.(웃음) 반대로 외계인들은 중세 음유 시인처럼 셰익스피어식 대사를 뻔뻔하게 한다. 이 격차는 두 종족을 잇는 가교 같은 장치인가 싶기도 했다. 역시 외계인들의 목적성을 어느 정도는 드러냈으면 좋았을 것 같다.

<호프> BEHIND THE SCENES

Q 결국 <호프>는 YES인가 NO인가.

청예 작가

완전 YES.

<호프>는 극장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의 최대치를 한 느낌이다. 스토리도 엉성하고 인물은 평면적이고 허점들이 많은데도 그걸 압도하는 힘이 있다. 최근 한국영화에서 느껴보지 못한 힘이다. 다만 2부를 만든다면 개선해야 할 부분들은 많아 보인다. 발전할 여지가 있는 영화여서 ‘호프’라는 제목이 더 들어맞는다.

조재휘 평론가

YES.

<호프>는 자신이 희망하는 것을 좇아가지만 원하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고 좌절을 겪는 이들의 이야기다. 나홍진 감독은 이 세상에서 우리의 욕망과 의지가 어떻게 처참히 무너질 수 있는가를 쭉 얘기하고 있다. <곡성>의 믿음, <추격자>의 공권력, <황해>의 세계 모두 내부에서부터 무너지는 파열이라는 주제로 달려왔다. 그래서 <호프>는 명확한 결점이 있더라도 다시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다만, 최근 국내 영화 커뮤니티에서 한국영화에 관한 이상할 정도의 혐오 기류가 있고, 혐오가 일종의 오락처럼 되었다. 이 영화가 작은 단점 때문에 혐오의 희생양이 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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