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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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❶

갇혀 있지 않는 영화의 시대로

2025 한국영화 결산 - 비평 대담 ③

SPECIAL ❶

갇혀 있지 않는 영화의 시대로

2025 한국영화 결산 - 비평 대담 ③

진행 _ 김혜선(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사진 _ 임익순
대담 참석자 _ 김경수 영화평론가, 김도훈 영화평론가,
김은형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홍수정 영화평론가(가나다순)

2025-12-01

왼쪽부터 김경수 영화평론가, 김은형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홍수정 영화평론가, 김도훈 영화평론가

왼쪽부터 김경수 영화평론가, 김은형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홍수정 영화평론가, 김도훈 영화평론가

한국영화 AI, 미흡하나 기회는 될 것

한국영화에 이제 AI가 많이 적용될 수밖에 없는 시점이 도래하고 있다. 올해 AI로 만든 일정 분량의 장면이 삽입된 상업영화 <중간계>가 개봉했다. <중간계>는 완성도에 있어서 아쉬움이 크지만, AI는 이후 한국영화 산업을 깊게 파고들게 될 것은 분명하다. 향후 전망은 어떨까?

김혜선 편집장
(이하 김혜선)

김도훈 영화평론가
(이하 김도훈)

<중간계>는 AI를 특수효과를 저렴하게 만들 수 있는 도구로 생각하고 사용했다. 지금 할리우드가 AI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는 건 그런 게 아니다. 아예 시나리오부터 모든 아이디어, 즉 인간의 머리로 해야 하는 모든 것들을 뺏길까 봐 걱정하고 있다. AI 배우의 출현 정도는 그냥 맛보기에 불과한 거다. 한국은 아직 그런 위기의식 없이 AI로 특수효과를 싸게 만드는 데 그치고 있다. 사실 <중간계>는 테스트 스크리닝 감이다. 왜 굳이 개봉을 했는지 의아하다. 아직 한국영화에서 AI에 대한 전망을 따질 단계도 못 되는 것 같다. AI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홍수정 영화평론가
(이하 홍수정)

나는 AI의 조류가 너무 세서 어쨌든 그 방향으로 가긴 갈 것 같다. AI를 툴로 사용하는 사례는 이미 너무 많다. 그리고 <중간계>가 최초의 AI 영화라고 보지 않는다. AI 영화라고 하려면 주인공인 인물이 AI로 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경지는 아직 먼 것 같다. 향후에 AI 작업이 엄청 보편화되어도 인물의 목소리 같은 부분은 인간이 마지막 터치를 할 것 같은데, 비용을 다운시키기 위해서 AI를 사용하는 길은 이미 열려 버렸다. 광고도 이미 AI 활용이 보편화되고 있고, 숏폼이나 드라마처럼 작품성을 조금은 덜 요구하는 분야부터 차근차근 열려서 영화까지 그냥 열리지 않을까. 퀄리티를 긍정하진 않지만, 많이 사용될 것 같다.

김경수 영화평론가
(이하 김경수)

AI로 만든 이미지들의 레퍼런스가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방금 AI 광고를 언급해주셨는데 AI 광고물이 촌스러워서 오히려 그 광고 상품을 안 사게 된다. 유튜브 채널 ‘심통봇’ 등 AI를 잘 쓰는 콘텐츠에는 당연히 찬사가 따르지만, AI로 무언가를 했다고 생색내는 콘텐츠에는 대중이 거부감과 촌스러움을 느끼는 듯하다. <중간계>의 AI 사용 장면도 매우 촌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우리의 눈은 아직 AI가 생성하는 이미지의 울렁거림과 미장센을 오랜 시간 감당할 정도는 아닌 듯하다. 결국 시간문제로 보이지만.

김은형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이하 김은형)

<중간계>는 기획성 작품이고 급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예전에 디지털 작업이 처음 되었을 때 논란이 되었던 ‘언캐니 밸리’(편집자 주–CG 처리된 가상의 인물이나 로봇이 너무 인간과 유사하다고 느낄 때 이상한 거부감, 불편함 같은 것을 갖게 되는 것) 같은 것이 AI에서 빠른 속도로 없어지고 있다고 한다. 지금 느껴지는 이물감이나 촌스러움 같은 것들도 계속 바뀔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AI가 그냥 뚝딱 내놓을 수 없는 복합적인 콘텐츠다. 과연 우리가 마블 영화나 <아바타> 수준의 AI 영화를 보게 될 날이 빨리 올까? 영화는 정교하게 맞출 것들이 너무 많다. 무인 자동차가 보편화될 거라고 10년 전부터 엄청 얘기했지만 사실상 우리 시대에는 불가능하다고 결론 나지 않았나. 몇 년 지나지 않아 AI가 만든 정말 우수한 영화를 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김도훈

AI의 발전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느낌은 있다. 15년에서 20년 후에는 내가 집에 앉아서 “오드리 헵번과 브래드 피트가 주연인, 필립 K. 딕의 SF 원작을 바탕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을 것 같은 영화를, 제작비는 한 1억 2천만 달러 정도의 2시간 반짜리 영화로 만들어줘”라고 하고 그 결과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진짜 AI를 영화에 활용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결국 창의성은 수많은 레퍼런스들을 조합하는 데에서 오는데, 지금 여러 AI들이 영화도 계속 학습하고 있지 않나. 책도 다 보고. 사람들이 AI가 인식하도록 프로그램 안에 넣어주고 있으니까. 그러면 20년 후에는 더 빠를 것이다. 나는 제일 무서운 게 영화의 종말인데, 그때는 영화의 종말보다 영화의 확실한 개인화가 이루어질 것 같다.

홍수정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시장을 AI가 많이 차지하지 않을까? 작품성이 굉장히 높은 영화들은 여전히 인간의 손을 타겠지만. 그리고 AI 영화의 또 하나의 관건은 투자를 못 받는 청년 감독들이 그걸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폭발적인 지지를 얻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회이니까. 내게 시나리오가 있고 이 아이템이 될 것 같은데 어디서도 투자를 받지 못했을 때 AI로 영화를 만들어볼 법하지 않나. 애니메이션 시장은 AI가 활용될 가능성이 더 높은 것 같다. 많이 뽑아내서 최대한 관객을 많이 만나야 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시나리오 단계가 인간의 터치가 마지막까지 필요할 것 같은데, 비주얼 중심인 애니메이션은 AI를 활용하는 이점이 훨씬 높지 않을까.

생성형 AI를 본격적으로 활용한 국내 첫 장편 상업영화
<중간계>(제공=CJ CGV)



K-컬처와 K-무비는 다르다

한국영화도 이제 당연히 글로벌화를 지향하고 있고, 국내 관객뿐 아니라 해외 관객과도 바로 소통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런데 해외와 국내에서 한국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가 크다. 예를 들면 <어쩔수가없다>의 경우,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해외 관객 혹은 비평가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는데 한국 내에서는 다른 양상이 펼쳐졌다. 그 이유를 해석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김혜선

김도훈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도 국내 개봉 당시에는 비평적으로 만장일치의 호평을 받은 건 아니었다. 사실상 불호가 심했다. 칸국제영화제에 출품되고 거기서 2등상 격인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이후에 분위기가 달라졌지만. 예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그분이 이런 얘기를 했다. 이탈리아에서 당신은 어떻게 받아들여지냐고 물어봤더니 “이탈리아 사람들은 나 안 좋아한다”는 거다. 그러면 한국 감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물었더니 “박찬욱”이라고 했다. 박찬욱 영화도 한국보다 외국에서 훨씬 인기가 많다고 했더니 아르젠토 감독이 이렇게 말했다. “이탈리아에는 이런 격언이 있지. 고향에서는 절대 예언자가 탄생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은 세상 어디를 가도 비슷한 거라고 생각한다.

김은형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현지 취재를 갔다. 그때의 열기를 기사로 전달했는데, 한국에 들어와서 엄청난 욕을 먹었다. 국뽕이냐고.(웃음) 우리 내부에서는 “K-무비가 벌써 붕괴 위기다”라면서 더 냉정하게 보지만 해외에서는 아직까지 K-무비의 인기가 높다. 영화뿐만 아니라 K-팝에 K-푸드까지. <어쩔수가없다>에 대한 열기는 K-컬처 전반에 대한 사람들의 호감과 관심이 박찬욱 감독에 대한 선호도에 함께 얹힌 것 같다. 박찬욱 감독은 해외에서는 이미 완전한 거장이다.

홍수정

K-컬처와 K-무비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K-푸드나 K-팝, K-코스메틱만 해도 산업적으로 굉장히 탄탄해지고 있는 게 그 업계의 외부인들 눈에도 보이는데 영화는 그렇지가 않다. 사실상 토대가 무너지고 있다. 해외에서의 붐과 열기에 너무 속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서구에서 아시아에 갖는 오리엔탈리즘이 여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한국영화의 잔혹하고 사회비판적인 부분이 해외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는데, 자국 영화에서 나왔을 때는 불쾌한 것을 한국이라는 굉장히 이질적인 국가의 작품을 통해 편안하게 소비하는 게 아닌가라는 의심을 계속 갖고 있다. 또 <오징어 게임> 시리즈의 엄청난 성공이 국내적으로는 나쁜 영향을 많이 미쳤다고 생각한다. 해외와 국내의 반응이 크게 다른데 나는 국내의 지적이 좀 더 정확하지 않나 생각한다. 예를 들어 봉준호라는 감독이 어떤 영화를 찍어 왔고, <기생충>이 그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읽어내는 것은 국내의 시선이 더 정확하다고 본다.

김경수

한국영화는 해외에서는 아직까지는 힙스터의 전유물 같다. K-팝과 확실히 다르다.

김도훈

그리스는 영화 산업 규모가 작은데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척척 해내는 거 보면 부럽다. 봉준호의 <미키 17>이 성공적이지 못했던 이유가 한국적으로 캐릭터를 구성하고 대사를 짰던 것들을 그냥 영어로만 바꾸니 너무 이질적인 영화가 나온 거라고 생각한다. 박찬욱 감독도 할리우드에서 아주 크게 성공한 작품은 없고. 그런데 지금 할리우드도 제작비 수급이 안 된다는 뉴스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럴 때 오히려 젊은 감독들이 가서 뭔가 해내는 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 될 것 같다. 어차피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음악도 한국 프로듀서들이 만들지 않았나. 변성현 감독이라든지 장르 친화적인 젊은 감독들이 어서 해외 프로젝트를 했으면 좋겠다.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고,
내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지명을 노리고 있는 <어쩔수가없다>(제공=CJ ENM)



어려운 가운데서도 한국영화는 의외의 돌파구를 찾아왔다. 부디 2026년이 그런 시기이길 바라며, 각자 2026년을 전망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김혜선

김경수

<가능한 사랑> 등 극장 개봉을 고민했던 한국영화가 넷플릭스로 가고 있어 아쉽다. 그래도 내년의 기대작 네다섯 편을 기다린다. 개인적으로 재개봉은 더 늘어날 거라 생각한다. 극장이 시네마테크화가 되고 있다고 할까.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강세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인 흐름이다. 아 참, 관람 중 스마트폰 사용을 허용하는 상영이 거센 반발에 부딪히는 소식을 들으니 아직 극장에 대한 존중은 있다고 생각한다.

김도훈

희망적이다. 전통의 강자들이 대작으로 복귀한다. 류승완, 연상호, 나홍진이 각자 제일 잘하는 장르로 돌아온다. 대작의 성공이야말로 지금 한국영화에 가장 필요한 요소다. 운명의 해다. 나는 물 떠놓고 빌 작정이다.

김은형

올해 CJ ENM이 투자를 결정한 작품이 <국제시장 2>와 <타짜 4>뿐이라고 들었다. 이 가운데 개봉은 한 작품에 그칠 수도 있다. 이건 매우 상징적이다. 2025년 CJ ENM이 2편을 개봉했으니 더 어렵다는 의미다. 이전의 흥행공식이나 기획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국내 최대 투자배급사가 여전히 오래된 성공 방식을 고수하는 것처럼 보인다. 올해 활기를 보여준 독립예술영화의 도약을 기대해보지만 상업영화는 혹독한 한파가 이어질 것 같다.

홍수정

극장은 더 고전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 콘텐츠를 독점하던 시절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색다른 공간을 요구하는 관객을 잡기에 역부족이다. 거장과 독립영화의 시도는 이어지지만 이를 흡수하고 키울 산업이 빈약하니, 대중영화의 토대는 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체질개선에는 시간이 걸린다. 수년 동안 고군분투가 이어질 것이다. K-콘텐츠만의 OTT, 극장의 리브랜딩, 새로운 영화적 시도가 전부 필요한 시기다.

2025 올해의 한국영화

한국영화의 어려운 상황과 맞닿은 이야기들을 나눴지만, 그 안에서 나름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힘들었던 한 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한국영화’를 뽑아본다면?

김혜선

김도훈

<어쩔수가없다>다. 솔직히 이외엔 뽑을 영화가 없다.

김경수

독립영화에서 뽑지 않는다면 나도 어쩔 수가 없이 <어쩔수가없다>다.(웃음) 그런데 박찬욱 감독이 워낙 압도적이어서 그렇지, <좀비딸>도 언급될 만하다.

김은형

마찬가지다. 작품적으로 보면 수준 있게 완성된 작품은 <어쩔수가없다> 하나이지만, <좀비딸>이 적은 예산으로 관객을 모으기 위해 영리하게 만든 작품이어서 높게 평가해주고 싶다.

홍수정

작품성과 무관하게 <좀비딸>이 육각형 영화인 것 같다. 스타 기용, IP 활용, 홍보 등 많은 요소가 성공적이었고, 이 모든 면들이 잘 갖추어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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