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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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❶

갇혀 있지 않는 영화의 시대로

2025 한국영화 결산 - 비평 대담 ①

SPECIAL ❶

갇혀 있지 않는 영화의 시대로

2025 한국영화 결산 - 비평 대담 ①

진행 _ 김혜선(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사진 _ 임익순
대담 참석자 _ 김경수 영화평론가, 김도훈 영화평론가,
김은형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홍수정 영화평론가(가나다순)

2025-12-01

왼쪽부터 김경수 영화평론가, 김은형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홍수정 영화평론가, 김도훈 영화평론가

왼쪽부터 김경수 영화평론가, 김은형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홍수정 영화평론가, 김도훈 영화평론가

한국영화가 여러모로 힘들었던 한 해다.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는 작품들이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아쉬움 때문에 오히려 개별 영화들과 전체적인 상황에 대해 더 깊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먼저, 올해 한국영화의 전반적인 인상에 대해 듣고 싶다.

김혜선 편집장
(이하 김혜선)

김은형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이하 김은형)

올해 한국 상업영화는 천만 시장에서 이제 500만 이하의 시장으로 정착하는 느낌이다. 상당 기간 최대 관객 수 500만 정도의, 극장 전체 관객 수 1억 명 이하의 시장이 될 것 같다. 반면, 한국 독립영화는 조금 다른 에너지의 싹이 트고 있어서 주목해볼 만하다.

김도훈 영화평론가
(이하 김도훈)

드디어 그런 때가 온 것 같다. 관객들은 내가 뭘 보고 싶은지 모르겠다, 만드는 사람들은 도대체 뭘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하는. 지난 몇 년간 모두가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는데 올해 그 공황 상태가 시대정신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아무도 길을 찾지 못하는, 굉장히 허둥지둥하는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바닥을 치면 내년부터 뭘 좀 찾으려나?’ 하는 헛된 기대마저 품게 되는 해였다.

홍수정 영화평론가
(이하 홍수정)

한국영화의 층이 나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소위 봉준호, 박찬욱 같은 거장 감독들의 영화와 독립영화들, 그리고 흥행에 중점을 둔 상업영화, 이렇게 나뉘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반면 관객들은 찾는 작품들이 다양해지고 수용하는 폭도 넓어졌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하 <무한성편>)이 박스오피스 1위를 한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런 관객들의 니즈를 다각도로 채워줄 수 있는 작품이 지금 한국 상업영화에는 많지 않구나, 그래서 해외 작품들이 선방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반면 한국 독립영화에서는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나오고 있어서 가능성이 보인다.

김경수 영화평론가
(이하 김경수)

지난해 비평 결산에서 김영진 평론가가 “다 망하는 게 낫다”고 얘기하지 않았나.(웃음) 올해가 딱 그런 해라고 생각했다. 이제 한국 상업영화는 관객 수 500만을 넘기 힘들 것 같다. 보편 대중이 사라지는 해가 아닌가 싶다. 관객 일부분만 노리는 타기팅을 해도 잘 되지 않고, 관객 수 500만, 600만을 넘어서는 타기층 자체가 안 잡히는 상황이 되었다.

김도훈

독립영화 이야기를 잠깐 띄우자면 올해 <3670>이나 <3학년 2학기>가 좋았다. 그런데 올해 정도면 <세계의 주인> 윤가은 감독이나 <벌새>(2019) 김보라 감독의 ‘상업영화’가 나왔어야 한다. 한국 상업영화가 이들을 활용해야 하는데, 계속 독립영화 진영에 놔두고 “독립영화로서 괜찮다”고 한다. 한국영화계에 진짜 필요한 인재가 누구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답답하다.

김경수

김초엽 작가의 SF 단편 <스펙트럼>을 영화화하는 김보라 감독의 신작은 원작이 탄탄하니 잘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아예 소식이 안 들린다. SF 등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장르영화를 만들 기회가 남성 감독에게만 주어져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어떤 가능성이 안 보이는 상황인 것 같아서 아쉽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올해 30회 부산국제영화제는 개막작으로 <어쩔수가없다>가 아니라 <세계의 주인>을 선택해야 했다. 그럴 정도의 용단을 내릴 수 있었다면, 그만큼 센세이셔널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면 영화제의 위상을 높이는 동시에 한국영화의 미래를 내다보는 영화제라는 뉘앙스를 관객과 영화계 모두에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아서 무척 안타깝다.

김혜선




가장 주목할 만한, 가장 게으른

이제 올해의 한국영화들 안으로 들어가 봐야겠다. 올해 가장 주목할 만한 시도를 한 영화와 가장 게으르고 안일했던 영화를 얘기해본다면?

김혜선

김은형

올해 주목할 만한 시도를 한 작품은 오히려 독립영화들인 <3670> <세계의 주인> <3학년 2학기>다. 상업영화에서는 없었다. 게으르고 안일한 작품들은 너무 많았다. 그중에서 <히트맨2> <하이파이브> <악마가 이사왔다>를 거론하고 싶다. 특히 <악마가 이사왔다>는 제작 과정에 있어서 내부 사정이 정말 궁금하다. 이 영화의 제작사 외유내강은 거의 실패가 없었던 제작사다. 그런데 결과를 보면 여러모로 미스터리한 작품이다.

홍수정

올해 주목할 만한 시도를 한 작품으로 <에스퍼의 빛>을 떠올렸지만, 독립영화 바깥에서 생각해본다면 <파과>를 꼽고 싶다. 노년의 여성 킬러를 소재로 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했고, 민규동 감독의 색깔이 들어 있었다. 크게 흥행은 못했지만 재미있게 봤다. 게으른 작품은 글쎄, 이게 게으르다는 것과는 조금 다르기는 한데, <전지적 독자 시점>이 특히 관객의 변화를 읽어내는 데 가장 부족했던 영화라고 느꼈다. 지금 관객은 초반의 입소문이랄까, 서로 어떻게 봤는지에 대해서 민감하다. 영화 외적으로 홍보를 어떻게 하는지, 그 과정이 얼마나 친밀하게 다가오는지, 원작을 얼마나 존중하는지, 종합적으로 보고 작품의 인상을 정한다. <전지적 독자 시점>의 제작진은 그것을 간과한 게 아닌가 싶다. 지금 관객이 10년 전과는 다른데, 한국영화가 그 변화를 좀처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준 사례다.

김도훈

올해 그나마 쓸 만하다고 생각했던 영화들은 다 넷플릭스 영화들이었다. 예전에는 극장용 영화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영화를 비평적으로 구분해서 이야기했는데, 이제는 완벽하게 통합되고 있는 것 같다. 개봉 영화로는 묵은 영화이지만 김형주 감독, 이병헌 주연의 <승부>가 좋았고, <야당>도 나쁘지 않았다. 넷플릭스 영화로는 남궁선 감독의 <고백의 역사>와 최근 공개한 변성현 감독의 <굿뉴스>가 좋았다. 올해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된 한국영화들이 오히려 더 재미있어 보이는 이유가 있다. 넷플릭스는 보통의 한국영화들만큼 프로듀싱을 하지는 않는다. 아이디어가 좋고 감독이 있으면 “여기 20억 있으니까 알아서 만드세요”라는 식이었다. 그래서 초창기엔 감독들이 너무 알아서 만드니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영화들이 볼품없었다. 요즘은 변성현 같은 감독들이 넷플릭스의 이런 방식을 잘 이용해서 볼 만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길을 찾은 것 같다. 올해는 OTT 전용으로 만들어졌던 한국영화들이 미학적으로나 대중적으로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훨씬 더 잘 찾아냈다.

반면에 극장 개봉 한국영화들은 오히려 10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가장 게을렀던 영화는 역시 마동석이 나온 영화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다. 한국영화는 지식재산권(IP)이 거의 없다. 우리가 그나마 건져낸 게 마동석이라는 IP인데 <범죄도시> 시리즈를 몇 편 하면서 점점 흥행 성적이 하향했다. 이쯤에서 마동석 IP를 제대로 활용해서 크게 터질 수 있는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마동석만 박아 놓고 다 제멋대인 영화들이 계속 나온다. 이러면 마동석이라는 IP가 끝나 버린다. 대중들이 더 이상 매력적으로 생각하지 않게 된다.

김경수

나는 올해 가장 게으르다고 여겼던 영화가 <검은 수녀들>이다. 솔직히 장재현 감독은 <파묘>(2024) 이후 그 자신이 IP로 올라섰다고 생각한다. <검은 수녀들>은 장재현 감독의 초기작 IP를 가져가서 제멋대로 짜깁기를 하고 불필요한 설정을 덧붙여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검은 수녀들>과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가 한국형 오컬트라는 약간의 유행을 관에 넣고 못을 박아 버렸다. 사람들이 장재현 감독 영화에서 좋아했던 것들은 캐릭터의 관계성과 그 장르에 진심인 감독의 뚝심이다. 그 캐릭터의 관계성들은 다 얄팍하게 줄여 버리고 구마의식의 스펙터클만 30분 동안 벌려 놓아서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히트맨 2>. 한 여자를 둘러싸고 40대 노총각과 30대 모태솔로가 모여서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20년 전 설정이다.

올해 주목할 시도를 한 영화는 나 역시 <에스퍼의 빛>이었고, 상업영화로는 <노이즈>를 꼽고 싶다. <에스퍼의 빛>은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없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꼭 언급하고 싶다. ‘워크숍 영화’라는 게 해외에는 있었는데, <에스퍼의 빛>은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10대의 세계를 그대로 비추는 듯한 느낌이다. <노이즈>는 2023년에 나온 유재선 감독의 <잠>과 함께 언급될 만한 영화다.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장르를 계속 변주하면서 감독 본인만의 색깔을 만들어 나간 좋은 사례였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사운드를 들을 만한 영화라는 반응도 많았고. 중소형 영화들의 탄생을 예고하는 영화 같아서 주목할 만하다.

2025년 한국영화 전반기를 책임지며 337만 관객을 모아
올해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른 <야당>
(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노년의 여성 킬러를 소재로 주목받은 <파과>(왼쪽)와
신선했던 넷플릭스 하이틴 로맨스 <고백의 역사>
(제공=NEW, 넷플릭스)




지금의 시대 정신을 다시 읽자

올해 창고 영화도 아니었던 영화들의 완성도가 심각했다는 것이 공통적인 지적이다. 그리고 각자 생각하는 올해 주목할 만한 영화들에서 <어쩔수가없다>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게 의외다.

김혜선

김도훈

<어쩔수가없다>는 잘되어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190만을 동원했던 <헤어질 결심>(2022) 정도의 흥행이 되길 바랐다. 다행히 관객 수 292만의 성적을 거뒀는데, 사실 우리가 바랐던 결과는 아니었다.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수상을 했다면 한국 관객들이 더 호의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쩔수가없다>를 보는 순간 이런 생각을 했다. 미학적으로 굉장히 완벽한 ‘박찬욱 영화’이고 나는 이 영화가 너무 재미있지만, 관객들이 이 영화의 인물들과 호흡하진 못하겠다고.

김은형

한국 관객은 김도훈 평론가가 말한 것처럼 캐릭터 몰입도를 무척 중요시한다. <어쩔수가없다>에는 감정을 이입하고 싶은 캐릭터가 없었다. 그러나 그게 나쁘다기보다는 ‘박찬욱이 박찬욱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시도, 변화의 흐름을 포착하는 차원에서 이 작품이 언급되지 않을 뿐이다. 이 영화를 홍보한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기생충>(2019)과 매우 결이 다른데, 마치 천만 영화가 될 수 있을 것처럼 홍보했으니까. 캐릭터를 욕하고 응원하는 식으로 마음 편하게 이 영화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약간 ‘멘붕’이 온 거다. <어쩔수가없다>가 지금보다 잘되었더라도 300만에서 500만 사이의 영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김도훈

10년 전 영화를 봤던 20대와 지금 20대는 굉장히 다르다. 지금 20대는 이미 극장과 OTT를 전혀 구분 짓지 않는다. 동시에 박찬욱과 봉준호라는 아티스트에 대해서 우리 세대가 가지고 있는 기억과 존경 같은 게 많지 않다. 재미있는 영화를 보러 가고 싶어서 극장에 갔는데 내가 충분히 이입할 캐릭터가 없으면 그 영화는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세대들이 지금 도착해 있다. <어쩔수가없다>는 사실 극 중의 누구에게도 완벽하게 이입을 할 수는 없다. 젊은 관객들이 소셜미디어에서 거부감을 보인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혹시 박찬욱 영화가 새로운 세대를 끌어들이지 못하기 시작한 건 아닐까. 감독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어떤 세대를 또다시 내 영화의 세계로 불러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다만 <어쩔수가없다>는 사실상 16년 전에 기획했던 영화잖나. 그래서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홍수정

<어쩔수가없다>는 한국인들이 가장 현실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집과 취직, 실직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관객들 반응이 “실직하면 다른 일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집 팔면 되는 거 아니야?” 하는 식으로 나왔고, 박찬욱 감독이 나서서 해명하는 상황까지 왔다. 그런 관객들의 반응을 기획 단계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까?

16년 전 기획한 이야기인데,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대체한다는 게 16년 전에는 굉장히 핫한 주제였지만 지금은 흔한 주제가 되었다. 한국의 토양에서 한국 관객들이 지금 느끼는 것들, 주식이나 코인에 모두가 달려들어 마치 도박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상황, 젊은 세대들의 결혼이나 학력에 관한 치열한 고민, 진짜 지금 세대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들도 이 영화에는 없다. 그래서 예전 작품들에 비하면 관객과의 접촉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김경수

박찬욱 감독이 새로운 세대의 관객을 따라잡으려는 시도를 안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올드보이>(2003)에서 오대수(최민식)가 받는 휴대전화도 그때 당시로는 최신 폰이었다.(웃음) <헤어질 결심> 때도 기도수(유승목)가 유튜브를 하지 않나. <어쩔수가없다>에서는 최선출(박희순)이 숏폼 영상을 찍는다. 일종의 영포티 릴스처럼. 이렇게 시대를 비평하려는 시도는 하는데 그것이 표층에만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이입이 안 되는 느낌이다.

홍수정

그건 봉준호 감독도 마찬가지다. <기생충>은 정말 많은 호평을 받았지만 나는 봉준호 감독이 늘 하던 것을 진짜 완벽하게 해서 그것이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작품 자체는 좀 게으르다고 본다. <플란다스의 개>(2000) 때부터 계속했던 얘기이기 때문에. 그리고 <미키 17>로 관객과의 괴리를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박찬욱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에게 지금의 20, 30대 감독들처럼 생동하는 작품을 찍으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김도훈

그래도 해야 한다. 왜냐하면 마틴 스콜세지 감독도 이제 자신이 직접 시나리오를 안 쓰고, 젊은 작가들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면서 필모그래피를 계속 업데이트하고 있다. 멈추면 안 되기 때문이다. 박찬욱, 봉준호라는 존재는 지금 한국영화의 산업과 예술을 리드하는 사람들이지 않나. 더해서, 부수 캐릭터를 조금 더 보편적으로 빚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헤어질 결심>에서 아내 송서래(탕웨이)를 구타하는 남편 기도수가 롤렉스 데이데이트를 손목에 차고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을 들으면서 등산을 한다거나, <어쩔수가없다>에서 깡소주를 마시는 제지 회사 출신 구범모(이성민)가 어마어마한 오디오 세트로 세련된 옛 가요를 듣는다거나, 그런 것들을 캐릭터에 넣는 순간 이제는 좀 연극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오히려 영화 세계가 좁아지는 느낌도 있다.

김경수

나는 감독이 자기 취향을 마음껏 넣는 건 괜찮은데, 어떤 카테고리 안에 갇혀 있으면 흥미가 떨어지는 것 같다. 올해 개봉한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이하 <레제편>) 같은 경우도 만화 원작자 후지모토 타츠키가 시네필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다니면서 온갖 것을 레퍼런스로 삼는다. 그 레퍼런스를 찾는 재미가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많이 화제가 된다. 결국 찾는 재미를 주느냐 아니면 어떤 카테고리 안에 그저 갇혀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해외 호평과는 달리 국내 관객들의 호불호가 갈렸던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제공=CJ ENM)



지금 한국영화 산업의 중심이었던 거장 감독들이 젊은 세대와 괴리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는 정말 젊은 감독들이 필요하고, 윗세대의 감독들은 젊어지도록 노력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지금 세대의 시대정신을 조금 더 타자화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신작을 들고 온 ‘올드보이’들의 귀환이 유효했는지 더 얘기해보고 싶다.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는 언급되었으니, 연상호 감독의 <얼굴>, 강형철 감독의 <하이파이브> 등이 여기 속하는 것 같다.

김혜선

김도훈

<하이파이브>를 간단히 요약해서 말하자면 올해 가장 실망스러운 영화 가운데 하나였다. 워낙 덩치가 큰 영화, 이름값이 있는 감독, 거기에 스타들이 출연하는 영화였기 때문에. 전반부의 몇몇 액션 장면들은 컴퓨터그래픽(CG)을 이용해서 재미있게 한국식으로 짜긴 했지만 결국 마지막에 큰 스펙터클을 뽑아내려고 노력했는데, 이건 우리가 15년 전 할리우드 영화에서 이미 본 것들이다. 더 이상 특수효과를 통해서 할리우드와 비슷하게 만들어보려는 한국 블록버스터는 이제 의미가 없다는 가르침을 줬다.

김경수

앞서 얘기했던 <노이즈> 같은 경우가 특수효과의 이질감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 영화인데 충격타를 줬지 않나. 한국영화는 오히려 특수효과가 과하지 않은 담백한 방향으로 가야 더 좋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김은형

<하이파이브>는 앞서 나온 이야기에 모두 동감한다. <얼굴>은 사실 내용적으로 그렇게 뛰어난 영화인가 싶다. 3억짜리 영화라는 시도 자체가 매우 중요하고, 연상호라는 상징적인 인물이 방향을 틀어서 이런 시도를 했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긴 하다. 배우들과 스태프들도 러닝 개런티로 붙으면서 여러 가지 비용을 줄일 수 있었고. 다만 이 모든 기획이 연상호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독립영화를 만드는 다른 감독 같으면 배우 박정민을 그렇게 주연으로 캐스팅하거나 세트를 그렇게 활용하는 게 쉽지 않다. 3억짜리니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는 반응은 다른 독립영화들이 누릴 수 없는 것이다. 완성도와 상관없이 상영관을 이만큼 잡는 것부터 불가능하다. 지금 한국영화의 돌파구로서는 유의미한 시도이지만 분명 한계가 있다.

홍수정

<얼굴>의 연상호 감독은 어쨌든 ‘다음 세대’라는 느낌은 있다. 애니메이션과 실사, 극장용 영화와 OTT 플랫폼을 넘나들면서 계속 활발하게 활동하는 감독이다. <얼굴>도 물론 지속될 수 있는 시도는 아니지만 연상호 감독의 작품 가운데, 내적으로 가장 간결하고 미니멀했다. 짧은 기간 내에 촬영해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다루고 있는 소재도 동시대적이다. 지금도 유효한 이슈이고. 나는 그래서 <얼굴>이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김도훈

나는 <얼굴>이 약간은 퍼포먼스 같았다. 연상호 감독은 그간 넷플릭스에서 큰 제작비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결과가 계속 실망스러웠다. 넷플릭스 영화 <정이>(2023)의 경우, 배우의 연기를 감독이 좀 더 통제해야 했다. 그 부분이 연상호 감독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얼굴>은 그 약점이 많이 상쇄된 것 같다. 적은 숫자의 배우들과 간결한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면서 한 장면을 찍을 때 더 오래 생각을 해야 하니 더 좋은 영화가 나왔다.

그런데 요즘 독립영화들도 10억 정도는 든다. 3억이라는 돈으로 모든 도움을 다 활용해서 영화를 찍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얼굴>은 독립영화가 아니다. 상업영화다. 독립영화 만드는 사람들은 <얼굴>을 두고 ‘이게 뭐지?’라고 생각했고, 상업영화를 만드는 이들에게는 ‘감독에게 돈 많이 줄 필요 없네. 5억 주고 이 정도 뽑아보게 하자’는 식으로 생각할 여지를 남겼다. 감독 개인에게는 성과가 좋았지만 산업 전체로 봤을 때 절실하고 의미 있는 시도였나? 다음 영화를 보아야 제대로 파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연상호 감독이 가고 싶어 하는 길이 무엇인지.

연상호 감독이 제작비 3억 원으로 만든 <얼굴>(왼쪽),
강형철 감독이 스타들을 내세워 액션영화 연출에 도전한
<하이파이브>
(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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