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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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❶

갇혀 있지 않는 영화의 시대로

2025 한국영화 결산 - 비평 대담 ②

SPECIAL ❶

갇혀 있지 않는 영화의 시대로

2025 한국영화 결산 - 비평 대담 ②

진행 _ 김혜선(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사진 _ 임익순
대담 참석자 _ 김경수 영화평론가, 김도훈 영화평론가,
김은형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홍수정 영화평론가(가나다순)

2025-12-01

왼쪽부터 김경수 영화평론가, 김은형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홍수정 영화평론가, 김도훈 영화평론가

왼쪽부터 김경수 영화평론가, 김은형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홍수정 영화평론가, 김도훈 영화평론가

서브 컬처가 메인으로

한국영화 IP 활용의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할 부분이 많다. 올해 유명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과 웹툰 <좀비가 된 나의 딸>(이하 <좀비딸>)이 영화화되었고, 향후 영화화 혹은 드라마화 되는 슈퍼 IP들이 계속 등장할 것이다.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과 <좀비딸>은 올해의 두드러진 실패와 성공이었다. 그 모두 각각의 의미가 있을 텐데.

김혜선 편집장
(이하 김혜선)

김도훈 영화평론가
(이하 김도훈)

IP를 가장 잘 활용하는 나라는 일본이다. 그들은 십수 년간 연재되어서 이미 많은 미디어로 활용된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큰돈을 들여서 넷플릭스에 공개하고, 할리우드에서 개봉한다. 올해 북미 시장에서 <레제편>과 <무한성편>이 북미 영화 블록버스터급으로 굉장히 흥행했다. 이제 일본 애니메이션은 서브 컬처가 아니다. 중심으로 올라갔다. 이 파괴력이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한국은 IP를 관리해서 끊임없이 이어가려는 시도를 잘하지 못하는 나라다. 기본적으로 저작권 관련 법적 문제들이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어느 순간 때를 놓쳤다. 그리고 웹소설과 웹툰은 성공했더라도 아직까지 보는 사람이 한정된 미디어다. 크게 성장할 IP의 베이스다. 이걸 영화로 혹은 드라마 믹스로 성공을 시켜야 그때부터 IP가 되는데, 거기서 계속 실패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과연 영화화를 할 만한 웹소설이었는지 의문이다.

김경수 영화평론가
(이하 김경수)

<전지적 독자 시점>은 웹소설로 특화된 형태이기 때문에 영화로 옮겨 오면 100%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웹툰화까지는 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원작이 지닌 제4의 벽과 댓글 등 웹소설 문법을 영화에 구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전지적 독자 시점>의 원작과 영화를 각각 분리된 IP로 봐야 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인기 웹소설을 원작으로, 300억 제작비가 투입된
<전지적 독자 시점>은
관객 수 106만 명이라는 아쉬움을 남겼다(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홍수정 영화평론가
(이하 홍수정)

IP로서의 웹툰이나 웹소설을 생각하면 한국도 다른 국가에 비해서 굉장히 잠재력은 크다. 우리도 워낙 쌓여 있는 것들이 많다. 물론 그것들을 영화화한다는 건 또 다른 문제이지만. <좀비딸>의 성공은 매우 복합적인 문제다. <좀비딸>이 애초부터 의도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지금 관객들에게 매우 시의적절하게 다가갔다고 생각한다. 영화 개봉을 홍보할 때부터 이미 그 영화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좀비딸> 배우들이 유튜브 채널에 나갔을 때의 모습이 영화의 분위기와 잘 이어지게 가족적이었다. 주연인 조정석 배우뿐만 아니라, 조연인 윤경호 배우까지 토크쇼에서 굉장히 어필했다. 전반적인 상황이 최근 관객들의 감수성과 잘 맞았던 것 같다. 이제는 영화를 만들고 홍보하면서 모든 것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시기인 것 같다.

김경수

전형적인 플롯에 대한 지겨움도 있는 것 같다. <84제곱미터>의 경우, 완성도가 그렇게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스토리가 어디로 흘러갈지 몰라서 관객을 붙들어 놓는 능력은 있었다. 계속 사건이 벌어진다. 인과성이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인데, 어쨌든 관객은 전형적인 플롯에서 벗어나서 계속 자신을 붙들어 놓는 듯한 느낌을 받기를 원한다. <레제편>이 인기를 얻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원작 만화가 후지모토 타츠키가 안티 플롯을 주로 쓰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장면을 제시한 다음에 ‘이건 전형적이네’ 싶은 요소를 다 제거하는 방식으로 플롯을 전개한다. 관객은 다음 장면이 예측이 안 되기 때문에 거기서 쾌감을 느낀다. 한국영화들은 너무 예측이 된다. 전형성을 벗어나려는 노력, 그 노력에 투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좀비딸> 같은 경우는 성공 요소로 싱크로율 높은 주조연 배우들의 캐스팅을 들 수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애용이의 출연이었다.(웃음) 실제 고양이를 데려와서 출연시켰는데, 연기를 너무 잘했다. 이 영화의 홍보 단계부터 SNS에 바이럴로 애용이 사진을 뿌리면서 홍보를 했다. 애용이만 잘 만들었다면 이 영화를 보러 갈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심어줬다.

김도훈

나도 의외로 <좀비딸>을 무척 재밌게 봤다. 중간 즈음 내가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장면들이 계속 나오는데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가, 그 이유를 정확히 알게 되었다. 조정석이었다. 지금 할리우드도 스타 시스템은 무너지고 있다. 글렌 포웰(<탑건: 매버릭>(2022), <트위스터즈>(2024) 등) 같은 배우를 차기 스타로 밀어서 나온 영화들도 다 성공하지 못했다. 한국은 송강호가 나오는 영화는 조금 보러 가고, 이병헌은 믿고 보러 간다는 것 외에 다른 배우들은 파워가 거의 없었다. 조정석은 전작 <파일럿>(2024)은 설정이 말이 안 되는 영화인데, 흥행도 되었고 재미가 없지 않았다. 그러니까 현재 한국영화의 최고 스타는 조정석이다. 마동석이 아니다. <좀비딸>은 조정석이 아니었다면 스토리가 성립이 안 된다. 조정석의 연기가 말이 안 되는 설정까지 다 살린다. 그걸 보면서 생각했다. 스타를 더 발굴해야겠다!

홍수정

예전에 차태현 배우가 가족영화를 많이 했고, 열광적인 팬덤을 보유한 건 아니지만 영화에 나오면 무조건 흥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코미디도 잘하고. 조정석 배우는 차태현 배우의 포지션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김도훈

미학적으로 뭔가 해내는 감독들도 필요하지만 지금은 상업영화를 잘 만드는 새로운 감독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더 테러 라이브>(2013)의 김병우 감독이 연출했는데, 아무래도 연출보다 제작의 실패라는 생각이 들어서 김병우 감독의 다음 영화를 기다리려고 한다. 넷플릭스에서도 또 다른 대작을 공개할 예정이니. <좀비딸>의 필감성 감독 같은 경우, 전작 <인질>(2021)도 재미있었다.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고, 자기 생각이 있는 상업영화 감독이다. 이 두 감독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이런 감독들이 하나씩 생겨난다는 것은 좋은 신호다.

<엑시트>(2019)와 지난해 <파일럿>, 올해 <좀비딸>까지 코미디 장르 흥행에 성공하며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 잡은 조정석(제공=NEW)



발칙한 다음 세대를 호출하자

그렇다면 한국 상업영화에서 ‘다음 세대’로 좀 더 확실히 포지셔닝을 해줄 수 있는, 우리가 반드시 거론해야 할 감독과 배우들의 이름이 더 있을까?

김혜선

홍수정

변성현 감독이 평가 절하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디어와 기획이 좋고 자기만의 어떤 세계, 세계관을 계속 만들어 간다는 게 의미가 있다. <길복순>(2023)은 관객들이 욕을 하면서도 어쨌든 많이 봤다.

김경수

최근 한국영화들이 발칙한 시도 같은 것들을 거의 안 했는데, 변성현 감독이 <굿뉴스>에서 사운드를 끊었다가 냈다가 하는 시도들을 보여준 것도 너무 신선했다.

김은형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이하 김은형)

<길복순>보다 <굿뉴스>를 더 재미있게 봤다. 변성현 감독의 영화를 비판할 때 어디서 많이 본 장면들을 짜깁기한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그런데 한국 상업영화가 실패하는 건 짜깁기도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다. <범죄도시>가 1편, 2편, 3편까지 잘되고 4편은 조금 주춤했지만 매번 많이 본 이유도 짜깁기가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짜깁기는 상업영화의 매우 중요한 미덕이다. 변성현 감독은 그걸 잘해서 ‘지루하지 않은 영화’를 만든다. 이제 40대인데, 앞으로도 굉장히 눈여겨봐야 할 감독인 것 같다.

김도훈

나도 변성현의 영화들이 너무 좋다. 김은형 기자의 지적이 맞는 게, 지금은 새로 데뷔하는 감독들에게 레퍼런스가 너무 많은 시대다. 그 레퍼런스를 스마트폰으로 빨리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 이런 현상이 생겼다. <스타워즈>와 <심슨> 시리즈가 대표적인데, 시작한 지 40여 년 정도 되었으니까 젊은 제작진들이 들어와서 새로운 시리즈를 만든다. 그런데 젊은 제작진들이 대부분 이 시리즈의 팬이었던 사람들이다. 레퍼런스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새로운 것보다 패러디 같은 게 계속 나오게 되었다. <스타워즈> 시리즈가 계속 재미없어지게 된 큰 이유 중의 하나다. 이를테면 우리가 좋아했던 요다를 더 귀엽게 만드는 쪽으로 생각한다. 액션영화, 장르영화 감독들은 심지어 20년 전의 감독들에 비해 특수효과 레퍼런스가 너무 많아졌다. 오리지널리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이런 시대에 과연 오리지널리티가 중요한가? 레퍼런스를 많이 활용하든 클리셰를 활용하든 컨벤션을 따르든,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싶다는 게 지금 관객들의 입장인 것 같다.

김경수

<전지적 독자 시점>과 <굿뉴스>의 차이점을 생각해보면 <굿뉴스>는 어느 순간에 이 상황이 망가진다든가 하는 B급의 테이스트들이 있는데, <전지적 독자 시점>은 모든 면에서 ‘가오’를 잡고 있다. 모든 장면을 다 예쁘게 뽑아서 보여주려고 한다. 이런 걸 보면 상업영화가 지니는 ‘망가지는 맛’ 같은 것들이 한국영화에서는 증발되는 것 같다. <굿뉴스>에서 김성오 배우가 연기한 부기장 마에다처럼 이질적인 캐릭터가 <전지적 독자 시점>에도 필요했다.

홍수정

맞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캐스팅도 다 멋있잖나. 어쨌든 상업영화의 미덕은 성공시키는 것이고 그건 감각이 전부인데, 요새 한국영화는 ‘그게 왜 이렇게 힘들지?’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김도훈

다음 영화가 가장 기대되는 한국 감독이 누구냐고 한다면, 나는 김성수 감독을 꼽고 싶다. <서울의 봄>(2023)은 너무 잘 만든 현재적인 영화이면서, 영화 장인이 만들었다고 느낄 수 있는 완성도가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영화를 드문드문 만들어 온 김성수 감독 같은 분이 계속 영화를 더 만드는 게 지금 한국영화계에서 리더십이 되어줄 것 같다. 얼마 전 개봉한 이상일 감독의 영화 <국보>가 일본에서 천만 영화가 될 만큼 성공했는데, 이상일 감독 역시 영화를 30, 40년간 만들어 왔다. 이런 감독들이 끊임없이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감독들도 오래 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할리우드도 나이 든 거장들이 아직까지 상업영화를 만들고 있지 않나. 한국영화는 크리스토퍼 놀란 한 명이 필요한 게 아니라 리들리 스콧 같은 감독이 여러 명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영화계의 생태계가 제대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 김성수 감독 같은 분들이 계속 영화를 만들어줬으면 좋겠고, 그런 프로젝트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굿뉴스>에서 개성 있는 시도들로 보는 이들을 사로잡은 변성현 감독(제공=넷플릭스)



김은형

배우로는 <굿뉴스>에서 홍경 배우가 드디어 메인 스트림에서 존재감이 큰 배우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코미디도 되고 드라마도 되고 멜로도 된다. 액션은 아직 모르겠지만. 지난해 나온 <청설>(2024)도 드라마와 코미디의 감각을 다 보여줬다. 진짜 스타가 된 것 같다. 그리고 상업영화는 아니지만 <3670>이 탈북과 성소수자라는 마이너한 두 개의 소재를 다루면서도 굉장히 상업적인 감각으로 찍었는데, 주인공을 맡은 조유현 배우가 적당히 촌스러우면서도 매우 섹시하게 등장한다. 앞으로 어떤 감독을 만나는가에 따라서 상업영화에서도 역량 있는 배우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김경수

홍경 배우는 연기도 잘하고 SNS로도 자기 이미지를 잘 만들어 가고 있다. 명품 조연 같은 경우는 올해 <야당>과 <노이즈>에 나왔던 류경수 배우를 꼽고 싶다. 선인지 악인지 모르겠는 마스크도 좋고 연기를 정말 잘한다. 그리고 <세기말의 사랑>(2024), <보통의 가족>(2024), <오징어 게임> 시즌3(2025)에 나왔던 노재원 배우도 있다.

김은형

류경수 배우는 주연급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멜로도 가능하고 장르를 넘나드는 훈련도 되어 있어서 계속 성장한다면 가능할 것 같다.

<굿뉴스>에서 존재감을 입증한 홍경(왼쪽)과
<야당>
<노이즈>에서 조연이지만 주연급 활약을 펼친 류경수
(제공=넷플릭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애니메이션과 재개봉, 취향의 파편화

올해 한국 애니메이션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 <퇴마록> <킹 오브 킹스> <이 별에 필요한> <연의 편지>, 각색 방향과 완성도가 나쁘지 않았던 <나쁜계집애: 달려라 하니>까지. 이런 일련의 흐름을 봤을 때 한국 애니메이션은 진화하고 있을까? 아니면 그렇게 보이는 것은 착시일까?

김혜선

김경수

<이 별에 필요한>과 <나쁜계집애: 달려라 하니> 모두 상당히 좋았다. <연의 편지>도 봤는데 <나쁜계집애: 달려라 하니>가 더 독특하다고 느껴졌던 부분이 있다. <달려라 하니>라는 IP는 분명 오래된 IP인데, 그걸 재해석했을 때 ‘백합’(편집자 주-여성들끼리의 사랑과 우정, 연대를 모두 포함하는 서브 컬처 장르를 일컫는 용어)이라는 코드로 소비할 수 있는 요소를 처음으로 갖춘 한국 애니메이션으로 보였다. SNS상에서도 그런 얘기가 많이 나왔다. 물론 제작진은 공식적으로는 부정했지만, 관객이 캐릭터의 관계성을 추측하면서 마음대로 놀 자유를 준 첫 번째 한국 애니메이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파묘>가 천만 관객이 넘게 흥행을 한 이유 중의 하나가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연)의 관계성을 가지고 노는 2차 창작물들이 많이 생겨났고, 관객들이 캐릭터를 많이 가지고 노는 문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나쁜계집애: 달려라 하니>는 관객 수가 7만 명 정도에 그쳤지만, 그런 문화를 인식하게 한 첫 한국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김도훈

애니메이션은 만드는 과정의 시간이 점점 단축되고 있고, 이제 AI 기술이 가장 빠르게 영향을 미칠 분야이기도 하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 때문에 아마 지금 영화 제작사들이 대부분 머릿속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을 염두에 두고 있고, 비슷한 콘셉트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다. 그래도 양이 늘어나면 질도 좋아진다고 걸 믿고 있다.

김은형

나도 동의한다. 사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전에도 한국 실사영화 제작사들이 애니메이션을 준비한 사례가 많다. <서울의 봄>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도 그중 하나이고. 전 세계적으로 상업영화에서 규모가 커질 수 있는 분야는 애니메이션밖에 없다는 시장조사가 벌써 지난해부터 나왔지 않나. 한국도 이 좁은 시장을 조금이라도 확장하려고 많은 이들이 애니메이션에 뛰어들고 있고, AI 때문에 더욱더 달려들고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불쏘시개가 되어 또 다른 좋은 작품이 2~3년 안에 분명히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김경수

한국 실사영화에 대한 불신과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신뢰가 커진 이유,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2021), <무한성편>이 흥행한 이유 중의 하나가 시각효과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정확한 제작비는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무한성편>의 제작비가 실사영화인 <전지적 독자 시점>의 제작비와 차이가 크지 않다고 추정되는 중이다. 만약에 사실이라면 놀랍다. 그런데 <전지적 독자 시점>의 경우는 배우 캐스팅 비용이 매우 높다. 배우 출연료에 돈을 다 썼기 때문에 우리가 즐겁게 볼 수 있을 만큼의 CG 퀄리티를 내지 못한다. 그런데 <무한성편>은 그 비용을 다 시각효과에 썼으니 얼마나 볼거리가 많으냐는 예찬이 많았다.

홍수정

애니메이션 시장이 가능성이 큰데, 올해까지만 보자면 각개전투의 모양새여서 좀 더 지켜봐야 되겠다는 정도로 생각한다. 아직은 한국 애니메이션만의 국적성, 지역성 같은 것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1988년작에서 이어지는 후속편이지만,
오늘날에도 통하는 한국 애니메이션 IP임을 보여준 <나쁜계집애: 달려라 하니>
(제공=NEW)



한국 애니메이션의 선전이나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얘기들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계속 언급되었던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외화들이 한국 박스오피스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과도 연계될 수 있을 것 같다. 해외 아트하우스 영화들의 개봉은 물론이고, 해외 거장들의 구작들도 재개봉 열풍에 휩싸여 있다. 이런 상황들이 계속 연장될 분위기인데.

김혜선

김도훈

재개봉의 시대가 올 것 같다. 할리우드는 올해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1975)를 재개봉해서 엄청나게 흥행했고 <스타워즈>(1977)의 재개봉만으로도 약 7천만 달러를 벌었다. 재개봉을 하는 영화마다 돈을 벌고 있다. 리마스터링만 하면 되니까. 이번 주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1위가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다. 마이클 잭슨 전기영화 <마이클> 트레일러가 공개됐는데, “이 영화 뭐지?” 하면서 10대, 20대들이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스포티파이로 ‘스릴러’ 뮤직비디오를 엄청나게 보면서 순식간에 빌보드 차트 1위로 올라와 버렸다.

그러니까 이제는 시대가 상관이 없다. 취향에 시대가 없어지고 있다. 그 흐름이 영화로 넘어오고 있고. 칸국제영화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상 받은 신작들은 잘 안 보는데, 10년 전 영화를 재개봉하면 너무 잘 된다. <멜랑콜리아>(2012)도 그랬다. 극장이 OTT와 거의 통합되면서 어떤 시대의 영화인지는 상관없이 재미있는 것만 보러 가는 시대가 됐다. 이제 극장용 영화를 많이 만들지 않는 시대가 되면 오히려 아카이브를 뒤져서 계속 재개봉하겠지. 재개봉의 시대는 확실히 더 단단하게 올 것이다.

김경수

우리가 흔히들 두꺼운 고전을 두고 이런 걸 읽으려면 병원에 입원해야 가능하다는 농담 같은 걸 하지 않나. 요즘 세대는 이제 극장을 스스로의 감금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스마트폰이나 TV로 OTT의 고전영화를 볼 때 잘 집중이 안 된다. 그런데 극장에 가서 보면 그나마 집중할 수 있고, 어쨌든 스스로를 가둬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고전영화는 교양에 속하고, 그런 교양을 챙기기 위해서 스스로를 감금하는 데에 쾌감을 느낀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하나의 챌린지 문화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관련해서 최근에 눈여겨볼 만한 사례가 있었다. 소규모 행사였지만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렸던 밸라 타르의 영화 <사탄탱고>(1994) 상영회가 매진되었다. 러닝 타임이 거의 8시간짜리(439분) 영화다. 3월 22일, 무려 7개월 전의 이야기다.

김은형

관객들이 불확실한 모험을 하기보다는 확실한 영화를 보고 싶어 한다. 과거에 인정받았던 작품을 보는 건 그 이유가 큰 것 같다.

김도훈

그래서 난 <아바타: 불과 재>보다 <에이리언 2>(1986)를 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다.(웃음)

홍수정

확실히 영화가 시간성이 없어진 것 같다. 극장 개봉 신작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OTT에서 신작들이 더 주목을 받고, 극장에서는 “내가 그냥 재미있으면 본다, 그게 언제 개봉했던 거라도”와 같은 움직임이 있다. OTT 같은 경우도 예전 시트콤이나 <여명의 눈동자> 같은 드라마를 지금 세대가 갑자기 다시 보는 흐름들을 보고 있으면 확실히 시간성이 흩어진 것은 호신호인 것 같다.

김도훈

지금 음악도, 패션도, 디자인도 모든 게 다 뒤섞이고 있다. 사람들이 가을 신상 옷을 안 산다. 오히려 1960년대, 1970년대 빈티지 옷을 산다. 패션 트렌드가 사라졌고, 스파(SPA) 브랜드도 가라앉고 있고, 디자이너 브랜드들의 매출이 떨어지고 있다. 트렌드가 없어졌다. 영화도 그렇지 않나. 트렌드가 없다. 전 세계적으로 모든 문화가 정체 시기가 오면서 파편화가 되고 있다. 취향의 파편화. 홍수정 평론가가 시간성이 흩어졌다고 얘기했는데, 그래서 지금 영화는 매우 희한한 시대를 맞이했다고 생각한다.

김경수

이와이 슌지의 <피크닉>(1996)과 <릴리 슈슈의 모든 것>(2001)도 재재개봉을 했다. 1990년대 영화와 2000년대 영화인데, 지금 세대와 맞는 감성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그 인스타그램의 매거진 계정 같은 데서 ‘우울한 영화 몇 선’ 하면 꼭 들어가는 게 <피크닉>과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취향의 파편화가 이루어지면서 영화들이 각개전투를 하게 되고, 다시 중심으로 올라오고 있다. 이외에도 키니마나 소리그림 등 작은 규모의 상영단체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마이크로시네마가 소소한 열풍을 불러오고 있다.

홍수정

그러니 이제는 대중성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예전처럼 기획해서 ‘올해의 천만영화는 우리다’ 같은 의식 없이 타깃층을 더 좁게 가야 할 것 같다. 그래야 그나마 팬덤을 확보할 수 있고, 팬덤을 확보한 영화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재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략을 달리해야 할 시기다.

김경수

<레제편> 같은 경우도 원작이 <귀멸의 칼날>에 비해서 마니악한 편에 속해서 아무도 이 정도의 흥행 예측을 못했다. 물론 <룩백>이나 <후지모토 타츠키 단편선> 등 후지모토 타츠키 원작을 영화화할 정도로 마니아층이 두터운 건 안다. 그런데 한국 관객 335만이 들 정도로 흥행했다. 그 이유를 하나로 정리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건 관객들은 <파묘> 때처럼 캐릭터를 갖고 놀 수 있기를 바라는 것 같다. 일단 작품 자체가 워낙 잘 만들어졌다. 연출도 세련되었고. 그런데 지금은 OTT에서 <체인소 맨> 시리즈 애니메이션을 먼저 보고 극장판을 접할 수 있다는 것도 크다. 팬데믹을 거치며 OTT에 올라온 애니메이션을 보는 문화도 자연스러워졌다. 서브 컬처가 메인 스트림에 가까워진 셈이다. 과거엔 원작 애니메이션을 보려고 하면 인터넷에서 검색한 후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를 찾아야 했다. 이젠 OTT가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볼 수 있는 창구를 열어줘서, 시리즈를 정주행하고 극장판에 진입할 수가 있는 거다.

또한 특전을 모으고, 2차 창작을 하는 ‘오타쿠’ 등이 SNS와 커뮤니티에서 맹활약하면서 <레제편>은 밈으로 등극했다. “도시 쥐가 좋아? 시골 쥐가 좋아?”나, “덴지 군이 모르는 거, 내가 전부 알려줄 게” 등은 이제 곳곳에서 패러디하는 대사다. 또한 요네즈 켄시의 ‘IRIS OUT’, 우타다 히카루와 함께 부른 ‘JANE DOE’가 지금 음악 차트를 장악하고 있다. 이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애니를 보러 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김도훈

그래서 <파묘>가 빨리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만들어 IP를 이어가야 한다. 쇼박스는 뭘 하고 있나.(웃음) 캐릭터들도 애니메이션 만들기 너무 좋은데. <파묘>는 이미 웹툰이 나왔어야 하고, 남자 주인공 둘에 대한 스핀오프도 나왔어야 한다. 할리우드라면 아마 지난 2년 안에 너무 많은 걸 했을 거다. 김고은의 캐릭터 화림으로는 ‘백합 오컬트’를 또 하나 만들 수도 있었을 거다.

김은형

IP는 빌드업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IP라고 얘기는 하지만 그냥 웹툰이나 웹소설을 원작으로, 소스로만 활용하지, IP에 대한 인식은 매우 미흡하다. IP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를 못하는데 중요하다고 하니까 IP 얘기만 할 뿐인 거다.

홍수정

한국 관객도 IP가 제대로 갖춰지면 굉장히 열광할 수 있는 폭발력은 충분히 갖췄는데, 그 부분을 파고드는 작품이 없다는 게 너무 아쉽다. 요즘 관객은 한 번 마음에 들었다 하면 N차 관람을 하고, 굿즈 내놔라 하면서 총알을 완전 빵빵하게 준비하고 있는데, 그 총알이 모두 외화로 빠지고 있으니까. 한국영화가 아예 DNA부터 바뀌어야 될 것 같지만, 향후 2, 3년은 더 헤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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