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①

내일을 훔쳐보는 몽상가들

<리틀 드리머즈>

2026-08-10

글 _ 이지혜(영화평론가) 사진 제공 _ 필름다빈

  • 요행을 좇는 청년과 꿈을 잃은 소녀가 연결되는 기묘한 여정

  • 타인의 고통을 마주하는 환상…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깊은 시선

  • 오늘의 상처를 딛고 열린 내일로 다시 걷는 <리틀 드리머즈>

꿈이 변해 온 청년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숲에서 건우(유희제)가 헤맨다. ‘띵동’ 소리와 함께 그는 눈을 뜨지만, 현실의 삶은 여전히 출구 없는 꿈처럼 흔들린다. 말하자면 꿈은 잠들었을 때 보는 것이고, 희망은 깨어 있기 위해 꾸는 것이다. 영화 <리틀 드리머즈>는 ‘꿈’이라는 하나의 단어 안에 몽(夢)과 장래 희망,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바람을 포개 놓으며,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과 삶을 다시 시작하는 각성 사이의 거리를 따라간다. 이 첫 장면은 미래를 향한 꿈이 어느 순간 현실을 견디기 위한 환상으로 기울어지는 과정을 예고하는 듯하다.

서른두 살 건우는 야구용품 판매 사업에 실패한 뒤 친구 재성의 집에 얹혀산다. 쌓여 가는 빚과 밀린 월세, 아버지의 전화, 방 안을 가득 채운 야구용품 상자가 그의 시간을 붙들고 있다. 중고 장비를 사러 온 청년에게 배트와 글러브를 건네던 건우는 그가 처음 야구를 시작했다는 말을 듣자 만 원을 돌려주고, 운동을 마친 뒤 파스를 골고루 뿌려야 다치지 않는다고 당부한다.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도 초보자의 부상을 걱정하는 짧은 행동에는 한때 야구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의 초상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있다. 상자 안에 쌓인 물건들은 실패한 사업의 재고이면서 건우가 아직 처분하지 못한 장래 희망의 흔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야구용품을 판매한 건우는 곧바로 야구 경기 결과에 돈을 건다. 한때의 그가 직접 뛰었던 야구는 사업의 상품이 되었다가 스포츠 도박의 숫자로 바뀐다. 하는 야구에서 파는 야구로, 파는 야구에서 베팅하는 야구로 이동한 시간은 건우의 꿈이 변해 온 과정을 보여준다. 야구 선수를 꿈꾸었던 소년은 이제 경기의 결말을 미리 맞혀 인생을 뒤집고 싶어 하는 어른이 되었다. “인생 한 방”이라는 외침은 희망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미래를 기대할 힘을 잃어버린 청년의 조급함이 배어 있다.

희망이 요행으로 변하는 순간

건우에게 집을 비워 달라는 재성(방태원)의 통보가 이어진 뒤, 아이의 웃음소리와 방울 소리가 어지럽게 얽혀 든다. 천진한 아이가 야구방망이를 휘두르고, 연약한 강아지가 앙앙거리며 짖는다. 말끔하게 빠진 치아가 거실 바닥을 나뒹구는 건우의 기이한 꿈속. 이 꿈을 두고 꿈속의 사람들은 길몽과 흉몽을 따진다. 현실의 실패를 한순간에 뒤집고 싶어 하는 건우의 욕망, 야구와 돈에 관한 기억이 뒤엉킨다. 모든 것이 개꿈처럼 우스꽝스럽게 펼쳐지지만, 그 장면은 건우가 품어 온 희망까지 허망한 꿈으로 변해 버린 상태를 비춘다.

건우는 스포츠 도박에서 예상이 적중해 큰돈을 얻는다. 꿈에서 본 야구 경기의 결과가 현실에서 그대로 펼쳐지면서, 그는 꿈을 미래를 선점하는 도구로 받아들인다. 자신이 걸어갈 미래를 만드는 대신 미래의 결과부터 알아내려는 것이다. 사업 실패와 빚, 친구에게 얹혀사는 수치심은 거액의 돈 앞에서 잠시 사라진 듯 보인다. 건우는 밀린 월세를 갚고 친구들에게 돈을 나눠 주며, 먹고 싶은 것을 모두 주문하자고 외친다. 돈은 잃어버린 우정과 자신감까지 되찾은 듯한 착각을 선물하지만, 그가 다시 세워야 할 삶의 기반까지 만들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행운으로 얻은 희망은 행운이 사라지는 순간 함께 증발한다. 돈이 든 지갑이 사라지자 건우의 세계는 다시 무너진다.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건우가 붙든 것이 삶을 지속시키는 희망보다 확률에 기대어 얻은 흥분에 가까웠음을 드러낸다. 잘될 것이라는 바람이 요행을 향한 집착으로 변할 때, 꿈은 미래를 여는 상상력보다 현재를 견디지 못하게 만드는 환각으로 작동한다.

방울을 깨야 꿈에서 깨어난다

꿈속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는 세탁기다. 현실의 세탁방과 기묘한 숲이 서로 포개지고, 세탁기 안으로 사라진 요섭(이하랑)을 따라가면 방울과 우거진 숲이 나타난다. 세탁기가 오염된 것을 씻어내는 생활 도구라면, 영화 속 세탁기는 엉켜 있는 기억과 감정을 반복해서 돌려보는 내면의 장치처럼 보인다. 세탁방의 일상적인 풍경이 숲의 환상과 겹쳐지면서 꿈과 현실의 경계 역시 끊임없이 흔들린다.

방울에 난 틈은 열쇠 구멍을 닮았다. 영화는 방울을 익스트림 클로즈업한 뒤 그 작은 구멍을 하나의 프레임처럼 활용해 건우를 바라본다. 문고리의 열쇠 구멍이 문 너머의 풍경을 부분적으로 엿보게 하듯, 방울 역시 미래 전체보다 단편적인 장면만 보여준다. 건우는 미래로 직접 걸어가기보다 그 틈으로 결말부터 훔쳐보려 한다. 방울의 좁은 시야는 미래를 알고 싶다는 욕망과,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만 골라 보고 싶은 건우의 조급함을 함께 형상화한다.

아기 동자를 연상시키는 요섭은 꿈을 안내하는 존재이면서 건우와 미나가 외면해 온 마음을 끌어내는 매개다. 꿈속에서 오드리 헵번을 흉내 낸 듯한 인물이 나타나 방울이 예지몽이라고 설명하는 장면은 예언의 권위를 다소 연극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로 바꿔 놓는다. 이러한 연출은 미래를 알려 주는 꿈의 권위를 흔들어, 그것이 예언인지 욕망이 지어낸 이야기인지에 대한 판단을 유예하게 한다.

따라서 “꿈에서 깨면 되죠. 밟아요. 방울을 깨라고요”라는 요섭의 말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역설이다. 건우는 미래를 보여 주는 방울을 손에 넣고 싶어 하지만, 꿈에서 나오는 방법은 그 방울을 깨뜨리는 것이다. 예지몽을 품은 방울은 희망의 상징이면서 미래를 미리 확인하고 싶은 집착의 형상이다. 건우가 깨뜨려야 할 것은 꿈을 꾸는 능력보다 미래를 단숨에 얻으려는 조급함이다. 결과를 선점하려는 욕망을 놓을 때 비로소 현재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

서로의 꿈에서 서로가 되는 사람들

건우와 연결되는 또 한 명의 인물은 열여덟 살 미나(김세원)다. 엄마를 잃은 미나는 이모 정혜(김예은)와 살고 있지만, 친구들과의 관계마저 멀어진 채 세상과 거리를 둔다. 건우가 여러 번의 실패 끝에 미래를 잃었다면, 미나는 갑작스러운 상실로 미래를 상상할 기반부터 흔들린다. 건우가 꿈을 계속 좇다가 지쳐 버린 청년이라면, 미나는 자신의 꿈을 정하기도 전에 꿈꿀 기반부터 잃어버린 청소년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고통을 가볍게 판단한다. 건우는 미나를 이모의 보호를 받으며 학교에 다니는 철없는 학생으로만 바라보고, 미나는 건우를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무책임한 꼰대라고 치부한다. 그러나 꿈은 두 사람을 서로의 삶 안으로 밀어 넣는다. 미나는 건우의 모습으로 불리며 친구들에게 “정신 차리라”는 말을 반복해서 듣는다. 건우는 미나의 자리에 놓여 이모의 보호와 통제, 친구들의 잔인한 농담, 엄마의 죽음을 둘러싼 죄책감을 체험한다. 이들이 겪는 “나는 건우가 아니다”, “나는 미나가 아니다”라는 혼란은 자기 존재를 잃어 가는 순간인 동시에 타인의 고통을 온몸으로 견디는 과정이다. <리틀 드리머즈>는 타인의 자리에 잠시 서 보고, 그가 듣던 말을 함께 들으며, 그가 감당했던 시선을 견디는 경험으로 세계에 대한 이해를 확장한다.

건우와 미나는 서로의 삶을 직접 통과하는 기묘한 경험을 통해, 자신이 함부로 판단했던 타인의 고통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건우는 미나의 상실과 불안을, 미나는 건우의 실패와 수치심을 체감한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상대의 삶의 문제를 대신 해결할 수는 없어도, 그가 버텨 온 시간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새로운 시작이자, 서로를 지키는 관계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배운다.

미나 나이 때 어머니를 잃고 수면제를 먹었던 과거를 담담히 고백하는 건우의 목소리는 그 어떤 조언보다 깊은 위로가 되어 미나에게 다가간다. 이에 응답하는 미나의 말 “그냥 집이 집 같았으면 좋겠어. 그게 다야”는 이 영화가 다다르는 희망의 본질을 보여준다.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가 묻는 것은 ‘미래를 알 수 없다는 불확실함 속에서도 다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가까워진다. 건우가 욕망하던 일확천금과 미나가 간절히 바라던 안식은 서로 다른 형태처럼 보이지만, 결국 두 사람 모두 현재의 불안을 견딜 근거를 찾고 있었다는 점에서 같을 것이다.

<리틀 드리머즈>가 그리는 희망은 오늘의 상처를 품은 채 내일 한 번 더 눈뜨려는 마음에 가깝다. 방울을 깨뜨린 후에도, 꿈을 깨뜨린 뒤에도 다시 꿈꿀 수 있는 까닭은 우리의 내일이 여전히 열려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미래를 미리 본다는 것은 결과를 확인하는 일이지만, 미래를 살아간다는 것은 매 순간 선택을 이어 가는 일이다.

건우와 미나는 자신이 외면해 온 감정과 관계를 직접 마주하며 다음 시간을 준비한다. 영화는 이 작은 태도의 변화 속에서 삶을 다시 시작할 가능성을 발견한 듯하다. 건우와 미나가 다시 걷는다. 방울 위에서, 있는 힘껏 발을 들어 올리며.

리틀드리머즈 프리뷰 리뷰 독립영화 이광호 유희제 김세원 김예은 지수연 방태원 이하랑 KAF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