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7월
“누구의 권리이든 체계와 방향을 찾아서”
강윤희 법무법인 원 변호사
글 _ 박꽃(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사진 _ 김기남(한국경제매거진 기자)
2025-06-19
한국영화계에 블록버스터의 개념을 알리며 전설적인 흥행에 성공한 <쉬리>(1999)는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간 주문형비디오(VOD)로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도 볼 수 없는 희귀한 작품이었다. 배경에 얽힌 복잡한 저작권 문제는 무려 26년 만에 재개봉이 성사된 지난 3월 비로소 세간에 알려졌다. 과거 <쉬리> 투자배급사였던 삼성영상사업단이 문을 닫으면서 그 저작권이 영상 콘텐츠업과는 무관한 삼성전자로 이관되었는데, 이후 지식재산권(IP) 담당자가 없는 상태로 관리되지 못한 채 오랜 시간 묻혀 있는 바람에 연출자인 강제규 감독마저 손쓸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1990~2000년대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알린 주요 작품들이 갖가지 이유로 단절된 저작권리관계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극장 재개봉, 해외 판매, 블루레이 제작, 2차 저작물 창작 등 본 저작물을 근간으로 파생되는 부수적 권리를 행사하기 어려운 것이다. <쉬리>의 경우 삼성그룹 유관사로 볼 수 있는 CJ ENM이 <쉬리>를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중개자 역할을 맡으면서 비교적 수월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영업을 중단한 수많은 중소 투자배급사가 과거 보유했던 IP의 경우 그 행방을 확인할 길은 묘연한 상황이다.
단절된 저작권리관계 때문에 한때 골머리를 앓았던 <쉬리>
한국영화의 이른바 ‘체인 오브 타이틀’(저작권리관계) 문제는 법적으로도 다루기 쉽지 않은 주제다. 이참에 <곡성>(2015), <아가씨>(2016), <모가디슈>(2021) 등의 작품에 법률 자문을 해 온 ‘영화 저작권 전문가’ 강윤희 법무법인 원 변호사를 통해 한국영화 ‘체인 오브 타이틀’의 현주소를 물었다.
문 닫은 영화사들, 담당자 오리무중
“폐업한 회사에 연락할 방법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이고, (담당자를 찾아도) 당시 작성한 계약서가 부실해서 권리를 누가 가지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또 다른 문제다.” 강윤희 변호사의 지적처럼 한국영화 산업이 짧은 시간 동안 부흥하고 쇠락하면서 훗날 발생할 수 있는 저작권리 관련 문제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셈이다.
저작권리를 확인할 수 없는 작품의 경우 <쉬리>처럼 과거 저작권을 보유했던 투자배급사나 제작사가 폐업한 상황이 적지 않다. 강윤희 변호사는 “사람들은 폐업과 해산을 구분하지 않지만 법적으로 보면 폐업은 백수, 해산은 사망”이라면서 “폐업을 했다고 IP가 소멸하는 게 아니고 여전히 그 회사가 소유한 상태”라는 점을 짚었다. 문제는 거기에서 불거진다. “(법적으로 회사는 존재하지만) 그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없어진 상황이니 어떤 IP를 갖고 있든 간에 연락할 방법이 없고, 이 때문에 이용 허락도 받기 어려운 것”이라는 설명이다.
강윤희 변호사는 “일 처리를 정확하게 하는 회사라면 IP를 다른 회사에 양도하고 회사를 정리하는 경우도 있다”면서도 “다만 영화의 경우 보통 크레디트를 보고 저작권자를 짐작한다. 그 회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보지 않는 한, 해당 IP를 다른 회사로 양도했다는 사실도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개인으로서는 사실상 저작권리 변동 사항을 추적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저작권을 양도받은 회사가 영상콘텐츠업과 무관한 조직일 경우 ‘양도받은 사실 자체를 몰라서’ IP를 활용하지 못한 채 창고에 묵혀 두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
투자배급사가 문 닫는 것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시각특수효과(VFX)를 대거 활용한 상업영화 중에서는 완성된 특수효과를 입힌 최종 영상본을 보유한 VFX 업체가 문을 닫고 사라져 그 원본을 요청할 곳이 없어진 사례도 있다. 해당 영상 자원을 상업적으로 활용할 경로 자체가 차단된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선임 변호사 출신인 백경태 법무법인 신원 변호사는 “해외 투자를 받아 2010년대 초반 제작된 우리나라 유명 영화의 실제 사례”라면서 “한국은 영화 시장이 작기 때문에 한두 다리 건너면 ‘누가 (권리를) 가지고 있더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서 굳이 VFX 애셋이나 영화음악과 같은 개별 저작물의 권리관계 이관 내역을 기록하거나 관리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라는 배경을 짚었다. “해외 자본의 투자를 받아 보다 넓은 시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관련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측 못한 미래 권리, 계약서도 무용지물
고생 끝에 저작권자를 찾아냈다고 해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강윤희 변호사는 “그때부터는 계약서상 누가 권리자인지 다툼이 있을 수 있다”면서 “특히 그 작품을 리메이크할 때 문제가 된다”고 했다. 리메이크는 법적으로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에게 허락되는데, 과거 작성한 계약서가 있다고 해도 2차적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누가 행사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못 박아놓지 않은 경우가 많아 분쟁의 소지는 늘 있다는 것이다.
강윤희 변호사는 “예를 들어 <올드보이>(2003)를 드라마로 리메이크하기 위해 당시 작성한 계약서를 들여다본다면 저작권자가 에그필름인지, 박찬욱 감독인지, 시나리오 작가인지 등이 불분명할 수 있다”고 했다. 당시에는 한국영화가 인기리에 해외로 팔려 나가거나 리메이크될 거라는 예측을 하기 어려웠기에 미래에 행사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서 명확히 정리하기 어려웠을 거란 얘기다. 또 “특히 넷플릭스를 비롯한 해외 자본이 국내로 유입되면서부터는 계약서 내용이 할리우드에 준할 만큼 복잡해졌다”면서 “그걸 토대로 <올드보이>나 <살인의 추억>(2003) 등이 등장했던 시대의 한국영화 계약서를 검토하면 권리에 대한 정리가 부실할 가능성이 커서 법적인 판단을 구하게 되는 일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그게 1990~2000년대 제작된 한국영화가 처한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관련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강윤희 변호사는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개념이 거의 없던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영화계로서는 대기업 자본이 들어오고 산업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점차 계약서를 발전시킨 것”이라면서 “중소 배급사가 망해 나가던 2010년대에 들어서는 살아남은 제작사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투자배급사와 IP를 공유하고 배급권 행사 주체도 몇 년에 한 번씩 정해야 한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기도 했다”고 돌이켰다. 다만 급변한 산업 토양에서 민감한 권리관계를 명확히 정리할 계약서가 지속적으로 개발되지 못한 게 한계다. 강윤희 변호사는 “추후 있을 분쟁을 생각하면 차라리 리메이크 시도를 접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작품들도 꽤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누가 보유하고 있는지를 두고 벌어지는 다툼은 계속해서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나>가 쏘아 올린 ‘저작인격권’ 논쟁 최근 들어 저작 권리관계에 관한 문제는 새로운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양상이다. 쿠팡플레이에서 공개된 시리즈 <안나>(2022) 사례가 대표적이다. 작품을 쓰고 연출한 이주영 감독이 제작사 컨텐츠맵과 연출 계약을 맺고, 제작사가 쿠팡플레이로부터 투자를 받는 대가로 제작 계약을 맺으면서 편집권을 포함한 다수의 권리가 쿠팡플레이로 이관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최종 상영본이 이주영 감독의 의도와 다르게 편집되어 일방적으로 공개되어 갈등이 폭발했고, 이주영 감독은 쿠팡플레이를 상대로 “작품에서 내 이름을 빼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다만 “쿠팡이 프로그램에 관한 모든 권리의 유일한 독점적 소유자”라는 계약서상 문구 등의 이유로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해 현재 대법원 심리 중이다.
저작권 관련해서 소송에까지 이르렀던 <안나>
이주영 감독은 소송을 통해 ‘저작인격권’ 인정 여부를 다퉜고 그중에서도 ‘동일성 유지권’, 즉 ‘내 저작물을 바꾸지 않을 권리’를 핵심적으로 주장했다. 이는 통상적인 저작권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강윤희 변호사는 “저작물은 창작자의 사상이나 감정이 반영되고 개성이 드러나는 결과물이기 때문에 부동산 같은 재산과 달리 저작인격권이라는 권리가 특별히 발생한다”면서 “저작인격권은 ‘나의 인격권’에 가까운 개념으로 저작권과 달리 오직 나만이 행사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행사하거나 자식에게 물려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강윤희 변호사는 “저작인격권은 유럽에서 발전된 법리라 미국에서는 다소 약하게 적용된다”고 했다. “이 때문에 할리우드에서 작성하는 계약서에는 저작인격권을 포기시키는 조항이 자연스럽게 담기고, 창작자들도 그걸 포기하는 대신 재산권을 행사해 돈을 받는 보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최근 들어 J.K. 롤링처럼 슈퍼 IP를 지닌 작가들이 ‘내 허락을 받고 작품을 바꾸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국내에서는 <안나>가 처음으로 그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면서 그간 크게 중요하게 다뤄지지 못했던 부분을 건드린 것”이라고 의미를 짚었다.
저작권리관계 관리, 본격 논의 필요 관련 문제가 지속적으로 불거지는 상황이지만 국내에서는 저작권리관계를 누가,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할 것인지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한 상황이다. 각종 조합의 협상력이 강한 할리우드에서는 작가조합(WAG)이나 배우조합(SAG)이 미국제작자협회를 상대로 단체 협상을 벌여 각종 권리관계에 따르는 보상을 강화한다. 산업의 플레이어가 자발적으로 형성한 조직이 힘을 발휘하는 ‘산업주도형’이다. 강윤희 변호사는 “유능하고 인기 있는 작가나 배우는 모두 조합에 소속되어 있으니 그들을 고용하기 위해서는 조합과 단체 협상을 벌여야 하고, 상호 계약의 논리에 따라서 관련 논의가 굴러갈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저작권 관계의 중요성을 보여준 2023년 할리우드 작가조합파업
그 과정에서 “개별 창작자들이 반드시 IP를 확보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도 중요하게 언급했다. 창작자가 조합을 통해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협상력을 지니게 되는 만큼 저작인격권과 같은 권리를 포기하는 데 거부감이 적다는 이야기다. 그는 “100년 가까이 이어진 할리우드의 체계화된 보상 시스템이 신뢰받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라면서 “<구름빵>이나 <검정고무신>과 같은 사례가 있는 국내에서는 IP를 제작사 등에 넘기면 정당한 수익 분배를 받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2차적 저작물에 대해서도 제대로 협의할 수 없게 된다는 인식이 강해서 쉽지 않을 것”이라는 한계를 들었다.
극심한 저작권 분쟁에 휩싸였던 <구름빵>
저작권 분쟁이 심각했던 또다른 사례 <검정 고무신>
저작권리관계를 제대로 관리할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며 ‘정부관리형’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등 관련 행정 절차를 밟을 수 있는 기관이 나서서 시스템의 방향을 잡아 나갈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강윤희 변호사 역시 “정부 차원에서 법제화를 하는 등 방향성을 찾아 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수 있다”고 동의했다. 다만 “정부가 깊게 개입할 경우 언제나 의도와 다른 결과가 생길 수 있다고 본다”면서 “할리우드처럼 영화, 드라마 등 영상콘텐츠 산업 종사자가 연대하는 형태의 혼용된 조합이나 협회가 협상력을 발휘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국영화가 IP를 제대로 누리려면 갈 길이 멀고 바쁘다.